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리고 버리고 또 버리고…."
11일 길상사에서 입적한 법정 스님의 삶은 한마디로 비우고 버리는 삶이다. 비우고 버리고 낮춤으로써 역설적으로 더 부자가 되고 행복한 삶이다.
스님은 생전 "우리는 필요에 따라 소유한다. 하지만 그 소유 때문에 마음이 쓰이게 된다. 따라서 무엇을 갖는 것은 다른 한편 무엇에 얽매이는 일, 그러므로 많이 가지면 그만큼 많이 얽매이는 것"이라고 말했다.
세속 명리와 번잡함을 싫어했던 스님은 송광사 불일암 이후 최근까지 강원도 산골 오두막에서 은둔의 삶을 살았다. 지금 그 오두막은 폭설로 인해 5월까지 출입이 어려울 정도로 세속과 멀리 떨어져 있다.
상좌와 지인들 만류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홀로 땔감을 구하고 밭을 일구며 청빈의 삶을 실천했다.
법정 스님은 1993년 열반한 성철 스님에 이어 대중에게 가장 인지도가 높은 스님이다. 그러나 평생 불교의 가르침을 지키는 출가수행자로서의 본분을 잃지 않았다. 자신이 창건한 길상사의 회주를 한동안 맡았을 뿐 그 흔한 사찰 주지 한 번 지내지 않았다.
속세 나이 23세, 출가에 대한 스님의 변은 유명하다.
"난 그 어디에도 매이지 않는 자유인이 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휴전이 되어 포로 송환이 있을 때 남쪽도 북쪽도 마다하고 제3국을 선택해 한반도를 떠나간 사람들 바로 그런 심경이었다." 스님은 한 핏줄끼리 총부리를 겨눈 한국전쟁을 경험하면서 인간 존재에 대한 물음 앞에서 고민한다. 그 고민은 1954년 서울 안국동 선학원에서 당대 선승 효봉 스님(1888~1966, 1962년 조계종 통합종단이 출범한 후 초대 종정)을 만난 뒤 풀린다. 그 자리에서 머리를 깎았다. 전남대 상과대 3학년으로 싸락눈이 내리던 어느날이었다.
"삭발하고 먹물옷으로 갈아 입고 나니 훨훨 날아갈 것 같았다. 어찌나 기분이 좋던지 나는 그길로 밖에 나가 종로통을 한 바퀴 돌았었다."
다음날 통영 미래사로 내려가 부목(負木ㆍ땔감을 담당하는 나무꾼)부터 시작해 행자 생활을 했다. 당시 환속하기 전의 고은 시인 등이 함께 공부했다.
법정 스님은 이듬해 사미계를 받은 후 지리산 쌍계사에서 정진했다. 28세 되던 1959년 3월 양산 통도사에서 자운 율사를 계사로 비구계를 받았고, 1959년 4월 해인사 전문강원에서 명봉 스님을 강주로 대교과를 졸업했다.
1960년 봄부터 이듬해 여름까지 통도사에서 운허 스님과 함께 '불교사전' 편찬에 참여하다 4ㆍ19와 5ㆍ16을 겪었다.
이 시절 함석헌, 장준하, 김동길 등과 함께 민주수호국민협의회 결성과 유신철폐운동에 참여했던 스님은 1975년 인혁당 사건으로 충격을 받은 후 반체제운동의 의미와 출가수행자로서의 자세를 고민하다 다시 걸망을 짊어졌다.
출가 본사 송광사로 내려온 법정 스님은 1975년 10월부터 송광사 뒷산에 불일암을 짓고 홀로 살기 시작했다.
1976년 산문집 '무소유'를 낸 후 찾아오는 사람이 많아지자 불일암 생활 17년째 되던 1992년 다시 출가하는 마음으로 불일암을 떠나 강원도 화전민이 살던 산골 오두막에서 지금까지 혼자 지내왔다.
법정 스님은 평소에는 강원도 산골에서 지냈지만 대중과의 소통은 계속했다. 특히 1996년 고급 요정이던 성북동의 대원각을 기부받아 이듬해 12월 길상사로 탈바꿈시켜 창건한 후 회주로 주석하면서 1년에 여러 차례 정기 법문을 들려줬다. 법정 스님은 2003년 12월에는 길상사 회주 자리도 내놓았다. 하지만 정기 법문은 계속하면서 시대의 잘못은 날카롭게 꾸짖고, 세상살이의 번뇌를 호소하는 대중을 위로했다.
스님은 해인사에 살 당시 팔만대장경이 있는 장경각을 가리켜 "빨래판 같이 생긴 것이요?"라고 묻던 아주머니 말을 듣고 아무리 뛰어난 지혜와 자비의 가르침이라도 알아볼 수 없는 글자로 남아 있으면 무용지물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이 경험은 부처님 가르침을 쉬운 말과 글로 옮기는 밑바탕이 됐다.
[이향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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