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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6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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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중대위협’, ‘중국 체제도전’ 응전…나토 전략 ‘변곡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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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유럽-아·태 국가들 중·러 ‘교차견제’ 구상

푸틴 “스웨덴·핀란드에 나토군 배치땐 대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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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옌스 스톨텐베르그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사무총장이 29일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린 나토 정상회의에서 대화하고 있다. 마드리드/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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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주도하는 군사동맹인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가 러시아와 중국을 각각 “가장 중대하고 직접적인 위협”과 “체제에 대한 도전”으로 규정하고 공동 대응을 천명했다. 또 스웨덴·핀란드의 가입이 현실화되고, 미국의 유럽 배치 군사력이 크게 증강되는 등 탈냉전 이후 세계의 안보 환경이 가장 중대한 전환점을 맞게 됐다.

나토 정상들은 29일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만나 12년 만에 채택한 새 ‘전략개념’에서 러시아와 중국의 위협에 적극 대처하겠다고 밝혔다. 정상들은 이 문서에서 2월 말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를 동맹국들의 평화와 안전에 대한 “가장 중대하고 직접적인 위협”으로 규정하면서 “(러시아의) 강압·전복·침략·병합을 통한 영향권 구축과 직접적 통제 추구”에 맞서겠다고 밝혔다. 나토는 2010년 전략개념에선 러시아와 관계에 대해 “전략적 파트너십”을 발전시키겠다는 뜻을 밝혔지만, 우크라이나 침공을 계기로 옛 냉전 때와 같은 ‘적대 관계’가 됐음을 선언했다.

또 1949년 창설 이후 처음 중국을 언급하며 “중국이 유럽·대서양 안보에 제기하는 ‘체제에 대한 도전’에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나아가 중국이 “우리의 이익, 안보, 가치에 도전하는 야심과 강압적 정책을 보여주고 있다”며 “중국과 러시아의 전략적 파트너십과 규칙에 기반한 국제 질서를 약화시키려는 이들의 상호 노력이 강화되는 것은 우리 가치나 이익에 반한다”고 했다. 중·러를 ‘규칙에 기반한 국제 질서’를 허물려는 공조 세력으로 규정한 것이다. 정상들은 이날 공개한 별도 공동성명에서도 나토가 “우리의 이익·안보·가치에 도전하고 규칙에 기반한 국제 질서를 약화시키려는 중국을 포함한 나라들과의 구조적 경쟁에 직면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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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토가 중국을 ‘도전’으로 보고 ‘경쟁’ 상대로 삼겠다는 것은 중국에 대항하기 위해 아시아·태평양 국가들과 함께 하겠다는 분명한 메시지를 던진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나토는 전략개념에서 이런 변화에 나선 이유에 대해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유럽·대서양 안보에도 직접 영향을 미칠 수 있기에 이 지역은 나토에게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이를 위해 나토는 이번 정상회의에 인도·태평양 지역의 주요국들인 한국·일본·오스트레일리아·뉴질랜드 정상들을 초대했다.

나토는 본격적인 군사력 증강 계획도 내놨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이날 옌스 스톨텐베르그 사무총장을 만난 자리에서 폴란드에 미국 육군 제5군단의 상설 사령부를 설치하고 루마니아 주둔 미군도 증강하겠다고 밝혔다. 또 영국에 F-35 스텔스 전투기 비행대대 2개를 추가하고 스페인 배치 구축함은 4척에서 6척으로 늘리겠다고 했다. 영국 정부도 러시아와 국경을 맞댄 에스토니아에 병력 1천명을 더 투입하고 동유럽 경계 강화를 위해 항공모함을 보내겠다고 발표했다. 스톨텐베르그 사무총장은 앞선 27일 기자회견에서 나토의 신속대응군 규모를 현재의 4만명에서 30만명으로 늘리겠다는 계획을 공개했다. 냉전기에 30만~40만명에 달했던 유럽 주둔 미군은 1989년 말 동서 화해가 이뤄짐에 따라 크게 줄었다. 현재 병력은 10만명으로 러시아의 침공 이후 2만명 늘었다.

스웨덴과 핀란드의 합류에 반대하던 튀르키예(터키)가 입장을 바꾼 것도 나토의 세력 강화에 크게 기여할 전망이다. 군사 역량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 스웨덴은 러시아와 대서양을 잇는 발트해에 긴 해안선을 갖고 있다. 핀란드는 러시아와 1300㎞에 달하는 국경을 맞대고 있다.1939~40년 옛 소련과 ‘겨울전쟁’을 치른 경험이 있다. 두 나라가 나토에 합류함에 따라 러시아는 서쪽뿐 아니라 북쪽에서 만만찮은 안보 위협에 내몰리게 됐다. 양국의 나토 가입이 우크라이나 침공이 유발한 러시아의 가장 큰 패착으로 평가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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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현지시각)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정상회의가 열린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터키) 대통령(맨 왼쪽),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가운,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맨 오른쪽)가 대화를 하고 있다. 마드리드/AF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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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적으로 이번 나토 정상회의는 중·러와 ‘두개의 전선’에서 맞서게 된 미국, 유럽, 아시아·태평양 국가들이 견제 전선을 통합하며 공동 대응을 추구하는 신호탄으로 볼 수 있다. 아·태 동맹을 러시아 견제에, 유럽 동맹을 중국 견제에 ‘교차 동원’한다는 미국의 구상이 관철돼가는 셈이다. 그런 점에서 우크라이나 전쟁 중에 열린 이 회의는 ‘신냉전’이 또 다른 국면으로 접어들었음을 상징하는 행사로도 기록될 것으로 보인다. <뉴욕 타임스>는 나토의 새 전략개념에 대해 “러시아를 잠재적 동맹으로 보고, 중국엔 전혀 초점을 맞추지 않던 탈냉전 시대로부터의 근본적 변화”를 나타내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전쟁 이후 처음 외유에 나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나토의 움직임을 경계했다. 그는 이날 투르크메니스탄에서 “핀란드와 스웨덴은 원한다면 (나토에) 가입할 수 있다”면서도 “(다른 나토 국가) 파견 부대나 군사 인프라가 배치되면 우리는 같은 식으로 대응하고, 위협이 제기되는 곳에 같은 위협을 가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워싱턴/이본영 특파원 e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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