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 영향으로 국제유가가 오르면서 서울 주유소의 휘발유 평균 가격이 지난 11일 1L당 2000원을 넘어섰다. 사진은 이날 서울시내의 한 주유소 유가정보판 모습. [박형기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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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기름넣기 무섭네."
차를 갖고 계신 분이라면 최근 기름값이 얼마나 올랐는지 피부로 느끼실 겁니다. 코로나19 시작과 함께 차를 산 지인은 이렇게 비싼 휘발유 가격을 처음 본다고 하는데요. 그도 그럴 것이 서울·경기·인천을 포함한 7개 지역의 휘발유 판매가가 최근 들어 리터 당 2000원을 돌파했습니다. 약 9년 만에 최고 가격이라고 하니 지인의 고충이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최근 국제유가는 그야말로 천정부지로 치솟았습니다. 세계 유가의 기준이 되는 브렌트유는 지난 6일(현지시간) 배럴당 가격이 140달러 가까이 치솟았습니다.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도 같은 날 130달러를 넘어섰고요. 이는 무려 13년여 년 만에 최고가이자 지난 1998년 원유 선물거래가 시작된 이래 가장 큰 상승폭이라고 합니다. 약 1년 전 같은 시기에 브렌트유가 60달러 선, 서부 텍사스산 원유가 50달러 선에 거래됐다는 점을 감안하면 2배가 훌쩍 넘게 오른 셈이죠. 이후 국제유가는 단기고점을 찍고 조정을 받는 모습입니다. 배럴당 100달러 선 밑으로 떨어지는 등 상승과 하락을 반복하며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습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공포가 밀어올린 유가
그렇다면 유가가 왜 이렇게 많이 오른 걸까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을 선포하면서 원유 공급 상황이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러시아는 세계 3위에 꼽히는 산유국입니다. 전 세계 원유 생산량의 11.2%를 맡고 있습니다. 문제는 미국을 비롯한 서방 국가들이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에 책임을 물어 교역을 차단했다는 것입니다. 현재까지 미국과 캐나다, 영국, 호주가 러시아산 원유 수입을 금지한 상황입니다.
유가가 급등한 최근 상황을 단순히 원유 공급 감소만으로 해석하기는 어렵습니다. 투자자가 바라보는 상품으로서 원유의 특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원유는 원자재 선물(先物) 시장에서 규모가 크고, 가격 변동성이 높은 상품 중 하나입니다. 현재 당장 돈을 주고 구입할 수 있는 상품이나 주식을 우리가 흔히 아는 현물(現物)이라고 부른다면, 선물은 현물에 대한 가치가 오를지, 내릴지에 대해 미리 예측해서 거래하는 것을 말합니다. 주식시장에서 원유는 상장지수펀드(ETF)나 상장지수증권(ETN) 등 관련 상품에서 '선물' 가격을 추종하기 때문에 선물 투자가 활발히 이뤄집니다.
원자재 선물의 특성상 가격 변동이 큰 이유는 가수요와 투기적 수요가 많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최근 130달러를 넘어선 WTI가 100달러 밑으로 뚝 떨어진 것도 수요와 공급이라는 수급적인 요인 뿐 아니라 원자재 선물의 특성이 반영된 것도 있습니다. 업계에서는 투기적인 매수가 붙으면서 유가가 본래 가격보다 더 뛰었다고 해석하기도 합니다. 최근 원유 가격이 요동치면서 유가 상승 혹은 하락에 베팅하는 상품의 거래량이 폭증했다는 점도 이를 입증합니다.
국제유가는 한 때 선물 가격이 '마이너스'를 기록했던 적도 있습니다. 코로나19가 전세계로 확산되던 지난 2020년 4월의 일입니다. 당시 5월물 원유선물 가격이 배럴당 -37달러라는 믿을 수 없는 가격을 기록하면서 투자자들이 당혹스러워 했는데요. 이렇듯 유가 변동성이 크면 매달 선물 가격이 바뀔 때마다 큰 롤오버(월물 교체) 비용을 감당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유가 상승에 항공·운수업종 '울상'...정유업종 '웃음'
[AFP =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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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유가 상승은 우리나라 경제에 부정적인 효과를 초래합니다. 경제 성장을 둔화시키고 소비자물가를 끌어올리는 원인이 되기 때문이죠. 실제로 에너지 수입 가격이 급등하면서 우리나라는 지난해 12월과 올해 1월 2개월 연속 무역적자를 내기도 했습니다. 2개월 연속 무역적자는 금융위기가 있었던 2008년 이후 14년 만에 처음있는 일이거든요.
일반적으로 기업의 입장에서도 유가 상승은 반가운 일이 아닙니다. 재화와 서비스를 생산, 운영하는 비용이 증가하는 일이니까요. 한국은 국내총생산 대비 소비하는 원유량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1위를 차지할 정도로 원유 의존도가 높다고 합니다. 유가가 지속적으로 오를 경우 비용 상승 압력이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유가 상승이 치명적인 대표적인 업종은 항공입니다. 유류비가 비용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유가가 오를수록 유류비가 매출 원가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커지기 때문이죠. 통상 국내 항공사의 매출액 대비 유류비 비중은 25% 수준입니다. 특히 저가 항공의 경우 코로나19로 수익이 감소한데다 유가까지 오르게 되면 실적에 치명적일 수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항공업종에 투자하는 투자자의 경우 고유가 시기에는 투자심리가 위축되면서 주가에도 악영향을 줄 수 있겠죠.
반면 유가 급등이 호재로 작용하는 기업들도 있습니다. 바로 정유사들입니다. 정유사는 유가가 오르면 재고평가이익이 올라가게 됩니다. 쉽게 말해 유가가 상승하면 저유가 때 사들인 원유의 재고 물량 가치가 상승하게 되는데, 이 상승분이 회계상 이익으로 작용합니다. 여기에 유가가 오르면 정유사들의 순이익을 간접적으로 알 수 있는 '정제 마진'도 상승합니다. 정제마진은 석유제품 판매가에서 원료인 원유 가격과 수송·운영비 등을 뺀 값으로 정유사 수익의 가늠자 역할을 합니다.
반대로 국제유가가 하락하면 고유가일 때 구입한 원유 비축분의 가치가 떨어져 정유사들이 그만큼 손실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유가의 흐름과 정유사들의 주가는 연동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정유주가 통상 유가 상승의 대표적인 수혜주로 꼽히는 이유입니다.
"묻고 더블로 가" 워런버핏, 셰일오일기업 지분 늘려...동학개미는 원유 하락 '베팅'
워런 버핏. [매경DB]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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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자의 입장에서는 유가 급등이 새로운 투자기회가 되기도 합니다. 주식 장기 투자의 대표적인 인물이자 '오마하의 현인'이라 불리는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최고경영자(CEO)도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는데요. 버핏 회장은 최근 미국 셰일오일기업 옥시덴탈 페트롤리움 주식을 대거 추가 매수했습니다. 이미 옥시덴탈 주식을 9210만주 보유하고 있었지만 여기에 2710만주를 더 매입해 지분을 늘렸는데요. 옥시덴탈의 비중이 늘어나면서 이 회사는 버핏 회장이 9번째로 많이 보유한 종목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버핏 회장은 국제유가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지정학적 우려에 추가적으로 더 뛸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옥시덴탈은 미국 최대 석유회사 중 한 곳인데요. 국제유가가 계속해서 상승세를 이어갈 경우 옥시덴탈을 비롯한 미국 정유사들의 주가가 추가 상승할 것으로 본 것입니다. 버핏의 혜안이 빛을 발한 걸까요? 그가 이끄는 버크셔해서웨이의 주가는 최근 사상 처음으로 50만 달러(한화 약 6억2000만원)를 돌파했습니다.
반면 개인투자자는 이른바 '청개구리 투자'에 나섰습니다. 청개구리 투자는 시장 상황과 반대로 움직이는 투자법을 말합니다. 예를 들어 최근에 유가가 급등하는 상황에서 오히려 유가 하락에 돈을 거는 건데요. 유가가 반짝 상승하면서 고점에 다다랐다는 판단에 이같은 투자를 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인버스'와 같이 원유 가격이 하락하는 만큼 수익이 발생하는 상품들에 개인 투자자의 자금이 몰렸는데요. 국제 유가가 계속해서 높은 수준을 유지할 경우 손실이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 있어 신중한 판단이 요구됩니다.
[김현정 매경닷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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