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유물만 소각" 주장한 北 일단 침묵
'과잉대응 비난' 등 감안, 반발 가능성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의 유가족과 유가족 측 법률대리인이 17일 서울 서초구 서울지방변호사회 변호사회관에서 해양경찰청과 국방부가 발표한 관련 입장에 대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한호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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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에 대한 북한의 침묵이 길어지고 있다. 2020년 9월 '월북'이라던 해경과 국방부가 16일 "자진 월북을 입증할 수 없다"며 2년 만에 입장을 바꿨지만 북한은 여전히 상황을 지켜보고만 있다.
특히 북한은 사건의 주요 쟁점인 '시신 소각' 여부를 규명할 주요 당사자다. 당초 국방부가 '시신 소각 만행'이라고 주장하다 '시신 소각 추정'으로 톤을 낮추면서 혼선을 자초했기 때문이다. 이미 판단을 번복한 해경과 국방부의 조사결과나 향후 결론을 내릴 감사원 감사결과에 북한이 반발하고 나설 경우 가뜩이나 험악한 남북관계와 맞물려 사건을 둘러싼 논란이 가열될 것으로 보인다.
북한 당국과 주요 매체들은 19일 이번 사건과 관련해 별다른 언급을 내놓지 않았다. 북한은 사흘 전 해경과 국방부의 입장 발표 이후 줄곧 입을 다물고 있다. 2년 전 사건이 터진 직후 '대남 통지문'을 통해 정부가 발표한 사건 경위를 반박하며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사과를 전했던 것과 대조적이다.
북한은 피격 사건 당시 해양수산부 공무원 이씨의 시신 소각 여부에 대해 남측과 배치되는 주장을 폈다. 국방부가 "북한이 시신을 불태우는 만행을 저질렀음을 확인했다"고 공개한 반면, 북한은 대남 통지문에서 "(사격 후) 침입자는 부유물 위에 없었고 많은 양의 혈흔이 확인됐다"면서 '부유물만 소각했다'고 선을 그었다.
당시 국방부는 대남 통지문 접수 이후 청와대 지침에 따라 "시신 소각이 '추정'되며, 정확한 사실확인을 위해 공동조사가 필요하다"고 수위를 낮췄다. 반면 북한은 공동조사 요구에 현재까지 아무런 반응이 없다.
입장 번복으로 궁지에 몰린 국방부는 16일 "시신을 불태운 정황이 있었다는 것은 명확하다"고 강조하면서 재차 각을 세웠다. 북한을 끌어들여 책임을 떠넘긴 것이다. 따라서 북한이 계속 침묵한다면 비난의 화살을 모두 감수해야 하는 처지에 몰릴 수도 있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아직까지는 한국 새 정부가 전 정부를 겨냥하는 성격이 강하다"면서 "북한 최고 지도부를 직접 비난하지 않는 이상 '지켜보자'는 식으로 나올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만 17일 시작된 감사원 감사를 비롯한 정부 움직임에 따라 북한이 어떤 식으로든 입장을 표명할 여지는 남아 있다. 2년 전 북한의 최고 존엄 김 위원장이 이례적으로 유감을 표했던 사안인 만큼, 당시 북한 주장과 배치되는 내용으로 사태가 흘러갈 경우 마냥 지켜볼 수만도 없는 처지다.
지금은 자진 월북을 둘러싼 시시비비를 가리는 데 초점이 맞춰졌지만, 시신 소각 여부가 논란의 핵심으로 부각된다면 북한은 '과잉대응으로 무고한 인명을 해쳤다'는 비난을 뒤집어써야 할지도 모른다. 여야 대립의 불똥이 튀어 정쟁의 한복판으로 끌려가는 건 북한이 민감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부분이다.
사건 직후 북한은 조선중앙통신을 앞세워 시신 수색에 나선 남측을 향해 "서해 해상군사분계선 무단 침범 행위를 중단하라"고 몽니를 부린 전례가 있다. 따라서 이번에도 선전매체 등을 통해 윤석열 정부를 비난하고 '선 긋기'에 나설 가능성이 적지 않다.
정준기 기자 jo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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