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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윤 대통령 ‘CNN 인터뷰’ 보도자료 배포, 실수와 고의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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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BAR_김미나의 정치적 참견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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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21일 용산 대통령실 강당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 공동 기자회견에서 한 취재진의 질문에 나란히 웃음짓고 있다. 대통령실 사진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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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은 취임 뒤 첫 인터뷰를 지난 23일 오전 미국 보도채널 <시엔엔>(CNN)과 했다.

대통령실은 한 시간여 진행한 인터뷰 중 어떤 내용이 편집돼 방송될지 몰라, 직접 방송을 보고 내용을 확인하라고 기자들에게 공지했다. 오후 5시20분, 간단한 인터뷰 내용이 방송되고, 방송 직전 온라인에도 별도의 기사가 올라왔다. 그리고 한 시간 여 지난 오후 6시께 대통령실은 윤 대통령의 인터뷰 발언을 발췌해 공개했다.



―김정은 위원장은 비핵화 대화에 관심이 없어 보이는데, 임기 5년 동안 어떻게 대응하실 계획인가?

“선택은 김정은 위원장에게 달렸다. 우리는 북한을 망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공동 번영을 이루고자 하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핵무장을 강화한다고 해서 평화와 번영에 도움이 된다고 보지 않는다. 아울러 북한이 현재와 같은 상태를 장기적으로 지속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바이든 대통령 방한 기간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도발 가능성이 있었고, 바이든 대통령이 일본에 체류하는 동안 핵실험 가능성에 대한 정보가 입수되고 있는데, 북한이 7차 핵실험을 실시할 경우 어떻게 대처하시겠는가?

“이번 정부의 대처는 이전 정부와 다를 것이다. 북한의 어떠한 위협과 도발 행위에 대해서도 강력하고 단호하게 대처하여 북한의 도발을 저지할 것이다.”

―인도·태평양 경제 프레임워크(IPEF) 참가로 인해 중국이 경제 보복 조치를 취한다면?

“한국이 미국과 안보, 기술 동맹을 강화한다고 해서 중국과의 경제협력을 소홀히 하려는 의도는 없다. 중국이 이를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고 본다.”



대통령실은 방송 인터뷰에서 나오지 않은 내용이라며, 오후 6시17분께 기자들에게 추가로 인터뷰 내용을 공개했다.



―북한의 ICBM 발사와 핵실험 우려가 고조되고 있다. 모든 상황이 한반도의 긴장이 고조되던 2017년으로 돌아가는 것 아닌가 우려된다.

“일시적으로 도발과 대결을 피하는 정책을 펴서는 안 된다. 북한의 눈치를 보며 지나치게 유화적인 정책은 결과적으로 실패했다는 것이 증명됐다.”

―한미 연합훈련 확대를 말씀하셨는데, 북한이 연합훈련을 민감하게 생각하는 상황에서 대응 계획이 있나?

“모든 군대는 대비태세를 유지하기 위해 훈련을 해야 한다.”

―한국에 전술핵 배치 가능성이 있나?

“전술핵 배치에 대해서는 논의된 바 없다.”

―IPEF에 대한 참여 의사를 밝혔는데, 이런 협의체 참여가 한국에게 갖는 의미는 무엇인가.

“이러한 과정에 참여하는 것이 국익에 부합하는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대통령실은 그러면서 “<시엔엔>(CNN) 인터뷰 기사는 출처를 <시엔엔>으로 하되, 대통령 발언은 저희가 제공한 내용에 기반해 작성해 주시기 바란다”고 공지했다. 그러나 <시엔엔> 인터뷰 기사는 공지된 내용과는 결이 달랐다.

“일시적으로 도발과 대결을 피하는 정책을 펴서는 안 된다. 북한의 눈치를 보며 지나치게 유화적인 정책은 결과적으로 실패했다는 것이 증명됐다”라고 공지한 내용은 실제 기사에선 이렇게 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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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들이 “기사 원문과 해석이 다른 부분이 있다”고 문제를 제기하자,대통령실은 2시간여 뒤 “혼선을 드려 죄송하다”며 윤 대통령의 실제 발언록을 공개했다. 그러면서 <시엔엔> 질문에 “일시적인 도발과 대결을 피하기 위해서, 많은 사람들은 그걸 ‘굴종 외교’라고 표현을 하는데, 저쪽의 심기 내지는 저쪽의 눈치를 보는 그런 정책은 아무 효과가 없고 실패했다는 것이 지난 5년 동안에 이미 증명이 됐습니다”라고 윤 대통령이 발언했다고 정정했다. 인터뷰에서 문재인 정부를 지칭하는 ‘지난 5년’이나, ‘굴종 외교’라는 표현을 썼음에도, 민감성을 고려해 애초에 공개하지 않았던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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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실은 지난 21일 한-미 정상회담 때도 ‘특정 문구 누락’ 의심을 샀다. 당시 <워싱턴 포스트> 기자는 윤 대통령에게 내각의 남성 편중을 지적하며 “대선 선거운동 당시 여성가족부 폐지를 공약했다”고 질문했다. 하지만 당시 동시통역은 이 대목을 통역에서 누락했고, 대통령실이 배포한 자료에도 그 내용이 빠졌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동시통역을 그대로 옮긴 것일 뿐이라고 해명했지만, 윤 대통령이 여가부 폐지 공약을 두고 홍역을 치렀던 탓에 개운치 않은 뒷맛을 남겼다.

앞서 윤 대통령은 대선 직전이던 지난해 3월 공개된 <워싱턴포스트>와의 서면 인터뷰에서도 비슷한 논란을 자초한 바 있다. 당시 <워싱턴포스트> 기사를 보면 윤 대통령은 “페미니즘은 휴머니즘의 하나로, 성차별과 불평등을 현실로 인정하고 불평등과 차별을 시정해나가려는 운동을 말하는 것”이라고 언급하며 “그런 차원에서 페미니스트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워싱턴포스트>는 이 답변을 번역해 기사에 다음과 같이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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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후 선대본부는 ‘행정상의 실수’라고 주장하며 수정된 답변서를 공개했다. 거기엔 “그런 차원에서 페미니스트라고 생각한다”는 부분이 삭제돼 있었다. 기사를 작성한 <워싱턴포스트> 기자는 자신이 전달받은 해당 부분의 답변 원문을 공개하며 진실 공방이 벌어지기도 했다.

한국어를 영어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어느 정도의 차이는 피하기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연달아 불거지는 ‘뭉개기’와 ‘빼먹기’는 단순 실수일까.

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연구소 교수는 <한겨레>에 “젠더 같은 주제를 예민하게 생각해 논쟁을 피해가려는 측면은 있어 보인다”라며 “의도가 있었는지와는 별개로 ‘회피 전략’으로 볼 수 있을 거 같다. 정부 출범 초기에 논란이 될 부분은 피해가려는 것은 당연할 수 있지만, 언제까지 양해하거나 봐줄 수는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미나 기자 mi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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