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와 비슷하면서도 너무 다른 일본. [도쿄B화]는 사건사고ㆍ문화콘텐트 등 색다른 렌즈로 일본의 뒷모습을 비추어보는 중앙일보 도쿄특파원의 연재물입니다.
지난달 11일 우크라이나 서부 국경에서 약 25㎞ 떨어진 폴란드 도시 헤움의 한 슈퍼마켓. 폐점으로 비어있는 이 공간에 우크라이나에서 탈출해 온 난민들을 위한 거처가 생겼다. 폴란드 제지 회사가 무료로 제공한 종이 튜브로 기둥과 들보를 올리고 거기에 천을 사방으로 두르면 작업 끝. 대학생 등 자원봉사자의 힘으로 이날 하루에만 난민 320명을 위한 '방'이 완성됐다.
지난달 27일 슬로바키아의 브라티슬라바에 지어진 우크라이나 난민을 위한 임시 주거시설. [반 시게루 건축사무소 홈페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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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4일 반 시게루가 프랑스 파리에 만든 우크라이나 난민을 위한 임시 거처. [반 시게루 건축사무소 홈페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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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디어와 설계를 맡은 건 일본의 건축가 반 시게루(坂茂·65)다. 두루마리 화장지 심과 비슷한 형태의 '종이 튜브'를 이용해 세계 곳곳 재해 현장에 쉼터를 만들어온 그가 러시아의 공격으로 모국을 떠난 우크라이나 난민을 위해 나섰다. 우크라이나 현지는 물론이고 피난민이 몰려드는 폴란드 브로츠와프역, 프랑스 파리 시내의 스포츠 센터 2곳, 지난달 27일엔 슬로바키아 브라티슬라바 시내에 난민을 위한 임시 주거시설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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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재난 찾아가는 '행동하는 건축가'
반 시게루는 자신을 필요로 하는 곳을 적극적으로 찾아다니는 '행동하는 건축가'다. "엄혹한 환경에서 괴로워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을 개선하는 것이 건축가의 책무"라고 말한다. 미국 쿠퍼 유니언대에서 건축을 공부한 후 일본에 돌아와 건축사무소를 차렸지만 "돈과 힘을 가진 부자와 개발업자를 위해 기념비적 건물을 짓는 데 집중하는" 건축가들의 현실에 염증을 느꼈다.
우크라이나 난민을 위한 쉼터를 짓고 있는 일본 건축가 반 시게루. [AFP=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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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재해 건축가'로 거듭난 건 1994년 르완다 내전이었다. 학살을 피해 수용소로 대피한 사람들이 비닐 위에서 담요만 몸에 두른 채 떨고 있는 모습을 봤다. 그는 유엔난민기구에 자신이 그동안 연구해온 종이 튜브를 이용해 이들을 위한 보호소를 짓자고 제안한다.
반 시게루가 2001년 인도 구자라트 지역 지진 당시 선보인 임시 주택. [중앙포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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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이버시가 없이는 제대로 쉴 수 없다"
일본 건축가 반 시게루가 뉴질랜드에 지은 종이 성당의 내부. (c) Bridgit Anderson [반 시게루 건축사무소 홈페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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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건축가 반 시게루가 뉴질랜드에 지은 종이성당의 외부. (c) Bridgit Anderson [반시게루 건축사무소 홈페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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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로 지은 집'이라고 해서 모두 임시 건축물은 아니다. 2011년 뉴질랜드에서 일어난 규모 6.3의 지진으로 도시의 대표 건축물인 크라이스트처치가 큰 피해를 입었다. 반 시게루는 현지에서 종이 튜브와 컨테이너를 조달해 700명의 인원이 함께 예배를 볼 수 있는 '종이 성당(Cardboard Cathedral)'을 지었다. 건물 지붕은 컨테이너로, 천장과 벽, 의자 등이 모두 종이 튜브로 만들어졌다. 2013년 완공된 이 건물은 원래 3년 후 허물 예정이었다. 하지만 사람들이 몰려드는 지역 명소가 되면서 10년 가까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2010년 5월 개관한 프랑스 퐁피두 메츠의 야경. 건축가 시게루 반과 장 드 가스틴이 설계했다. [퐁피두 메츠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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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시게루가 설계한 한국 여주의 '해슬리 햄릿' 내부. [반 시게루 건축사무소 홈페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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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이영희특파원misquic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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