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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5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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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회 신부 “차별금지법 반대하는 신부 없어…천주교는 스스로 현실 고민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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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들이나 수녀들에게 물어보면 차별금지법은 당연히 필요한 법이라고 해요. 나서서 말하지 않아서 그렇지 합리적인 시민이라면 누구나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중략) 약자를 포용하지 못하는 종교는 무엇이 잘못됐는지 스스로 의심해봐야 해요.
박상훈 신부·예수회 인권연대연구센터 소장

한국 천주교는 공식적으로 차별금지법(평등법)의 취지에 공감하면서도 법안이 부당한 차별을 금지한 사유 가운데 ‘성별 정체성’이 포함된 점을 우려해왔다. 동성애와 관련이 있는 성별 정체성이라는 개념이 남녀의 성과 사랑, 혼인의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는 천주교 신앙과 어긋난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차별금지법 입법을 지원하는 활동을 펼치는 박상훈 신부는 일선 성직자들의 분위기는 다르다고 전한다. 지난 4일 서울 성북구 성가소비녀회에서 박 신부를 만나 현장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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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훈 신부가 지난 4일 서울 성북구 성가소비녀회 성당에서 차별금지법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중대재해처벌법 입법을 지원하는 활동도 펼쳤던 박 신부는 예수회가 ‘신앙에 기초를 둔, 신앙에 봉사하는 정의의 실현’을 강조한 점이 사목 활동에 영향을 미쳤다고 설명했다. 배우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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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금지법 계기로 신부들도 성소수자 문제에 관심"


박 신부는 차별금지법의 내용을 아는 천주교 성직자들과 수도자들 가운데 입법에 반대하는 사람은 없다고 설명했다. 다만 천주교 내부에서 동성애를 비롯한 성소수자 문제가 적극적으로 논의되는 상황이 아니기 때문에 겉으로 드러나는 움직임이 적어 보인다는 설명이 뒤따랐다. 박 신부는 “성소수자들이 스스로를 드러내기가 어려운 상황에서 성직자들이 그들을 접하지 못하는 상황이고 천주교에서 성소수자만 담당하는 사목 분야가 없기 때문에 누가 나설 수가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차별금지법이 최근 사회적 의제로 부상하면서 자연히 성소수자의 인권과 신앙에 관심을 갖는 신부와 수도자가 늘어났다고 박 신부는 설명했다. 박 신부는 “수녀들의 경우에는 20, 30년 전부터 성소수자들을 도왔지만 사목자들 사이에서 동성애 문제가 알려지게 된 것은 최근”이라면서 “천주교 내부에 성소수자 신자들이 결성한 몇몇 그룹이 있다. 그들의 요청으로 미사를 집전하는 신부들이 있다”고 밝혔다.

"우리가 언제 차별했지?"라고 묻는다면


성소수자 신자들을 여러 차례 만났던 박 신부는 성소수자 신자들이 성당에서 스스로의 정체성을 숨겨야 하는 상황이 차별이라고 설명했다. 박 신부는 오스트리아와 호주에서 신학대학을 다녔고 신부가 되고서는 미국에서 정치철학과 교육철학을 공부했다. 박 신부는 “당시 학과장이 여성 동성애자였는데 누구나 그 사실을 알지만 전혀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면서 “그러나 한국에서는 성소수자 신자들이 숨어있다. 말해봐야 이상한 눈총을 받고 생활하기가 힘들어지는데 밝힐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나를 숨겨야 하는데 내적으로 얼마나 억압이 되겠나. 그래서 그 사람들이 굉장히 아프다”라고 설명했다.

일각에서는 천주교가 성소수자를 차별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실제로 천주교의 공식 교리서는 동성애자들을 ‘존중하고 동정하며 친절하게 대하여 받아들여야 한다’고 가르친다. 이에 대해서 박 신부는 “어떤 사람이 성당에서 성소수자를 만나서 개인적으로 차별하지 않고 인간적으로 대할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멤버십(구성원)에 속할 수 있느냐는 것이냐. 성소수자는 멤버십에 들어갈 수 없다”면서 “천주교의 고유한 전통과 교리가 특정한 그룹을 배척하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차별이다”라고 주장했다.

박 신부는 성소수자 문제는 한국 천주교가 최근 30년 사이에 성장하는 사이에 불거진 비판과 맞닿아 있다고 덧붙였다. “천주교는 기독교에서는 소수인데 영향력은 크다. 권력이 있는 사람들이 많다. 힘이 세다. 그런 교회에 홈리스(노숙인)가 오겠는가? 가난한 사람들이 와서 뭘 하겠는가? 교회 안의 다양한 단체에 소속돼서 눈치를 받지 않고 활동할 수 있는가? 그렇다면 ‘우리가 언제 가난한 사람을 차별했지?’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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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회 인권연대연구센터 사제들이 27일 차별금지법을 지지하는 활동가들이 단식 농성을 벌이고 있는 서울 여의도 국회 2문 앞에서 연대의 의미로 거리 미사를 진행하고 있다. 천주교인권위원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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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윤리 문제에는 왜 교리를 이야기하지 않나"


차별금지법과 관련해 천주교에서는 최근 두 건의 공식 문서가 발표됐다. 염수정 추기경은 담화문(2021년)에서 ‘젠더 이데올로기는 인간을 남자와 여자로 다르게 창조하고 서로 협력하며 조화를 이루게 한 창조주의 섭리를 거스른다’고 밝힌 바 있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생명윤리위원회 성명(2020년) 역시 비슷한 내용이다. 염 추기경은 담화문에서 “동성애 성향을 지닌 것은 자신의 선택이 아닌 경우라도, 그 행동은 자신의 의지에 달려 있으므로 그 행동이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생각하고 올바른 선택을 해야 한다”고 밝혔다. 천주교 공식교리서는 이를 ‘동성애자들은 정결을 지키도록 부름을 받고 있다’고 표현한다.

이에 대해서 박 신부는 “교회의 사명 가운데 하나는 가난한 자를 먼저 사랑하라는 것”이라면서 “지금 배척받고 있는 사람이 있으면 그와 함께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서 그는 한국 천주교가 다른 사회적 현안에 대해서는 교리를 강조하면서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성소수자 문제가 논쟁이 될 때만 교리 이야기가 나온다. 예컨대 십계명 가운데 ‘남의 것을 훔치지 말라’가 있다. 그거야 당연한 소리다. 교리의 의미는 공유할 수 있는 커먼즈(commons)를 독점하지 말라는 이야기다. 여기에는 물과 토지, 건물 등도 포함된다. 우리는 땅과 건물을 독점한다. 재벌은 세습한다. 이것은 교리에 어긋난다. 함께 나눠야 한다. 그런데 아무도 신경을 쓰지 않는다. 경제 윤리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반면 성소수자는 약한 고리다. 아무리 비난해도 손해를 보지 않는다.”

"한국 천주교, 현실 고민하지 않으면 유럽처럼 변할 것"


무엇보다 한국 천주교가 자신과 사회의 현실을 스스로 고민하지 않는 점이 심각한 문제라는 지적이 뒤따랐다. 박 신부는 “내가 신학대학을 다녔던 오스트리아는 원래 가톨릭 국가였다. 그런데 주일미사에 참석하면 성인이 활동했던 커다란 성당에 신자가 10명도 없었고 모두 할머니들이었다. 성당은 음악회나 방송국 행사를 할 때나 꽉 찼다”면서 “한국도 그렇게 변화하고 있다. 성당에 젊은 사람들이 별로 없다. 이게 차별금지법 제정보다도 더 큰 문제”라고 말했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가 26일 발표한 ‘한국 천주교회 통계 2021’에 따르면 한국 천주교는 지난해 처음으로 모든 교구가 65세 이상 신자 비율이 20%가 넘는 ‘초고령 교구’로 진입했다.

박 신부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최대 과제는 교회 개혁이다. 교회는 낮은 쪽으로 내려가야 하고, 바깥으로 나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하느님의 백성이 무엇을 하고, 어떤 어려움을 느끼고, 무슨 고통을 받는지 모르기 때문”이라면서 반면 한국 천주교의 사목 정책은 갈수록 노동현장이나 경제적 양극화와 같은 사회 문제와 멀어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전부터 해오던 사회복지, 원조 활동을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 이대로 본당(성당) 중심으로 나가면 현상을 유지할 뿐이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뜻은 교회 밖으로 나가라는 것"


종교계에는 성직자는 사회 운동가가 아니라는 비판도 있다. 개인 자격으로 사회운동을 펼쳐야 한다는 이야기다. 교회의 가르침을 전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는 의미도 있다. 박 신부는 동의하지 않았다. 박 신부는 “그렇다면 지금 천주교가 운영하는 병원과 학교, 사회복지시설을 문닫고 모두 성당으로 들어가야 한다”면서 “프란치스코 교황이 처음 발표한 문헌이 ‘복음의 기쁨’이다. 그것은 밖으로 나가서 다른 사람들을 개종시키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사람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라는 것이고 그러려면 가장 약한 사람들을 먼저 응원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 신부는 종교만이 할 수 있는 역할이 있다고 강조했다. 뒤에 남겨지는 사람이 없이 모두가 품위 있는 삶을 살 수 있도록, 기쁨을 접할 수 있도록 복음을 전하고 사회를 다독이는 일이다.

“성소수자를 포함해서 우리 사회에는 누가 손을 내밀지 않으면 정말 위태로운 분들이 많습니다. 택배 노동자나 의료 분야의 필수노동자 등 사회적 안전장치 바깥에 있는 분들이 대표적이죠. 판교와 그 주변 지역의 격차를 보면 놀라워요. 그 격차를 그대로 두고 우리가 절대로 행복해질 수 없습니다. 하느님은 모든 인간이 온전하고 존엄하게 살도록 초대하십니다. 누구는 행복하고 누구는 병들고 차별받고 살라고 창조하시지 않았습니다. 교리니 교회법이니 하는 말로 호도하는 말에 묻혀 있으면 안 됩니다. 신앙인은 불가피하게 나보다 약하고 어려운 사람 쪽으로 가게 돼 있습니다. 종교의 본래 의미를 찾아야 하는 시기가 아닌가 합니다.”

김민호 기자 km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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