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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7 (월)

이슈 물가와 GDP

[박용범 특파원의 월스트리트 인사이트] 빅스텝에도 “이 속도론 물가 못 잡아” 회의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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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부동산 경기를 알고 싶으면 홈디포, 로우스에 가라는 말이 있다. 시장에 거품이 꺼져간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어 과연 어떤지 궁금해 매장을 방문했다. 놀라운 것은 늦은 시간까지 쇼핑객들이 북적이는 모습이었다. 코로나19 사태 속에서 ‘집콕’ 시간이 늘어나며 홈디포는 초호황을 누렸다. 지난 5월 17일(현지시간) 발표한 홈디포 분기 실적(2~4월)에 따르면 매출은 389억1000만달러로 시장 전망치(367억2000만달러)를 크게 상회했다. 순이익은 42억3000만달러를 기록, 시장 전망치보다 8000만달러를 초과했다. 점포당 매출 증가율은 2.2%를 기록하는 등 순항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회사 측은 올해 연간 매출 증가율을 3%로 제시해 시장 전망치(1.8%)보다 높아 호평을 받았다.

홈디포의 실적은 미국 주택 경기를 가늠할 수 있는 바로미터로 통한다. 엔데믹에 들어섰는데도 비교적 실적이 나쁘지 않은 것은 주택 경기가 여전히 뜨겁기 때문이다. 홈디포에 가면 ‘이사 코너’가 따로 있다. 미국에서는 한국과 같은 포장이사 서비스가 드물다. 이사를 하려면 홈디포에서 포장박스부터 구입해야 한다. 이런 주택용품 유통업체가 호황을 누리는 것은 그만큼 이사가 많다는 뜻이다.

지난 4월 미국의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이 8.3%(전년 동월 대비)를 기록하며 전문가 예상치를 뛰어넘자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3월(8.5%)보다는 누그러졌지만 40여 년 만에 최고 수준의 고공 행진을 계속하고 있기 때문이다. 월가에서는 이제 인플레이션 고점을 통과했다는 분석이 나오지만 미국에 살다보면 ‘과연 이게 끝일까’라는 생각이 더 강하게 든다. 가장 큰 이유는 홈디포 사례에서 확인되는 부동산 경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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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롬 파월 FRB의장 <사진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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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월, 지나치게 시장 친화적 비판 제기

미국이 유례없는 주택 공급난에 시달리면서 물가를 압박하고 있다. 모기지(주택담보대출) 금리가 5%를 넘어서면 부동산 매수 열기가 식을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다. 그렇지만 금리가 더 오를 것으로 예상하며 달려드는 매수자가 늘어나 오히려 더 가수요를 야기하고 있다. 대출 없이 100% 현금으로 구매할 수 있는 재력을 가진 계층도 계속해서 주택을 사들이고 있다. 4월 기준 주거비는 전년 동월 대비 5.1% 상승했다. 전체 상승률에 크게 못 미친다고 경시하면 큰 오산이다. 미국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에서 30%는 주거비가 차지하기 때문이다. 가계 지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그만큼 크기 때문이다. 미국은 주택 시장에서도 철저한 시장 논리가 지배한다. 주택 가격이 오르고 모기지금리가 오르면 렌트비(월세)로 바로바로 전가가 되는 시장이라는 뜻이다.

한국인들이 많이 살고 있는 뉴저지주 버겐카운티의 경우 주택 가격이 팬데믹 전 대비 20~30%씩 올랐다. 테너플라이 등 공립학교가 우수한 지역은 상대적으로 더 크게 올랐다. 가장 일반적인 3베드룸(방 3개짜리) 단독주택의 경우 2020년에는 월 렌트비가 3000~4000달러가 주류를 이뤘다. 하지만 최근에는 4000달러 이하에서는 렌트를 구할 수가 없다. 매물 자체가 귀해서 부르는 게 값이다. 일단 새롭게 렌트를 받으려는 집이 공동망에 뜨면 난리가 난다. 집주인이 제시한 희망 렌트 가격은 최소 가이드라인이다. 렌트를 희망하는 사람은 이보다 더 높은 금액을 써 내고, 신용상태가 좋아야 간신히 집을 구할 수 있는 상황이다. 뉴저지 지역의 한 리얼터(공인중개사)는 “공동망에 올린 지 2시간도 안 돼 10여 곳에서 집을 보여 달라고 요청이 왔다”며 “이틀도 안 돼서 가장 높고 가장 좋은 조건(highest and best)을 써 낸 사람이 낙찰을 받았다”고 말했다. 서로 호가를 올리는 패턴이 경매를 연상시킨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지금 미국의 주택 시장은 경매보다 더 어렵다. 경매는 상대방이 얼마에 호가를 제시하는지 실시간으로 알고 베팅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최근 시장에서는 경쟁자의 패를 모르는 상태에서 높은 가격을 던져야 하는 매우 큰 부담이 따른다. 매매 시장은 더 말할 것이 없다. 렌트로 살던 사람이 매매 시장으로 옮겨가면 시장이 좀 안정될 것으로 예상했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동반 상승하는 현상이 계속되고 있다. 주거비와 임금은 인플레이션에 매우 악영향을 미친다. 특히 오르다가도 내리기도 하는 식료품, 에너지 가격과 달리 주거비와 임금은 한번 오르면 큰 위기가 오지 않는 한 내려가지 않는다. 이런 물가를 잡기 위해 가장 선두에 서야 할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실기했다는 비판이 끊이질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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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 버냉키 전 연준 의장은 지난 5월 16일 CNBC와 인터뷰에서 제롬 파월 연준 의장에게 직격탄을 날렸다. 버냉키 전 의장은 “연준의 뒤늦은 대응은 실수였다”고 꼬집었다. 연준 의장을 지낸 인사가 후임자를 공개 비판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버냉키 전 의장은 “파월은 2013년에 내가 테이퍼링(자산매입 축소)을 언급한 당시 연준 이사였고, (이런 언급으로 촉발된) 긴축 발작은 그에게 불쾌한 경험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본인 밑에서 긴축 정책을 펴다가 시장의 엄청난 반발에 부딪혔던 모습을 본 파월 의장의 트라우마를 이해한다는 뜻이다. 버냉키 전 의장은 “파월이 시장에 가능한 많은 경고를 미리 주면서 (긴축 발작을) 피하기 원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파월 의장은 시험 문제를 미리 가르쳐주는 교수 같은 스타일이다. 늘 시장이 충격을 받지 않도록 예측 가능성을 높이는 데 가장 신경을 쓰는 인물이다. 시장 친화적인 메시지를 주는 파월 의장은 때로는 일부 강경 발언 때문에 매파적이라는 비판을 엄청나게 받는다. 하지만 시장이 예상하는 긴축 수위보다 높게 선제적으로 정책을 펼치지 않았다. 단기적으로 보면 파월 의장의 이런 스타일은 주식 투자자들이 환영할 점이다. 하지만 이런 점이 누적돼 더 크게 경제가 멍든다면, 주식 시장은 먼저 영향을 받을 것이다. 변호사 출신답게 예측 가능성을 늘 중시해온 파월 의장. 그의 운전 스타일은 쉽게 바뀌지 않을 공산이 크다. 그럴수록 물가는 더 잡히지 않을 것이다.

[박용범 특파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41호 (2022년 6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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