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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9 (목)

[유광종의 차이나별곡] [193] 침묵하는 지식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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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벼룩 등의 벌레에 물려 갑자기 날뛰는 경우가 있는가 보다. 그 상황을 적는 한자는 ‘소(騷)’다. 이 글자의 우리 용례도 제법 많다. 소란(騷亂), 소동(騷動), 소요(騷擾) 등의 사례다. 소객(騷客)이라는 단어도 있는데, 흔히 시를 읊는 문인을 일컫기도 한다.

조선일보

일러스트=김성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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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만을 보면 ‘소란을 떠는 사람’ 정도로 이해할 수 있지만 그 유래는 문학작품이다. 고대 중국 남방문학의 대표에 해당하는 ‘초사(楚辭)’의 ‘이소(離騷)’편이다. 정의롭지 않은 세상사에 대한 원망을 작자 굴원(屈原)이 낭만주의 시풍으로 그려낸 걸작이다.

그 작품의 후대 영향이 아주 커 무릇 시를 짓는 사람들은 ‘소객’이라고 불렸다. 때로는 둘을 한데 엮어 곧장 ‘시인소객(詩人騷客)’ 등으로도 적었다. 이 호칭에는 떨어지는 잎사귀에도 눈물 흘리는 시인의 다감(多感), 부조리에 저항해 목소리를 내는 지식인의 비판의식이 담겼다.

그와 비슷한 말은 묵객(墨客)이다. 먹[墨]을 다루는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벼루에 먹을 갈아 시문(詩文)을 짓는 지식인 전체의 통칭이다. 그래서 흔히 ‘문인묵객(文人墨客)’으로도 부른다. 앞의 ‘소객’을 조금 변형해 붙인 ‘소인묵객(騷人墨客)’도 곧잘 쓰는 표현이다.

문사(文士), 아사(雅士) 등도 그런 호칭이다. 책을 끼고 살아간다는 뜻에서 쓰는 서생(書生), 독서에만 빠져 지낸다고 해서 적는 서치(書癡) 등도 있다. 때로는 풍류에 끝없이 빠져드는 단점도 드러냈지만 나름대로 사회정의를 구현하는 데 노력했던 집단이다.

따라서 이들이 가을날 매미처럼 소리를 멈추면 곤란하다. 요즘 중국의 지식계가 ‘겨울’ 분위기다. 개혁·개방이 멈추고 과거로의 회귀가 뚜렷해지자 다양한 목소리를 내던 ‘소인묵객’은 사라지고 침묵으로 일관하는 ‘묵객(黙客)’만이 가득하다. 중국의 사회 발전을 위해서는 결코 바람직한 현상이 아니다.

[유광종 종로문화재단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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