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난감 탱크도 검문당했다…천안문 33주기, 촛불 밝힌 홍콩

천안문 민주화 시위 33주기인 지난 4일 홍콩 경찰이 백지를 든 한 여성을 검문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천안문 민주화 시위 33주기를 맞아 홍콩에서 희생자를 추모하던 시민 활동가들이 홍콩 당국에서 의해 체포됐다. 미국·유럽연합(EU) 홍콩 주재 외국 공관은 '촛불'을 켜고 당국의 단속에 항의하는 뜻을 밝혔다.

5일 홍콩 명보는 전날 오후 11시 30분 기준 최소 6명이 천안문 민주화 시위 추모와 관련해 체포됐다고 보도했다. 이중 홍콩 시민단체 사회민주연선 소속인 라우샨칭은 선동적인 구호를 외친 혐의로 체포됐다. 그는 체포 당시 1989년 6월 4일 천안문 시위에 참여한 후 22년을 복역한 고(故) 리왕양이 그려진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찬포잉 사회민주연선 주석은 일부 회원이 체포되거나 검문을 당했다며 "33년간 (추모 행사는) 언제나 평화로웠다. 그러나 오늘 경찰은 마치 거대한 적에 직면한 것 같다"고 말했다.

명보에 따르면 홍콩 경찰은 어제 오후 7시 30분을 기해 빅토리아 파크를 '작전 구역'으로 설정하고, 현장에 있던 모든 이에게 떠나라고 했다. 빅토리아 파크에선 1990년부터 매년 천안문 민주화 시위 추모 촛불 집회가 열렸지만, 2020년 코로나19 발생 이후 당국은 집회를 불허했다. 그리고 지난해엔 아예 현장을 봉쇄했다. 하지만 일부 시민은 촛불을 켜며 당국에 저항하기도 했다.

올해 홍콩 경찰은 '6월 4일' 기념일을 앞두고 불법 집회에 참가한 시민은 체포로 이어질 수 있다고 했으며, 실제 검은 옷을 입고 조화를 들거나 촛불을 든 이들을 중심으로 검문을 펼쳤다. 홍콩에서 검은 옷은 '반정부' 시위를 상징한다.

천안문 민주화 시위 33주기인 4일(현지 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활동가들이 중국 영사관 앞에서 종이로 만든 탱크를 밀고 있다. [AFP=연합뉴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장난감 탱크가 든 상자를 들고 있던 한 전직 구의원도 검문을 당했다. SCMP는 "당국의 단속 중 4일 시내 곳곳에서 작은 전자 촛불이나 탱크를 그린 스티커 등이 등장했고 많은 이들은 소셜미디어에 통해 과거에 참석했던 촛불 집회 사진을 다시 올렸다"며 "'US 8964'라는 번호판을 단 한 스포츠카가 빅토리아 파크를 지나가기도 했다"고 전했다. '8964'는 천안문 민주화 시위가 일어난 1989년 6월 4일을 상징하는 숫자다.

1989년 중국 베이징에서 벌어진 민주화 운동 ‘6.4 천안문 사태’를 상징하는 사진. 천안문 광장에서 이동하는 탱크를 한 남성이 가로막고 있다. 이 남성의 신원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로이터=연합뉴스]

외국 공관도 촛불을 밝혔다. 홍콩 주재 미국 총영사관은 창가에 전자 촛불을 밝혔고, 페이스북엔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의 성명을 게재했다. 앞서 토니 블링컨 미 국무부 장관은 천안문 시위에 대한 유혈진압을 "잔인한 폭력"으로 규정하고 "용감한 개인들의 노력은 잊히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자 중국 외교부의 홍콩 사무소인 주홍콩 특파원공서는 "기만적인 정치적 쇼를 중단하라"고 반발했다.

주홍콩 EU 사무소는 트위터를 통해 "33년 전 중국의 폭력적 진압은 세계에 충격을 줬다"며 "EU는 언제나 전 세계에서 평화롭게 자유와 인권을 옹호하는 이들과 연대한다"고 밝혔다. 또 홍콩 주재 네덜란드·프랑스·핀란드 영사관도 EU 사무소의 트윗을 리트윗했다.

김영주 기자 humanest@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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