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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7 (수)

이슈 혼돈의 가상화폐

도대체 왜 달러를 가상화폐로 만든다는 건가요? [뉴스 쉽게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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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하나은행 위변조대응센터에서 쌓여있는 미국 달러화/사진=김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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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화폐' 하면 혹시 어떤 단어가 떠오르시나요? 많은 분들이 비트코인 같은 암호화폐를 떠올리실 것 같은데요, 가까운 미래에는 '달러'를 먼저 생각하게 되실 수도 있겠어요. 주요국을 중심으로 디지털 화폐를 만드는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거든요. 특히 미국이 적극적으로 나서기 시작하면서 '디지털 달러'가 등장할 가능성도 커졌어요.

디지털 달러를 만든다?


지난달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한 행정명령에 서명을 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비트코인을 포함한 암호화폐들 가격이 급등세를 보였어요. 바로 '책임 있는 디지털 자산 혁신에 관한 행정명령'이었는데요, 간단히 말하면 현물 화폐 없이도 사용할 수 있는 '디지털 달러' 개발을 검토한다는 내용이에요. 달러까지 디지털 화폐로 만든다고 하니 암호화폐 시장도 순간 들썩였던 거죠.

그동안 종이 화폐 대신 디지털 달러를 도입할 수 있다는 이야기는 많이 나왔지만 정작 미국 정부는 별 반응이 없었어요. 그런데 '이제 진짜 할 수도 있어'라는 공식 발표가 나온 셈이죠. 이 행정명령에서 백악관이 꼽은 중요 과제는 '잠재적인 미국 CBDC에 관한 연구개발 노력'이었어요. 물론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을 비롯한 주요 인사들은 "아직 최종 결정이 내려지지 않은 상태"라며 대외적으로는 신중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어요.

CBDC가 도대체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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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 연설하는 바이든/사진=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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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DC(Central Bank Digital Currency·중앙은행 디지털 화폐)는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디지털 화폐라는 뜻의 영어 약자예요. 우리나라의 원화나 미국 달러화처럼 국가 공식 화폐(법정화폐)이지만, 실제 종이돈이나 동전 없이 디지털 화폐로 발행하는 형태죠. 결국 CBDC를 발행한다는 건 우리나라로 치면 한국은행이, 미국에선 연방준비제도가 마치 암호화폐 같은 가상자산을 만들겠다는 의미예요.

CBDC는 블록체인 같은 첨단 기술이 적용된다는 점은 기존 암호화폐와 유사하지만, 가치가 정해져 있어서 비트코인처럼 시세 변동은 일어나지 않아요. 정부가 보증하니까 디지털 화폐라도 실제 종이돈과 가치는 다를 게 없어요. 사실 점점 종이돈이나 동전을 사용할 일이 줄어들고 있잖아요. 그러니까 실물 화폐를 덜 찍어내는 대신 CBDC가 역할을 보완할 수도 있고, 먼 미래에는 아예 CBDC만 사용할 수도 있겠죠.

국가 차원에서 효용성 큰 CBDC


사실 CBDC가 본격적으로 도입된다고 해도 우리 삶은 지금보다 조금 편해지는 정도일 수 있어요. 신용카드뿐 아니라 이미 '○○페이' 같은 모바일 결제 서비스도 보편화되어 가는 상황이니까요.

하지만 국가 차원에서는 큰 차이가 존재해요. 돈을 주고받는 거래의 비용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에요. 실제로 각 국가들이 어떤 방식을 취하게 될지는 모르지만, CBDC가 적용되면 기본적으로 시중은행의 역할은 많이 사라져요.

예를 들어 우리가 결제를 할 때나 돈을 주고받을 때, 지금은 항상 은행에서 개설한 계좌를 거쳐야 하잖아요. CBDC로 거래하면 은행을 거칠 필요가 없어요. 암호화폐를 주고받을 때처럼 서로 '전자지갑'에 언제든 보낼 수 있고, 보관도 내 전자지갑에 간편하게 할 수 있죠.

전자지갑이라는 건 마치 일종의 은행 계좌처럼 보이지만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하면 은행 같은 중재자나 관리 주체 없이도 안전하게 운영되거든요. 지갑과 송금 시스템을 구축하는 건 한국은행일 테니 더더욱 걱정할 필요가 없을 거고요.

정부가 국민에게 지원금을 주거나 우리가 정부에 세금을 낼 때도 마찬가지죠. 그저 지갑에서 지갑으로 CBDC를 보내기만 하면 되니까요. 이러면 중앙은행이 시중 통화량을 조절하는 정책을 쓰기도 훨씬 편하고, 탈세나 불법 거래를 단속하기도 쉬워져요. 돈이 오고 가는 대부분의 거래에서 효율성이 대폭 개선되는 거죠. 물론 실물 화폐를 찍어내고 관리하는 비용도 많이 아낄 수 있어요.

비트코인 뜬 지가 언젠데…갑자기?


미국의 CBDC 연구 본격화에는 최근 몇 년간 워낙 빠르게 성장한 암호화폐 시장이 당연히 큰 영향을 줬을 거예요. 그런데 이보다 더 직접적인 이유는 중국이 훨씬 앞서가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아요. 사실상 주요국 CBDC 순위를 굳이 매기자면 단독 1등은 중국인 셈이거든요.

중국은 이미 CBDC인 '디지털 위안화(e-CNY)'를 개발했고, 지난해 말을 기준으로 이미 디지털 위안화를 사용할 때 필요한 전자지갑이 2억6000만개 이상 개설됐다고 해요. 디지털 위안화를 쓸 수 있는 장소도 800만곳을 넘었어요.

특히 중국은 지난 2월 베이징동계올림픽을 통해 CBDC를 사용하는 대규모 실험을 마쳤어요. 이 올림픽은 국제사회에 디지털 위안화를 정식으로 선보이는 계기가 됐죠. 올해 9월에 열릴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도 적극적으로 쓰게 할 거라고 하고요.

근데 중국은 왜 이리 빠를까


중국이 디지털 위안화를 빠르게 보급할 수 있었던 건 모바일 결제에 익숙한 사회적 분위기 덕분이에요. 세계적으로 주요 국가 대부분은 현금에서 신용카드를 거쳐 모바일까지 결제 수단이 발전하는 양상을 보였지만, 중국은 사실상 신용카드 단계를 건너뛰고 모바일 결제 시장이 본격적으로 열렸거든요.

실제로 중국은 '현금 없는 사회'에 가까워졌다는 평가가 나오는 상황이에요. 모바일 결제 시장이 '알리페이'와 '위챗페이'를 중심으로 빠르게 성장하면서 대부분의 시민은 모바일 결제를 이용한다고 해요. "중국에선 구걸도 위챗페이 QR코드로 한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죠.

중국 국영 신용카드 회사인 유니온페이가 최근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 주요 도시 거주민의 평균적인 한 달 지출 중에 모바일 결제를 이용한 비중은 도시별로 적게는 80%를 넘었고, 90% 이상인 곳도 있었어요.

중국이 더 빠른 또 하나의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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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위안화를 사용하는 모습/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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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CBDC인 디지털 위안화는 실제로 사용할 땐 흔히 쓰는 여러 '페이'들과 크게 다른 점이 없어요. 그래서 빠르게 확산할 수 있다는 예상도 나오죠. 그런데 이런 현상을 보며 많은 전문가들은 우려의 시선도 보내고 있어요.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에서 정부의 통제력을 더욱 강화할 수 있다는 이유 때문이에요.

CBDC는 디지털 화폐라서 돈의 흐름을 아주 쉽게 파악할 수 있어요. 중국 정부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기업과 개인의 거래 내역을 들여다볼 수 있다는 거죠. 물론 중국 정부는 디지털 위안화를 사용할 때 익명성을 보장하고, 범죄 혐의가 의심될 때만 추적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고 설명하긴 해요. 하지만 중국의 권위주의를 고려하면 이 말을 그대로 믿긴 어렵겠죠.

블록체인 이상과 반대로 가는 중국


중국에서 디지털 화폐 발행으로 국가의 통제력이 커지는 현상은 어떻게 보면 참 역설적이에요. 비트코인에서 시작된 암호화폐 열풍이 디지털 자산 시장을 키워냈기에 중국이 이런 시도를 빠르게 할 수 있었는데, 정부의 '통제력 강화'는 비트코인이나 블록체인의 당초 개발 목적과는 완전히 반대되는 결과거든요.

익명의 비트코인 창시자는 정부나 금융회사 같은 중재자 없이도 거래할 수 있는 화폐를 만들기 위해 블록체인 기술을 개발했어요. 그래서 비트코인을 포함한 많은 암호화폐의 이념을 '탈중앙화(Decentralization)'로 부르기도 하죠. 하지만 역설적으로 블록체인 기술을 응용해 만든 디지털 위안화는 중앙정부의 권력을 더욱 강화할 가능성이 커 보여요.

CBDC 연구·개발 나선 세계...한국도 실험 중


중국이 먼저 치고 나간 상황에서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 100여 개 나라들이 CBDC 개발에 나선 것으로 알려지고 있어요. 유로화 CBDC 개발을 연구하는 '디지털 유로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고, 우리나라도 한국은행이 모의실험을 통한 연구를 하고 있다고 해요.

특히 이번에 CBDC 개발 의지를 밝힌 미국은 더욱 적극적으로 나설 가능성이 커요. 미국이 '달러'라는 기축통화로 얻는 막대한 경제적 이익에 CBDC의 보급이 타격을 줄 수도 있기 때문이죠. 지금까지는 전 세계가 달러 없이 굴러갈 수 없을 정도여서 미국의 경제적 힘이 압도적이었는데, 디지털 화폐로의 전환이 늦으면 다른 주요 경쟁국에 기회를 주게 될지 모르니까요.

미국이 지금까지 CBDC를 두고 신중한 모습을 보일 수밖에 없었던 이유도 이미 '달러 발행국'이라는 확고한 기축통화국의 지위를 누리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아요.

가까운 미래에 만나게 될지도 모르는 '디지털 달러'의 힘은 여전히 종이 달러처럼 강력할까요? 최근 발표된 미국 정부의 행정명령에는 디지털 위안화가 불러온 통제력 논란 때문인지 "민주적 가치에 부합하는 CBDC 개발을 촉진하겠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고 하는데요, 과연 민주적 사회에서 쓰일 디지털 달러는 어떤 모습일지 궁금해지네요.

<뉴미디어팀 디그(dig)>

[임형준 기자 / 박재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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