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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성소수자도 사랑"…금기 건드린 여목사의 반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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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성소수자혐오반대의 날 앞두고

제2회 프라이드 어워드 시상식 열려

퀴어성서주석 번역출판위원회 수상

2019년 첫 수상자는 고 노회찬 의원

중앙일보

왼쪽부터 임보라 목사와 유연희 목사.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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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17일은 국제 성소수자 혐오 반대의 날. 1990년 세계보건기구(WHO)가 동성애를 질병 목록에서 삭제한 날이자, 이를 기념해 2000년대 중반부터 세계 곳곳에서 성소수자의 자긍심을 높이고 차별과 배제에 반대하는 행사가 열리는 때다.

한국에서도 사단법인 신나는센터(이사장 김조광수)가 주최한 '프라이드 갈라'가 9일 서울 여의도에서 열려 축하 공연과 함께 성소수자 권익 증진에 앞장선 이에게 주는 '프라이드 어워드' 시상식이 진행됐다. 이 상의 2019년 첫 수상자는 고(故) 노회찬 의원. 올해는 7년 만에 두 권의 『퀴어 성서 주석』(무지개신학연구소)을 펴낸 '퀴어 성서 주석 번역출판위원회'가 받았다. 코로나19로 관련 행사가 3년 만에 열리면서 역대 두 번째 수상자가 됐다.

그 중 유연희(61·미국 연합감리교회) 목사와 임보라(54·섬돌향린교회) 목사를 시상식 전에 만났다. "제가 20대 때 교회학교에서 가르쳤던 학생을 비롯해 저에게는 성소수자가 낯선 존재가 아니었어요. 2007년 차별금지법 제정과 관련해서 일부 기독교인들이 '죄'라며 반대하는 걸 보면서 물음표를 갖게 됐습니다." 이듬해 초부터 관련 토론과 성소수자 그리스도인들의 모임 등에 참여하면서 적극적인 활동을 펼쳐온 임 목사의 말이다.

구약성서를 전공한 박사인 유 목사는 1980년대 후반 미국에 유학하며 교직원·신자 등 성소수자를 자연스럽게 접했다. "한국에서 들려오는 소식들을 보니 가장 핍박받는 사람이 퀴어 크리스천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한국에 돌아가면 어떤 식으로든 퀴어 크리스천들한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사역을 해야 되겠다는 생각을 항상 갖고 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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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쪾부터 임보라 목사와 유연희 목사.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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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이 의기투합해 번역을 추진한『퀴어 성서 주석』은 서구의 목회자·신학자들이 여성과 성소수자 등의 관점에서 성경을 바라본 책. 2006년 영국에서 처음 나왔다. 두 권 합쳐 1300쪽(한국판 기준) 넘는 방대한 분량이다. 2015년 임 목사가 소셜미디어에 올린 글을 보고 초벌 번역에 자원한 이들과 감수를 맡은 신학자들까지 32명이 참여해 우리말로 옮겼다. "번역에 참여한 분들 중에 당사자(성소수자) 분들이 있는데, 어떤 분들은 울면서 번역했다고 그러더라고요. 활자를 통해서 '아,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지'하는 것을 절절히 느끼면서 번역을 했다는 분들도 계시고." 임 목사의 말이다.

한국어판 첫머리에는 "조물주께서 가장 사랑하시는 것이 다양성"이라며 "장미가 민들레를 혐오하거나 멸시하지 않듯이, 모든 차이는 경이로운 아름다움이며 존중받을 일이지, 결코 혐오나 차별의 조건이 아닙니다"라고 적혀 있다. 교단 일각에선 이 책을 금기시하기도 했지만, 지난해 초 1권의 텀블벅 펀딩은 목표액 500만원을 878% 달성할 만큼 반응이 뜨거웠다.

유 목사는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교인들의 인식이 변화하는 것에 비해 교단들의 보수적인 시각이 "과잉 대표 되어있다"고 말했다. 예컨대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이 올해초 발표한 개신교인 1000명 대상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차별금지법 제정에 찬성(42.4%)한 응답자가 반대(31.5%)한 응답자보다 많은데, 2020년 조사보다 '반대'는 줄고 '판단 유보'가 늘었다.

성소수자에 대한 교회의 시각이 바뀔지 묻자 임 목사는 "더디지만 바뀔 것"이라며 과거와 달리 여성이 목사가 된 여러 교단의 변화를 언급했다. "1995년에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 측이 여성 목사 안수를 통과시켰습니다. 한국 감리교는 50년대부터, 저희 한국기독교장로회는 70년대부터 여성 목사 안수가 됐고요. 극렬하게 반대했던 성서학자들이 근거로 댄 것이 성서에 금지되어 있다, 여성은 교회에서 잠잠해야 한다는 논리였죠."

수상 무대에서 임 목사는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해 국회 앞에서 진행중인 농성 소식을 전하며 "국회의원들이 더 이상 뒤로 물러나지 않도록 힘을 실어달라"고 했다. 이날 행사에선 미하일 라이펜슈룸 주한독일대사,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위원장, 기업인으로는 이승우 길리어드 사이언스 대표가 축사를 했다. 주한미국대사관 크리스토퍼 델 코르소 대리대사는 영상으로 축사를 전했다. 행사를 마련한 신나는센터는 국내 최초로 공개 동성결혼식을 올린 김조광수·김승환 커플을 비롯해 성소수자와 그 인권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만든 비영리 문화예술단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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