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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정수석실 없는 ‘민알못’ 정부…대통령 목에 방울은 누가 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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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S] 성한용의 정치 막전막후

새 정부 민정수석실 폐지 논란

직언 낯선 검사 출신 새 대통령

민정수석실 ‘대통령 눈·귀’ 해당

5공 때도, DJ 때도 나름 구실해

‘민정’ 없는 대통령에 우려 커져


한겨레

윤석열 대통령이 11일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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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이 되면 민심을 알 수 없습니다. 청와대 구중궁궐에 갇혀 인의 장막에 둘러싸이기 때문이라는 설명이 있었습니다. 사실이 아닙니다. 대통령이 민심과 멀어지는 것은 공간의 문제가 아닙니다.

사람은 높은 지위에 올라가면 아래에 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살필 수 없습니다. 참모들은 윗사람의 심기가 불편해지는 보고를 가급적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인격이 부족하고 사악해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신이 인간이라는 존재를 그렇게 만들었습니다.

임금은 백성의 마음을 알 수 없습니다. 대통령은 국민의 마음을 알 수 없습니다.

이 난제를 해소하기 위해 오래전부터 위정자들은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임금은 전국 각지에 어사(御史)를 파견했습니다. 평복을 입고 직접 밖으로 나가서 민심을 살피기도 했습니다.

역대 대통령들은 민정수석을 두고 민심을 파악해서 대통령에게 보고하는 임무를 맡겼습니다. 민정(民情)은 본래 백성의 사정이라는 뜻입니다. 영어로는 시빌 어페어스(Civil Affairs)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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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정 기능 상실, 절반만 맞는 얘기

윤석열 대통령에게는 민정수석이 없습니다. 민정비서관도 없습니다. 대통령 선거 공약집에서 “수석비서관 폐지, 민정수석실 폐지, 제2부속실 폐지, 인원 30% 감축 등 조직 슬림화하여 전략조직으로 재편”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대통령실이 최근 공개한 조직도를 보면 수석비서관은 폐지하지 못했습니다. 민정수석실과 제2부속실은 폐지했습니다. 인원 30% 감축은 조금 더 두고 봐야겠지만 달성하기 어려운 목표인 것 같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민정수석실 폐지를 약속했던 이유는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청와대부터 단속해야 하는데 본연의 기능에서 완전히 벗어났다”는 것이었습니다. “대통령이 수사, 조세, 세무 등 사정 기능을 할 수 있는 기관들을 민정수석을 통해 장악해서 정치적 반대 세력을 이것(민정수석실)으로써 합법을 위장해 통제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고 했습니다.

절반만 맞는 얘기입니다. 권위주의 정권 시절 민정수석실이 검찰, 경찰, 국세청 등을 통제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노무현 대통령부터 민정수석실의 임무는 크게 달라졌습니다.

노무현 청와대 민정수석을 두차례나 지낸 문재인 대통령이 잘 기록해놓았습니다. “그 시기 민정수석실의 첫째 과제는 군림하지 않는 청와대를 만드는 것이었다. 참여정부에선 ‘권위주의 타파’란 말로 표현했다.”

“민정수석실 업무 내용 때문에 법조 출신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하면서도, 검찰을 장악할래야 할 수 없는 비검찰 출신을 민정수석으로 임명하고자 한 것이 당선인 생각이었다. 더 나아가 나 같은 사람을 민정수석으로 임명함으로써, 검찰을 장악할 의사가 없다는 대통령의 의지를 분명하게 천명하고자 한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 시절부터 민정수석실의 임무는 민심 파악 및 보고(민정), 공직 후보자 인사 검증(공직기강), 대통령의 각종 법률 쟁점 검토(법무), 비서실 내부 감찰과 사정 기관과의 연락 업무(사정) 등이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공직 후보자 인사 검증은 법무부에 맡기겠다고 했습니다. 그럴 수 있습니다. 대통령의 각종 법률 쟁점 검토, 비서실 내부 감찰과 사정 기관과의 연락 업무는 비서실장 직할 공직기강비서관과 법무비서관이 맡게 될 것 같습니다.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러면 민정수석실의 가장 중요한 임무라고 할 수 있는 “민심을 파악해서 대통령에게 보고하는 업무”는 어디로 갔을까요? 사라졌습니다. 민정비서관이라는 자리 자체가 없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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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정’ 왜 없앴을까?

윤석열 대통령이 민정수석, 민정비서관 등 민정이라는 단어가 들어가는 수석비서관과 비서관 직책을 다 없앤 이유가 뭘까요?

첫째, 잘 몰라서 그런 것 같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정치 경험이 없습니다. 민간 회사에 다녀본 일도 없고 사업을 해본 일도 없습니다.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검찰 조직의 경험만 있습니다. 그런 경력의 사람들은 오히려 자신이 현장을 잘 안다고 착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지휘 보고 계통을 거치며 깔끔하게 정리되어 올라오는 정제된 정보를 더 신뢰하는 것입니다.

비서실에 검사 및 검찰 사무관 출신들을 집중적으로 포진시킨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유능하면서도 믿을 수 있는’ 부하들을 배치하면 제대로 된 보고가 올라올 것으로 착각하는 것입니다. 검찰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대통령은 검찰총장이 아닙니다.

둘째, 반문재인 방어기제가 작동하는 것 같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의 말과 행동을 살펴보면 ‘반문재인’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이 많습니다. 마치 “문재인 대통령은 못 했지만 나는 할 수 있다”고 자랑하는 것 같습니다.

대통령 집무실을 용산으로 옮기고 청와대를 시민들에게 개방했습니다. 출근하면서 기자들과 문답을 주고받습니다. 밥을 혼자 먹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술도 끊겠다고 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하지 못했던 일들입니다.

민정수석을 대통령 비서실 직제에서 지워버린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민정수석으로 공직을 시작했습니다. 자신이 가장 좋아했던 조국 교수를 민정수석으로 기용했습니다. 조국 민정수석을 법무부 장관에 앉히면서 검찰과 마찰을 빚는 바람에 정권을 넘겨줬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정체성을 민정수석이라고 말해도 어색하지 않을 지경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그런 민정수석 자리를 아예 없애버림으로써 문재인 대통령과 자신을 차별화하려는 것 같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임기 말까지 민정수석을 두지 않고 갈 것인지, 아니면 임기 도중에 민정수석을 다시 두게 될지는 알 수 없습니다. 분명한 것은 윤석열 대통령처럼 강한 리더십을 가진 사람일수록 ‘민심을 제대로 파악해 대통령에게 직언을 서슴지 않는’ 민정수석이 필요하다는 사실입니다. 역설적이지요?

민정수석의 가장 중요한 덕목은 정직함과 우직함입니다. 정직함은 대통령을 속이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우직함은 늘 목을 걸고 직언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5공화국 김용갑 민정수석 사례가 있습니다. 독재자 전두환은 임기 도중 ‘땡전뉴스’를 없앴고,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받아들였고, 동생 전경환씨 국회의원 출마를 접었습니다. ‘대통령의 결단’으로 포장했지만, 김용갑 민정수석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대통령 직선제 개헌 수용 대목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김용갑 민정수석은 1987년 6월 항쟁이 시작된 6월10일 민정비서실 직원 전원을 시내 곳곳으로 내보내 민심 동향을 파악하게 했습니다. 그 자신도 명동을 거쳐 종로 일대 시위 현장을 직접 돌아다녔습니다. 종일 시위대에 파묻혀 최루가스로 범벅이 됐습니다.

다음날 아침에는 시위대가 철야농성을 벌이고 있던 명동성당까지 들어갔습니다. 그는 현장에서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았습니다. 중산층이 반정부 시위에 가담했고 반노태우 구호가 등장하는 것을 보고 정권의 존립마저 위태롭다고 생각했습니다. ‘4·13 선언 철회와 직선제 수용, 김대중씨 사면 복권’을 골간으로 하는 정국 수습 보고서를 만들었습니다. 그는 대통령 참모들을 먼저 설득하기 시작했습니다. 김윤환 정무1수석비서관과 이런 대화를 나눴습니다.

“그러자 잠깐 골똘하던 김 수석이 물었다. ‘그럼 누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겠습니까?’ 과연 누가 대통령에게 직접 보고하겠냐는 거였다. 이미 대통령이 담화문을 통해 호헌을 선언한 마당에 어떻게 이제 와서 그 뜻을 거스를 수 있냐는 고민이었다. 결국 악역 아닌 악역은 나의 몫이었다.”

전두환 대통령에게 직접 보고하는 장면은 이렇게 기록해놓았습니다.

“나는 대통령에게 세 가지를 물었다.

‘각하, 지금 대통령 임기가 얼마나 남았습니까?’

대통령은 ‘이번엔 또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 표정이다. 자문자답식으로 내 물음에 대한 답을 내가 스스로 내렸다.

‘8개월 정도 남았습니다.’

다시 물었다.

‘8개월 동안 대통령에게 등을 돌린 민심을 회복할 수 있다고 보십니까?’

다시 내 스스로 대답했다.

‘회복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방법이 아예 없을까요? 그건 아닙니다. 딱 한 가지 있습니다. 국민들이 원하는 것을 들어주십시오.’

나의 거침없는 보고 아닌 보고를 듣던 전 대통령은 가늘게 한숨을 쉬었다.

‘김 수석… 그게 뭔가?’

‘직선제를 수용하시면 됩니다.’

‘……’”



눈과 귀 없이 민심 읽기 가능할까

대통령 직선제 개헌은 그 뒤 복잡한 과정을 거쳐 노태우의 6·29 선언으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김용갑 민정수석이 없었다면 어떻게 됐을지 모르는 일입니다.

1998년 2월 취임한 김대중 대통령은 민정수석을 없애고 민정비서관만 뒀습니다. 1999년 6월 민정수석실을 다시 만들었습니다.

“청와대 민정수석실을 신설했다. 여론 수렴 기능을 강화하라는 재야 및 시민 단체의 건의를 수용했다. 민정수석 비서관에 김성재 한신대 교수를 임명했다. 김 민정수석에 당부했다.

‘국민 속에 들어가 국민의 소리를 듣고 상의하는 자리가 돼야 합니다.’”

김대중 대통령이 민정수석을 다시 둔 것은 ‘민심’ 때문이었습니다. 임기 초에 터진 ‘옷 로비 의혹’과 ‘조폐공사 파업 유도 사건’의 영향이 컸습니다. 실체가 분명하지 않은 두 사건이 민심의 분노를 촉발한 것은 중산층과 서민들의 박탈감 때문이었습니다. 평생 정치인으로 산 김대중 대통령도 민심을 제대로 읽고 대처하기가 그처럼 어려웠던 것입니다.

걱정입니다. 민정수석은 민심을 읽는 대통령의 눈과 귀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민심을 알지 못하는 ‘민알못’입니다. 그런데도 윤석열 대통령 비서실에는 민정수석도 없고 민정비서관도 없습니다. 과연 어떻게 될까요?

정치부 선임기자 shy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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