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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 외교 장관의 방미가 오늘(16일)로 종료됩니다. '진-토니' 관계란 애칭을 붙인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과의 회담뿐 아니라 미 상무장관, 에너지 장관, 미 정계 인사들과의 연이은 면담 등 3박 4일간의 숨 가쁜 일정이었습니다. 그 가운데 가장 관심을 끌었던 장면을 딱 하나만 꼽으라면 단연 박 장관의 '지소미아 정상화' 언급 장면입니다. 현지시간 13일 '진-토니' 두 장관의 회담이 끝난 뒤 기자들과 가진 질의응답 시간에 나온 발언이었습니다.
(기자) 한국과 일본의 정보 공유 부활을 위해 미국이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보십니까.
(박진 장관)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이 한일 관계 개선과 함께 가능한 한 빨리 정상화하길 희망합니다. 북한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한일 간, 또 미국과 함께 정책을 조율하고 정보를 공유할 필요가 있습니다.
박 장관의 이 발언을 놓고 우리가 일본에 유화 제스처를 취했다는 관련 보도가 쏟아졌습니다. (관련 기사: ▶ 명맥만 유지 중인 '지소미아', 정상화까지 과제는?) 그 배경을 살펴보면 한일 관계에서 지소미아가 차지하는 의미는 조금 남다르기 때문입니다. 한국과 일본 간의 대북 군사 정보 교류와 비밀 유지를 골자로 한 지소미아는 북한 도발에 공동 대응이 필요한 현 시점에서의 한미일 협력 필요성과, 과거 일본의 한반도 점령에서 비롯된 한일 역사 갈등 정서가 맞부딪치는 일종의 지각판 같은 이슈입니다. 이 협정은 지리적 이유로 우리나라보다 저고도 미사일 등의 정보 수집·분석 능력이 약한 일본에게 특히 긴요한 협정인데, 우리로서는 여론의 반일 정서를 감수해야 하는 부담스러운 협정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국내에서 여러 번 지소미아 그 자체가 '뜨거운 감자'가 되기도 했습니다.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은 과거 대외전략기획관 자리에 있던 이명박 정부 시절 지소미아 협정 체결을 비공개 국무회의에서 추진하려다가 여론의 반발로 사퇴하기도 했는데요, 이후 악화된 여론 탓인지 이명박 대통령이 독도를 전격 방문하는 등 대일 강경책으로 기조를 선회하는 계기가 될 정도였습니다.
2016년 박근혜 정부에서 체결된 지소미아는 3년 뒤 다시 한번 논란의 중심에 섰습니다. 2018년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배상 문제가 대법원에서 확정 된 데 대한 일본의 수출 규제 카드에 우리 정부가 "일본과 안보상 민감한 군사정보 교류 협정을 지속시키는 것이 국익에 부합하지 않는다"며 지소미아 종료로 맞대응한 겁니다. 1년마다 자동 갱신되는 지소미아를 연장하지 않겠다고 밝힌 건데, 미국이 부랴부랴 중재에 나선 끝에 종료는 유예됐습니다.
하지만, 이후 지소미아는 명맥만 남게 됐습니다. 정보 교류를 위해선 양국 간 '적극적 교류 의지'가 중요한데요, 한일 정상회담 제안 등 우리 유화 메시지에 일본은 화답하지 않았고, '한국이 먼저 강제 징용 해결책 등 선물 보따리를 가져오라'며 경제 보복도 철회하지 않았기 때문에 관계 경색이 계속됐습니다. 우리는 우리대로 일본이 피해자를 향해 '결자해지'하라고 한 셈이니 운신의 폭이 없었던 것이죠. 이후 현 상태의 지소미아를 두고 한 외교 소식통은 "파이프는 그대로 뒀는데 수압이 약해져 물이 제대로 흐르지 않는 꼴"이라고 평하기도 했습니다. 최근 북한의 미사일 도발에, 일본이 기초적인 발사 개수 마저 틀리면서 체면을 구기는 상황이 이어진 것도 이와 무관치 않을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지금의 지소미아 상태를 '비정상'으로 전제한 외교부 수장의 "지소미아를 빠르게 정상화하겠다"는 발언에 언론이 주목할 수밖에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꼬인 실타래의 매듭을 우리가 먼저 나서 풀겠다는 적극적인 유화 제스처로 읽혔습니다.
문제는 이게 과연 정교하게 계산되어서 나온 외교적 발언인가 의문이 남는다는 점입니다. 현지 보도를 보면 일본 정부는 7월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보수 표심을 결집하기로 결정한 모양새입니다. 일본 문제에 정통한 한 외교 소식통은 "최근 우리나라의 독도 해양조사, 2018년 광개토대왕함 레이더 조준 사건이 일본 자민당 아베파를 중심으로 적극적으로 정치 이슈화 되고 있다"고 현지 분위기를 전했습니다. 선거를 앞두고 여론에 민감한 일본이 박 장관의 방일이나 한일 양자회담 자체를 부담스러워한단 얘기까지 흘러 나오고 있습니다. 우리 쪽에선 '지소미아 정상화'를 꼬일 대로 꼬여 있는 한일 관계의 물꼬를 틔울 선물로 생각했을 수 있겠으나, 상대가 받을 준비가 전혀 안 돼 있었던 것 만큼은 분명해 보입니다. 국내적으로도 지소미아 파동의 발단이 됐던 일본의 수출 규제 문제 해결에 대한 물밑 논의 없이 지소미아만 정상화하는 게 맞느냐는 의구심도 곧바로 나왔습니다.
이런 혼란한 기류는 외교부의 두 차례 언론 공지(Press Guideline)에서도 엿볼 수 있어 보입니다. 외교부는 박 장관의 발언이 나온 직후 '지소미아 정상화'의 의미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 공세에 이렇게 공지를 배포한 바 있습니다.
ㅁ 북한 위협 대응을 위해 지소미아 등 한미일 안보협력이 원활히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는 원칙적 입장을 표명한 것임.
이후 일본에서 일본이 박 장관의 이번 달 방일과 더불어 한일 정상회담에 부담스러워한다는 현지 매체의 보도가 이어지는 등 일본의 반응이 뜨뜻미지근하자, 다음 날 이런 공지가 새로 나왔습니다.
ㅁ 최근 북핵 미사일 위협 및 역내 불안정성 확대에 따라 안보분야에서 한미일 공조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는 점 등을 고려, 3국간 실질적ㆍ효과적으로 안보협력이 이루어져야 할 필요가 있음.
ㅇ 한일 GSOMIA문제는 한일간 여타 현안과 더불어 종합적인 해법을 모색해야 할 것임.
뉘앙스 차이가 느껴지시나요. "한일 간 여타 현안과 더불어 종합적인 해법을 모색해야 할 것". 수출규제 해제 등 논의 없이 우리가 우선적으로 지소미아 정상화부터 나서지는 않겠다는 뜻으로 읽힙니다. 전 날 한 발 전진했다 다음 날 두 발 물러난 느낌이랄까요. "지소미아를 빨리 정상화하겠다"고 공언한 박 장관 입장에선 조금 멋쩍어진 셈입니다. '어제의 적이자 오늘의 친구'인 한일 관계는 풀기가 참 어려운 고차 방정식입니다. 고르디우스 매듭 끊듯 단칼에 해결하고 싶어도 상대가 있는 방정식이다 보니, 이쪽 저쪽 살피며 가진 패를 고르고, 이 패의 효과를 극대화하는 타이밍을 찾는 게 중요할 텐데요. 아무래도 이번에 꺼내 든 '지소미아 정상화' 카드는 좋은 타이밍의 패는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사진=외교부 제공, 연합뉴스)
김민정 기자(compass@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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