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8일 하이트진로 경기 이천공장 앞에서 파업 중인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이하 화물연대) 노조원 15명을 무더기로 체포했다. [경기남부경찰청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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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3일 오전 서울 용산구 크라운제과를 방문, 임금피크제 운영 관련 간담회를 하고 있다. 이날 이 장관은 화물연대의 집단운송거부와 관련, "주무부처는 국토부"라고 말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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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물연대의 집단운송거부로 산업현장의 물류가 휘청이고 있다. 그런데 정작 분쟁 조정 역할을 해야 할 고용노동부의 이정식 장관은 자리를 비웠다. 스위스 제네바에 있다. 국제노동기구(ILO) 총회에 참석한다며 돌연 5일 밤 출국했다.
화물연대의 집단운송거부는 예고된 일이었다. 더욱이 윤석열 정부 들어 첫 대규모 집단행동이다. '윤 정부의 노정관계 시험대'라는 얘기가 나왔다. 윤 정부 5년 동안의 노동정책과 관련된 정책 기조를 엿볼 수 있는 중대한 사건이다. 윤 대통령이 직접 나서 '법과 원칙'을 천명하며 촉각을 곤두세우고, 진두지휘하는 모습을 보이는 이유다.
국무위원이라면 이럴 때 자리를 비우는 건 무책임한 행동이다. 국민은 적극적으로 나서 제 역할을 하길 기대한다.
한데 이 장관은 처음부터 뒷전에 자리를 잡았다. 3일 "주무부처는 국토부"라며 방관자적 자세를 취했다. 틀린 말은 아니다. 화물연대가 내세운 안전운임 일몰제 폐지 등을 다루는 곳은 국토교통부다. 그러나 조정과 중재 역할은 엄연히 고용부의 몫이고, 정부 내에서 주어진 역할 또한 그것이다.
당초 이 장관은 이번 ILO 총회에서 화상 연설을 할 예정이었다. 3일 기자들에게 배포한 일정표에도 그렇게 적혀있었다. 그러다 느닷없이 이틀 뒤 출국했다. 6일 현충일 추념식을 건너뛰고, 7일 국정 현안을 다루는 국무회의마저 불참했다. 전 부처가 화물연대 집단 운송 거부로 긴장하고 있는 판에 외국 출장이란 돌발 행동을 했다.
그 이유가 다소 어이없다. "어렵게 항공권을 구했다"는 게 고용부 측 설명이다. 항공권에 국무위원의 역할이 좌지우지된 셈이다.
오죽하면 노동계조차 비꼬았다. 민주노총은 7일 논평에서 "이 장관의 ILO 총회 참석을 문제 삼지는 않는다"면서도 "결과적으로 화물연대의 총파업으로 새 정부의 노사 관계를 가늠할 수 있는 중대한 시점에 노동 정책을 총괄하는 부처의 장관이 자리를 비우게 된 상황"이라고 했다.
이 장관은 노사발전재단 사무총장 재임 시절에 출장비 깡, 공용 차량 무단 사용, 조직 내 성희롱과 성폭행 등으로 관리능력을 의심받으며, 후보자 청문회에서도 큰 논란이 됐다. 당시 고용부가 해임 건의를 할 정도로 조직 관리나 상황 판단 능력에 문제가 제기되기도 했다.
그의 판단으로는 ILO 총회가 국정 현안보다 급했다는 얘기가 된다. 하지만 그의 스위스 일정은 단출하다. 3일간의 제네바 일정(입출국 포함 5일)이라고 해봐야 총회에서 3~4분 연설하고, 의례적으로 ILO 사무총장을 면담하는, 딱 두 건이 고작이다. 그곳에서 한 연설 요지도 "산업 안전 로드맵을 마련하겠다"는 정도다. 이미 국내에서 한 얘기다. "화물연대 집단운송거부라는 중차대한 사건이 벌어진 상황에서 그걸 얘기하러 ILO 총회 갔다는 게 어이가 없다"(경제단체 관계자)는 반응도 무리는 아니다.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은 이번 ILO 총회에 참석하지 않았다. 그는 총회 참석 관련 보고를 받고,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굳이 4분 연설하러 스위스까지 갈 필요가 있느냐. 국내 현안이 너무 많아 허비할 시간이 없다. 화상으로 하겠다." 기껏 가봐야 연설 한 번하고 온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외교 실적을 기대하기도 힘든 출장이다. 그런 곳에 가느니 경제주체로서 정권 초기에 국내 문제부터 챙기는 게 순리라는 의미다. 이 장관이 돌연 출국한다고 했을 때도 손 회장은 입장을 바꾸지 않고, 화상연설로 ILO 총회 일정을 소화했다.
실익도 없는 출장에 "도대체 왜 간 건가" "벌써 외유 즐기나"라는 비판이 나온다. 정권 초부터 이런 행보를 보인다면 윤 대통령이 국회 시정연설(5월 16일)에서 다짐한 '노동개혁'을 언제쯤 착수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이 장관의 국정 수행 능력은 계속 국민으로부터 검증을 받게 될 것이다. '국민만 바라본다'는 윤 대통령의 굳은 의지를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김기찬 고용노동전문기자 wols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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