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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판례는 어떻게 만드나요?" 검사가 대법관에게 물었다…김재형 대법관, 대검서 첫 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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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김재형 대법관이 28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국가디지털포렌식센터 대강의실에서 자율과 공정을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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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의 시각에서 벗어나 새롭게 판결을 바라볼 수 있어 뜻 깊은 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검사가 법리상 무죄로 선고될 것 같아 보이면 기소하지 않는 게 원칙인데요. 유죄 취지에서 무죄 취지로 판례가 변경될 가능성을 가늠할 신호가 있을까요? 대법관님이 힌트를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28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국가디지털포렌식센터(NDFC) 회의실에서 한 검사가 김재형 대법관에게 질문을 던졌다. 김 대법관은 ‘검찰’이라고 적힌 교탁 앞에 서서 질문에 답했다. 그는 이날 대검 직원들을 상대로 ‘자율과 공정’을 주제로 강연했다. 강연에는 이원석 대검 차장검사(검찰총장 직무대리)를 비롯해 대검·서울중앙지검·서울고검 소속 검사 70여명이 참석했다.

현직 대법관이 현직 검사를 상대로 강연한 것은 사실상 처음이라고 한다. 이 차장검사가 취임 후 대법원을 예방할 때 강연을 요청했다. 대검 관계자는 “서울대 로스쿨에 오래 봉직하시고 특히 법제업무에 경험이 풍부하신 대법관님께서 퇴임을 앞두고 검찰 구성원들에게 그 경륜과 지혜를 들려주시는 기회를 마련한 것”이라며 “퇴임 대법관님의 검찰 강연이 좋은 전통으로 만들어 갈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했다. 김 대법관은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를 지내다 박근혜 정부 때인 2016년 대법관에 임명됐다. 오는 9월 임기를 마친다.

김 대법관은 이날 강연에서 자율과 공정을 두고 “법이 추구하는 중요한 가치”라며 “법률가는 자신의 판단을 기다리는 사건을 주어진 틀에 맞춰 도식적으로 처리하는 게 아니라 법과 정의가 무엇인지, 선과 형평의 길은 어디에 있는지 항상 반추하며 살아간다”고 했다. 그는 철학자 존 롤스의 <정의론>에 나오는 ‘정의는 사회제도의 제1덕목’이라는 문구를 인용하며 “법 제도가 효율적이더라도 정당치 못하면 개선·폐기돼야 한다”고 했다.

김 대법관은 자신이 주심으로 판결한 주요 사건을 예로 들어 법이 추구해야 할 가치를 설명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2018년 11월 종교·양심적 병역거부는 정당한 병역거부 사유에 해당한다며 병역거부자 A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김 대법관은 “민주주의 사회는 다수와 다른 신념을 가진 소수자를 포용함으로써 그들 역시 사회구성원으로서 함께 공존하는 것을 지향한다. 양심적 병역거부를 허용하는 건 거부자에 특혜를 부여하는 게 아니다. 우리 공동체에서 다룰 수 있는 자유를 인정하는 것이며 모든 국민이 인간으로서 존엄과 가치를 누리도록 하는 것”이라고 했다.

2017년 8월 삼성전자 LCD 공장 노동자의 다발성경화증을 산업재해로 인정해야 한다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도 언급했다. 김 대법관은 “근로자가 가진 자유는 매우 적다. 또 산업재해의 취지가 근로자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좀 더 넓게 산업재해를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이 사건에서 공평의 원리가 사람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킨 것으로 볼 수 있지 않나 생각한다”고 했다. 강연이 끝난 뒤 검사들은 “대법관은 판례 문장을 어떻게 만드는지”, “산업재해 사건과 관련 특이성 질환은 원고에 책임이 있다는 취지로 판단됐는데 삼성전자 판례와 어떤 관계가 있는지” 등을 물었고, 김 대법관이 이에 답했다.

이보라 기자 purpl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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