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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6411의 목소리] 인디음악인들은 버리고 가는 대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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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두기 업종 분류표에도 ‘공연장’과 ‘일반음식점’만 존재할 뿐 ‘공연을 하는 일반음식점’은 고려 대상에서 배제됐다. 결국 법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공간이기에 관료들은 이들의 외침에 대답할 의무도 없었다. 군대에서는 전쟁 중 후퇴하게 될 때 싣고 갈 물건과 방치할 물건을 분류해두라고 가르친다. 팬데믹 상황을 이에 비유한다면, 공연음악인들은 버려두고 가는 대상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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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소규모 인원만 입장시키던 지난해 4월 서울 마포구 ‘생기스튜디오’ 공연장이 텅 비어 있다. 사진 안악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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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악희 | 뮤지션유니온 조합원·인디밴드 ‘리셋터즈’ 베이시스트

어느 날 갑자기 당신의 일터가 폐쇄된다면 어떨까? 한참 영상편집 작업 중인데 누군가 들이닥쳐 컴퓨터 전원을 내린다면? 공장에서 일하는 도중 누군가 컨베이어를 멈추며 나가라고 한다면?

바로 이런 일이 팬데믹 기간 공연음악(라이브음악) 업계에서 벌어졌다. 지난 2년간 인디 공연은 방역수칙 변동에 따라 전면적 금지와 절반의 허용 사이를 오갔다. 음악인들은 방역수칙에 따라 환호성도 못 지르는 관객들 앞에서 간헐적으로 공연을 이어왔다. 대체로 6개월 단위로 공연을 기획하고 계획을 짜던 음악인들은 순식간에 미래를 기약할 수 없는 세월을 보내야 했다.

그러던 중 지난해 2월 말, 서울 마포구청 직원들이 라이브음악 클럽에 들이닥쳐 진행 중이던 공연을 중단시켰다. 식품위생법상 일반음식점으로 분류된 곳이었고, 구청 담당자들은 공연장으로 분류된 곳이 아니면 공연할 수 없다고 했다. 이에 항의하자 “세종문화회관 같은 곳이 공연장이고, 일반음식점에서 칠순잔치 정도는 그냥 넘어갔지만 코로나19 이후에는 이것도 안 된다”는 반박이 돌아왔다. 인디음악가들의 ‘일’인 공연이 부정당하는 순간이었다.

1990년대까지 식품위생법 시행령 7, 8조에 의해 음악인들은 ‘유흥접객원’으로 분류됐고, 일반음식점에는 2인 이상 유흥종사자를 둘 수 없었다. 그러나 1999년 ‘라이브클럽 합법화 운동’으로 규제가 폐지됐다. 당시에는 이것도 큰 성과였으나, 불완전한 승리였다. 일반음식점에서 공연을 하면 ‘안 된다’는 규제를 삭제했을 뿐, 소규모 클럽의 법적인 권리를 명확히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한국에서 공연을 위한 ‘정식’ 공간은 공연장과 나이트클럽이 전부다. 하지만 라이브클럽은 나이트클럽과 성격이 다르고, 영세한 소규모 라이브클럽이 법적 지위를 얻자고 유흥업소로 등록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물론 나이트클럽에서 인디음악을 올리는 일 또한 없다. 시대는 변했는데, 법은 아직도 과거에 머물러 있다.

한국은 유독 음악공연에 엄격하다. 카페에서 미술 전시는 괜찮고, 심지어 식당에서 연극공연도 가능하지만, 이런 장소들에서 음악공연을 하면 따져야 할 것들이 많아진다. 다른 장르들은 ‘예술’이지만 음악공연은 ‘유흥’ 내지는 ‘행사’다. 방역규제가 강화되면서 음악공연이 금지된 이유다.

거리두기 업종 분류표에도 ‘공연장’과 ‘일반음식점’만 존재할 뿐 ‘공연을 하는 일반음식점’은 고려 대상에서 배제됐다. 결국 법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공간이기에 관료들은 이들의 외침에 대답할 의무도 없었다. 군대에서는 전쟁 중 후퇴하게 될 때 싣고 갈 물건과 방치할 물건을 분류해두라고 가르친다. 팬데믹 상황을 이에 비유한다면, 공연음악인들은 버려두고 가는 대상인 셈이다.

공연음악은 대중음악의 풀뿌리다. 많은 음악인은 작은 베뉴(공연을 볼 수 있는 카페나 클럽)에서 활동을 시작한다. 베뉴는 새 음악인들이 수급되는 장이기도 하다. 여러 베뉴를 오가며 서로 교류하고 새로운 사조를 만들어낸다. 이러한 체계를 전문용어로 신(scene)이라고 한다. 지난 2년 정부는 비대면 공연 육성에만 집중했고 이미 존재하는 소규모 라이브클럽에는 아무 대책도 내놓지 않았다. 결국 음악인들 사이 소통은 끊어졌고 신은 무너졌다. 이 와중에 치러진 선거 유세에 수백, 수천명이 운집했을 때 ‘이게 다 뭔가’라고 생각한 이는 필자 혼자만은 아닐 것이다.

온라인이 아무리 발달해도 오프라인을 대체할 수는 없다. 음악인들은 관객의 반응을 통해 자신과 곡에 대한 평가를 가늠할 수 있고, 관객들은 신곡의 ‘베타테스터’(시험 사용자)가 된다. 그리고 양질의 온라인 공연을 위해서는 오프라인에 필요하지 않던 장비와 인력이 필요하고, 여기에는 많은 추가 비용이 들어간다.

팬데믹이 시작됐을 때, 음악인들과 스태프들은 “당분간 공연은 없겠구나”라고 직감했다. 대중에게 잘 드러나지 않지만 공연음악은 창조적인 한편 상당히 노동집약적인 분야다. 공연과 창작을 위해 적지 않은 숙련 기간과 오랜 학습이 병행돼야 하는데, 팬데믹은 이들의 일을 빼앗아갔다. 학교, 도서관, 카페, 박물관도 문을 닫아야 했다. 심지어 공원의 벤치에도 접근금지 표시가 붙었다. 그러나 소위 ‘핵심 생산부문’이나 큰 기업들은 팬데믹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하던 일을 지속했다. 모두가 강제당한 것이라 생각했던 거리두기에서 누군가는 ‘예외’였다. 이름난 대기업 중 팬데믹으로 도산에 가까운 위기를 맞이한 곳이 있다는 뉴스를 들어본 적 있는가?

음악인들도 팬데믹을 함께 이겨내야 한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그러나 공연장과 음악인들은 사실상 2년간 셧다운 상태였다. 우리의 존재와 활동은 ‘삭제’됐다. 누구를 버리고 가자고 정한 이는 누구일까? 모두가 함께 견딜 줄 알았는데 버려진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노회찬재단과 한겨레신문사가 공동기획한 ‘6411의 목소리’에서는 일과 노동을 주제로 한 당신의 글을 기다립니다. 200자 원고지 14장 분량의 원고를 6411voice@gmail.com으로 보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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