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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원자재 가격 상승보다 무서운 中企 '졸속 규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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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기질 샌드위치패널 실험 통과해야…장소 부족비용 부담

"대기업엔 이런 규정없어…정부 불필요한 인증만 늘려"

아시아경제

한국발포플라스틱공업협동조합이 18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 중소기업DMC타워에서 유기질 단열재 샌드위치패널에 대한 규제 철회를 촉구하는 시위를 열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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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최동현 기자] 정부의 비합리적 규제가 중소기업을 옭아매고 있다. 제도 시행에 충분한 여건을 갖추지 못했음에도 여론에 편승해 땜질식 법안을 만드는가 하면, 정부 기관의 권한 확대를 위해 불필요한 인증만 과다 양산하고 있다는 불만이 업계 곳곳에서 터져나오고 있다.

"원자재 가격 상승에 따른 손해요? 그것보다 정부의 졸속행정에 따른 피해가 더 치명적입니다." 최근 서울 마포구 상암동 중소기업중앙회DMC타워에서 만난 강민성 전국난연지회 회장의 푸념이다. 그는 "정부가 중소기업이 주로 생산하는 유기질 단열재 샌드위치패널에 과도한 성능시험을 요구하고 있다"면서 "반면 대기업이 만드는 무기질 단열재엔 이런 규제 없이 일방적인 특혜를 주고 있다"고 성토했다.

건자재로 쓰이는 샌드위치패널은 ‘복합자재(철판+단열재+철판)’로 이뤄졌다. 철판 가운데 들어가는 단열재는 크게 유기질과 무기질로 나뉜다. 유기질은 우레탄이나 스티로폼 등 석유화학제품이 원료다. 무기질은 유리원료나 광물을 녹여 섬유형태로 만든 인조광물섬유다. 원료에서도 추측 가능하듯 유기질은 불에 잘 타고 유독가스를 발생시킨다. 반면 무기질은 불에 타지 않는 불연재다. 유기질은 최근 몇 년간 대형물류센터 화재 사고에서 대형 참사를 일으킨 주범으로 지목됐고 지난해 12월23일 건축법 개정안을 통해 규제가 강화됐다.

새롭게 마련된 규제의 핵심은 앞으로 유기질 샌드위치패널을 생산할 때 ‘샌드위치패널용 실물모형실험(KS F 13784-1)’과 ‘외벽 단열재 실물모형시험(KS F 8414)’을 통과해야 한다는 점이다. 기존에는 가로와 세로 약 10㎝ 크기의 샘플을 연소해 난연·준불연·불연 등급을 매기는 콘칼로리미터 시험만 했다. 하지만 이제는 여기에 더해 실제 건축물과 유사한 공간을 꾸며 추가 시험까지 통과한 소재만 사용하도록 바뀌었다.

문제는 시험장소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현재 국내에서 이 시험을 진행할 수 있는 기관은 국토교통부 산하기관인 한국기술건설연구원과 민간기관인 한국건설생활환경시험연구원(KCL) 삼척시험장 두 곳뿐이다. 강 회장은 "2주에서 한 달 가까이 걸리는 시험을 국내에 단 두 곳만 만들어 놓았을 뿐 아니라 성능기준이나 결과판정 등 시험 통과 기준도 모호하다"면서 "수천만 원의 시험 비용도 전액 중소기업이 부담한다"고 호소했다.

올 하반기부터 상황은 더 심각해진다. 법안의 유예기간이 6월 말로 끝나면 앞으로 유기질 샌드위치패널을 생산하는 모든 업체는 시험에 통과한 인증품만 납품해야 해서다. 하지만 법안 시행 6개월이 지난 현재 새롭게 도입된 시험을 통과한 업체는 단 한 곳에 불과하다. 수요 대비 공급이 턱없이 부족해 이른바 ‘샌드위치패널 대란’이 발생할 수도 있다. 물론 KCC와 벽산 등에서 생산하는 무기질 샌드위치패널은 이 같은 시험 규제가 없어 쉽게 조달이 가능하지만 가격이 비싼 무기질로만 모든 공사현장을 커버하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강 회장은 "국민이 바라는 화재안전의 근본적인 취지 달성을 위한 연구개발(R&D)과 기술성능 확보를 위해서라도 최소 2년간의 시행유예 기간이 필요하다"면서 "국토부가 적극 대화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같은 문제들이 여러 차례 지적됐는데도 뚜렷한 해법은 없다. 정부는 여전히 규정만 들이밀 뿐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

최동현 기자 nel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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