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팝 아이돌의 국적 리스크가 일본에서 중국으로 옮겨간 모양새다. 해외 진출을 위한 아이돌 그룹의 동아시아 출신 멤버 영입은 오래된 전통이다. 일본과 영유권 문제 등이 불거질 때는 일본 국적 출신 아이돌에 대한 비판도 있었다. 최근 몇년간은 홍콩 시위 등을 거치며 젊은층을 중심으로 반중감정이 커지며 중국계 아이돌에 대한 비난 수위가 높아지고 있다. K팝 아이돌 그룹의 영향력이 세계적으로 커지면서 팬들이 아이돌 멤버의 사소한 발언에도 더욱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도 이유다.
슈퍼주니어M 출신 가수 헨리. 최근 친중 논란으로 비난받자 지난 19일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해명글을 올리기도 했다. 헨리 인스타그램 캡처 |
■역사·인권…민감한 이슈 때마다
최근 슈퍼주니어의 중국 활동 유닛 ‘슈퍼주니어M’에서 활동했던 가수 헨리를 두고 친중 논란이 불거졌다. MBC 예능 프로그램 <나혼자 산다> 등 예능에서 밝고 귀여운 이미지로 사랑받던 그가 국내 팬들에게 비난의 대상이 되기 시작한 것은 2019년 홍콩 시민들이 중국을 상대로 송환법 반대시위를 했을 때였다. 국내에서도 젊은 층을 중심으로 중국 당국의 폭력 진압에 대한 비판 여론이 높았는데, 이때 에프엑스 빅토리아, 갓세븐 잭슨, 워너원 출신 라이관린 등 국내 활동 중국계 아이돌 다수가 ‘하나의 중국’을 외치며 중국의 시위 진압을 옹호하는 듯한 태도를 취했다.
캐나다 국적으로 부모가 홍콩과 대만 출신이라는 헨리 역시 중국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인 웨이보에서 중국을 옹호했다는 글이 일부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라왔다. 팬들은 헨리는 하나의 중국을 옹호한 적이 없다고 반박했지만, 해당 글은 여기저기로 퍼져나갔다. 한 번 미운털이 박히자 이후 중국의 역사관련 공정 혹은 인권탄압 등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한국에서 친근한 이미지였던 헨리가 표적이 됐다. 이달엔 그가 서울 마포경찰서의 홍보대사가 된 것으로도 지적받았다. 헨리는 이에 지난 19일 자신의 인스타그램 해명글을 남기기도 했다.
이는 과거 일본과 역사 논쟁이 벌어질 때마다 일본 출신 아이돌들이 국내에서 비난 받았던 것과 맥락을 같이 한다. 걸그룹 트와이스의 일본 멤버 사나는 지난 2019년 인스타그램에 아키히토 일왕의 퇴임을 두고 “헤이세이(아키히토의 연호)가 끝난다는 건 쓸쓸하다”고 발언한 뒤 비난받았다. 일부 네티즌이 이 발언을 일제 군국주의와 연결해 해석한 것인데 이후 비난이 과도했다는 지적이 많았다.
■아이돌 발언 영향력 커진 것도 이유
중국 혐오 정서가 커진 상황에서 중국계 멤버들의 그룹 이탈을 지켜본 경험이 있는 팬들은 외국인 멤버에 대한 편견을 가지기도 한다. SM엔터테인먼트 아이돌의 오랜 팬이라는 이정은씨(33·가명)는 “일본 출신 멤버들은 역사 분쟁이 있어도 좀 조심스러운 태도를 취해왔던 것 같은데, 중국 출신 멤버들은 화가 나면 그대로 분출하고 큰 시장인 중국으로 가버리는 일이 많은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며 “오랜 팬들 사이에서도 중국 멤버에 대한 이런 편견이 쌓인 것 같다”고 말했다.
K팝 아이돌의 세계 진출이 활발해지며 이들의 발언이 주는 영향력이 커진 것도 팬들이 민감한 이유다. 이 때문에 최근 국내 팬들은 역사 및 외교 문제가 발생할 때 한국의 목소리를 대변해 주는 아이돌에 열광하기도 한다. 지난 2월 베이징 동계 올림픽 때, 편파 판정 논란 속에 실격된 황대헌 선수를 응원하는 글을 인스타그램에 올렸던 방탄소년단(BTS) 멤버 RM에 쏟아진 찬사가 대표적인 예다.
아이돌의 달라진 위상을 반영하는 것이라지만, 장단이 있다는 것이 엔터테인먼트 업계의 생각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역사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외국인 멤버들에 대한 검열이 있으니 기획사들도 자체적으로 조심하는 모습이 보인다”면서도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아이돌의 발언에 대중들도 너무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이 사실이라 우려도 있다”고 말했다.
고희진 기자 goj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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