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찬 배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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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역의 크기는 중요하지 않아요. 촬영장에서 새로운 세상,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는 일이 재미있어요. 나이 들어서 무엇인가 도전하는 것은 설레는 일입니다"
드라마와 영화에서 주로 할아버지 역할로 등장하지만 얼굴은 낯선 배우, 그의 이름은 이동찬이다. 1947년생으로 올해 76세, 외모에서 풍기는 분위기를 보면 연극계에서 오래 활동한 배우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그는 불과 몇 년 전까지 치과 의사였다. 서울대 치과대학을 졸업하고 1977년부터 2019년까지 42년을 치과 의사로 살았다.
치과 의사라는 직업에도 세월의 어스름이 찾아왔다.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손이 떨리고 눈도 어두워서' 손 때 묻은 치과 병원을 정리했다. 병원을 정리한 삶도 나쁘지 않았다. 친구를 만나 수다를 떨고 당구도 치고. 재미는 두 달을 넘기지 못했다. "우울증이 오더라고요". 뭔가 새로운 삶이 필요했다.
그 때 후배로부터 "프로필 사진을 한번 찍어보라"는 권유를 받았다. 연기에 대한 그의 꿈을 아는 후배였다. 마음 한 켠에는 늘 연기가 있었다. 그는 대학 연극 동아리 출신이다. "부끄러움이 많고 소극적인 성격을 고쳐보기 위해서였죠". 그렇게 1년에 한번씩 공연을 하고 잠깐 배우의 꿈을 꿨다.
대학을 졸업하자 삶의 무게가 커졌다. 군대를 가고 결혼을 하고 자녀를 낳고 '가장의 시간'이었다. "연기와는 담을 쌓고 지낸 시간들이에요". 그렇게 가장으로, 치과의사로 살던 그의 삶에 변곡점이 생겼다. 1999년, 연극을 사랑하는 치과 의사들이 '덴탈씨어터'라는 극단을 만들었다. 다시 설렘이 들어왔다.
이동찬 배우 |
취미처럼 극단 생활을 이어갔다. 일주일에 몇 번씩 오후 6시까지 환자를 보고 연습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밤 12시까지 이어지는 연습에 지칠 법도 했지만 마냥 좋았다. 이 배우는 "내가 아닌 작품 속의 다른 사람으로 살아가는 게 재미있었다"며 "어떤 분들은 무대에 서는 걸 좋아한다고 하는데, 저는 무대를 만들어 가는 과정도 좋더라"고 말했다.
70대 중반의 나이였던 2019년 배우의 길로 들어선 건 어찌 보면 숙명이었다. 집에서 그냥 쉴 바에야 원하던 일을 하고 싶었다. "실패하면 그만이지만 한번 해보고 싶었어요". 드라마에서 대사 한 마디 없는 역할, 학생들의 작품 등 역할의 크기는 중요하지 않았다. 10분 촬영을 위해 2~3시간씩 기다리는 일조차도 즐거웠다.
이 배우가 '설레는 노년'을 이야기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은퇴 후 노년에 친구들을 만나면 하는 이야기가 정해져 있다고 한다. 하늘 나라로 간 친구들 이야기, 손주 이야기. 빠져나올 수 없는 대화의 주제들이다. 그는 친구들에게 항상 말한다. "우리에게도 설렘이 있지 않을까. 새로운 걸 한번 찾아보자".
이 배우는 "요즘 복지회관이 잘 발달돼 있는데 가보면 그림 그리는 사람, 악기 배우는 노인들이 꽤 많다. 그런 것들이 하나하나 각자의 마음 속에는 설렘으로 다가오지 않을까"라며 "나이 들어서 쉬어야지라는 생각을 떠나, 더 활동적으로 움직이는게 개인에게 더 큰 희망과 행복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정현수 기자 gustn99@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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