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9일 청와대 여민관에서 열린 제18회 국무회의에서 의사봉을 두드리며 개회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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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대통령의 ‘입’인 박수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20일 방송 인터뷰에서 “대통령이 입장을 밝히는 것은 삼권분립의 민주주의에서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그리고는 “국회의 입법권, 이런 걸 안하고 대통령만 바라보는데 도대체 국회의 권한과 의무는 어디로 갔는지 이해를 못 하겠다”며 모든 책임을 국회에 떠넘겼다.
문제는 입법ㆍ사법ㆍ행정의 분리라는 헌법정신 뒤에 숨은 문 대통령의 침묵이 의도적이란 점이다. 결정적 증거는 검수완박 국면에서 멈춰 선 청와대 정무와 홍보기능이다.
청와대 정무수석실 관계자는 21일 중앙일보에 “국회와의 소통을 책임진 이철희 정무수석은 이미 여당 의원들과의 소통 자체를 완전히 끊은지 오래됐다”며 “문 대통령이 검수완박 등에 대한 우려를 전달하거나 입장을 논의할 필요성을 느꼈다면 정무수석이 지금처럼 업무에서 사실상 손을 놓고 있을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3월 22일 오전 청와대 여민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참석한 서훈안보실장과 이철희 정무수석이 인사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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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정무라인에선 민주당의 검수완박 독주가 본격화된 이달 초부터 “야당 등 보수진영에서 대통령의 입장을 아무리 요구하더라도 이번엔 절대로 속아넘어가지 않을 것”이란 말이 흘러나왔다.
정무라인의 한 인사는 “언론중재법 등 과거 국회에서 논란이 됐던 법안 처리 과정에서 문 대통령이 매번 야당의 요구에 어쩔 수 없이 대응하다가 역풍을 맞아왔다”며 “이번엔 여당이 당론으로 검수완박의 4월 처리를 결정한 일이니 민주당이 알아서 판단하고 결과까지 책임지면 된다”고 말했다. 또 다른 인사도 “나는 3주 뒤 집으로 돌아가면 된다”며 “검수완박이든 뭐든 이제 당이 주도권을 쥐고 책임지는 게 당연하다”고 했다.
박수현 국민소통 수석이 15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에서 중앙선관위 위원 인사에 대해 브리핑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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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무에 이어 소통채널인 홍보 기능도 멈춰섰다.
청와대는 20일 오전 “국민소통수석이 22일(금)까지 병가를 냈다”는 문자 공지를 했다. 소통수석실 관계자는 “박수현 수석이 과로로 병가를 냈기 때문에 주말까지 언론 취재에 응하지 못할 수 있다”고 전했다.
청와대가 사실상의 ‘침묵 선언’을 한 기간은 민주당의 검수완박 강행 처리 일정과 겹친다.
민주당은 20일 법사위 소속 민형배 의원을 고의로 탈당시켜 무소속으로 만든 뒤 법사위 안건조정위원회에 ‘야당 의원’으로 포함시켰다. 다수당의 독주를 막기 위해 만들어진 안건조정위를 무력화하기 위한 조치다. 박홍근 원내대표는 21일엔 박병석 국회의장에게 22일 본회의 소집을 공개 요청하며 강행처리 일정을 공표했다.
이에 앞서 박 수석은 병가를 내기 직전인 20일 오전까지 방송 3곳에 연쇄 출연해 “수사ㆍ기소권 분리 방향은 변함없다”, “대통령 거부권 행사 요건은 까다롭다”, “개혁에 특별한 시점이 있느냐”는 메시지를 발신했다.
더불어민주당이 당론으로 추진 중인 '검수완박' 법안의 법제사법위원회 안건조정위원회 회부가 임박한 가운데 김오수 검찰총장이 21일 국회의장실을 찾아 박병석 국회의장과 면담을 하고 있다. 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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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대통령의 측근으로 분류되는 여권 인사는 이날 중앙일보와 만나 “박 수석의 말은 ‘묵인할테니 강행하라’는 의미로 해석될 수밖에 없다”며 “검수완박이 정말 필요했다면 1년전 검ㆍ경 수사권 조정 때 했어야지 정권을 내준 뒤에 무리수를 두는 것에 대해 국민들은 정권 수사를 막기 위한 독주로밖에 볼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검찰 개혁에 대해선 사실 야당도 원칙적으로 동의하는 측면이 많기 때문에 시간이 걸리더라도 충분히 의견을 조율해 풀 수 있는 문제인데 왜 이래야하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2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정책조정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박 원내대표는 "검찰의 수사·기소권 분리를 통한 검찰 정상화를 4월 국회에서 반드시 처리하겠다"라며 박병석 국회의장에게 "22일 국회 본회의를 소집해달라"고 요청했다. 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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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병진 경희대 미래문명원 교수는 “대통령의 거부권은 법이 규정하고 있는 입법 시스템의 주요한 과정이자 원칙”이라며 “문 대통령이 삼권분립을 내세우며 ‘입법의 시간’이라는 말 뒤에 숨으려고 해도 결코 책임을 피할 수 없다”고 말했다. 안 교수는 이어 “결국 최종 책임은 문 대통령이 지게된다”며 “문 대통령의 침묵 속에 강행처리가 이뤄질 경우 문 대통령은 책임을 당에 떠넘긴 채 심각한 결함이 있는 법안을 작동시켰다는 역사적 평가를 받게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강태화 기자 thk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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