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날 더불어민주당은 검수완박 중재안의 강행 처리에 나섰다. 민주당은 이날 저녁 9시30분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안1소위(소위원장 박주민) 회의를 열고 형사소송법·검찰청법 개정안을 밤늦게까지 심사했다. “여야가 합의한 대로 검찰청법과 형사소송법 조문 작업을 조속히 끝내고, 28일 또는 29일에 국회 본회의를 열어 처리하겠다”(박홍근 원내대표)는 계획에 따른 조치다.
민주당이 중재안 강행 처리에 시동을 거는 건 지난 22일 이뤄진 여야 합의가 사실상 파기됐기 때문이다. 당시 여야는 6대 중대범죄 가운데 공직자·선거·방위사업·대형참사에 대한 검찰 수사권을 즉각 삭제하는 걸 골자로 하는 박병석 의장 중재안에 합의했지만, 국민의힘은 25일 최고위에서 이를 재논의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1시간 반에 걸친 최고위 회의 후 국민의힘 지도부는 “선거 범죄, 공직자 범죄가 검찰 직접수사 대상에서 제외되는 것에 대해 국민의 우려가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이준석 대표), “민주당도 열린 마음으로 재논의에 응해 주길 기대한다”(권성동 원내대표)는 입장을 밝혔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달라진 기류가 최고위 결정에 결정적인 영향을 줬다. 윤 당선인은 이날 오전 배현진 대변인을 통해 “정치권 전체가 헌법 가치 수호와 국민의 삶을 지키는 정답이 무엇일까 깊게 고민하고 중지를 모아 달라”는 뜻을 밝혔다.
민주당 “합의안대로 절차 밟겠다” 국민의힘 “너무 순진했다”
장제원 당선인 비서실장도 통의동 인수위 사무실 앞에서 기자들과 만나 “윤 당선인이 ‘검수완박은 부패완판’이라 말씀한 것과 생각에 전혀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중재안을 그대로 통과시켰다가는 지방선거에 악영향을 줄 수 있겠다 싶을 정도로 사방에서 비난이 쏟아졌다. 반신반의했던 의원들도 윤 당선인 입장이 나온 뒤 재논의 쪽으로 기울었다”고 전했다.
민주당은 즉각 “윤석열 인수위와 국민의힘의 ‘오락가락 말 바꾸기’는 국회 합의를 모독하고 여야 협치를 부정하는 도발”(박홍근 원내대표)이라며 반발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 후보자의 전화 한 통에 국민의힘 당대표가 오락가락하고 있다. 국민의힘이 법무·검찰의 국회지부가 아닌가 의심이 든다”(윤호중 비상대책위원장)는 비판도 나왔다.
이어진 비공개 원내대표단 회의 직후 민주당은 긴급 기자간담회를 열고 법안 단독 처리 의사를 밝혔다. 진성준 민주당 원내수석부대표는 “양당 원내대표가 합의하고 예정한 대로 오늘 국회 법사위에서 법안 심사 일정을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민주당이 이처럼 박 의장 중재안대로 법안을 심사하는 데는 전략적 고려가 작용했다. 단독 처리의 명분을 확보하기 위해서라도 ‘합의안 고수’의 모습을 유지해야 한다는 판단이다. 박 원내대표는 오후 박 의장을 찾아 “합의안대로 차질 없이 의사 절차를 밟겠다”는 뜻도 전했다.
다만 민주당 내부는 강경파가 검수완박 법안 원안 처리를 주장하는 등 술렁였다. 김용민·정청래 의원 등 민주당 의원 20명과 민주당을 ‘위장 탈당’했던 민형배 무소속 의원은 이날 오후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민의힘이 먼저 중재안 합의를 깬 만큼, 민주당의 원안대로 검찰 정상화 입법을 진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중재안에서 1년6개월간 검찰에 남겨두기로 했던 부패·경제 범죄에 대한 수사권도 즉각 박탈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강경파 의원들은 민주당 원내지도부를 향해서도 “보다 강력하게 협상을 진행했어야 함에도, 그러하지 못한 잘못을 지적한다”며 압박했다. 이들은 기자회견을 마친 직후 단체로 박 의장 집무실을 찾아가 “안건을 원안대로 신속하게 처리해 달라”고 요구했다.
국민의힘에서는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웠다”(3선 의원)며 곤혹스러운 기류가 감지됐다. 야권 관계자는 “상세한 의견 교환까지는 아니더라도 권 원내대표와 윤 당선인 측 사이에 직간접적인 소통이 있었을 텐데 ‘미스 커뮤니케이션’이라는 지적을 피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의원총회에서 중재안에 손을 들어준 국민의힘 의원들을 두고는 “대선 승리에 심취해 민생과 직결되는 검수완박 이슈에 너무 순진하게 접근했다”(야권 원로인사)는 비판도 제기됐다.
학계에선 “섣부른 검수완박은 자칫 경찰로 수사권을 다 넘기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 이창현(형법학)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부칙에 1년6개월 후 수사권 삭제를 못 박을 경우, 중수청에 대한 합의가 되지 않으면 경찰로 수사권이 넘어가게 된다”며 “향후 국회에서 중수청 설치안의 합의가 무산되는 또 다른 뇌관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오현석·손국희·김준영 기자 oh.hyunseok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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