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속대응군 위주 유럽합동군 창설…'전략적 자율성' 확대
독일·프랑스 주도…나토와 새로운 관계 정립 과제
벨기에 브뤼셀의 EU 본부와 EU 깃발 |
(서울=연합뉴스) 송병승 기자 =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유럽 전역에서 전쟁 위기감이 고조하면서 유럽연합(EU)이 자체 방위력 증강에 나섰다.
EU는 경제 통합을 마무리한 데 이어 정치적, 군사적 통합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회원국 간 입장이 다르고 유럽의 안보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에 오랫동안 의존해오면서 군사적인 공동 방위 능력은 취약한 상태에 머물러 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러시아의 무력 위협이 현실화하면서 EU 내부에서 자체 방위력을 확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EU는 21일(현지시간)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국방·외무장관 회의에서 2025년까지 5천 명 규모의 신속대응군 창설을 규정한 공동방위정책을 채택했다.
EU는 이날 성명에서 "EU는 시민을 보호하고 국제 평화와 안보에 기여할 수 있어야 한다. 러시아의 불법적인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유럽에 전쟁이 돌아오고 주요한 지정학적 변동이 초래된 상황에서 이런 우리의 노력은 더욱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밝혔다.
크리스티네 람브레히트 독일 국방장관은 EU 신속대응군의 완전한 가동을 위해 독일이 중추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EU는 자체 방위력을 증강하고 '전략적 자율성'을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해왔다.
EU 집행위원회 보안 문서에 따르면 유럽 합동군 창설 계획 초안은 육·해·공군력을 모두 포함하는 신속대응군이 적대적인 환경에서 구조·대피, 또는 안정화 작전과 같은 모든 범위의 군사적 위기관리 임무를 수행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특히 군수품 보급, 장거리 공중 수송, 작전 통제 등 독자적인 작전 능력을 보유하는 방안에 중점을 두고 있다.
'전략적 나침반'이라고 명명된 유럽군 창설안이 확정되면 EU는 2023년부터 정기적으로 합동 군사훈련을 할 계획도 세운 것으로 전해졌다.
EU 주도 국가인 독일과 프랑스는 유럽군 창설에 적극적이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우리가 진정한 유럽의 군대를 갖겠다고 결심하지 않는 한 유럽을 보호하지 못할 것"이라며 유럽의 자체적인 집단 안보 체제를 주장했다.
나토 창설 멤버인 프랑스는 1960년대 중반 나토군에서 병력을 철수했다. 그 이후 나토의 정치기구에만 참여하면서 나토와는 별개의 독립적인 방위 기구를 추구해왔다.
제2차 세계대전 패전국인 독일은 자체 군사력 증강을 자제해왔으나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방위 정책에 극적인 변화를 보이고 있다.
독일은 사실상 재무장을 선언하고 군비증강에 착수했다. 또한 독일은 EU 합동군 창설에도 주도적으로 역할 하겠다고 천명했다.
EU 차원에서도 자체 방위력 증강이 절실하다.
EU는 1990년대 후반부터 자체 방위기구 창설을 추진했다.
EU 회원국은 5만∼6만명 규모의 합동군 창설 계획에 합의하기도 했으나 비용 문제 등으로 지금까지 성사되지 못했다.
군사적으로 영향력이 없는 EU는 우크라이나 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협상에서 배제되는 수모를 겪었다.
한 유럽문제 전문가는 "러시아와 협상에서 EU의 역할이 제한적인 것은 EU가 정치, 군사적으로 통일성이 결여됐다는 방증"이라며 "러시아는 안보 문제에서 EU와 협상할 아무런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고 분석했다.
프랑스의 국제정치 분석가 자크 루프닉은 "최근의 상황은 제2차 세계대전 후 미국과 소련이 유럽의 장래를 결정하던 장면을 연상시킨다"고 말했다.
이 같은 상황에 대해 호세프 보렐 EU 외교·안보 정책 고위대표는 강대국의 세력권 분할로 유럽이 쪼개지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유럽의 안보 지형을 결정하는 협상에 EU가 중립적인 구경꾼이 될 수는 없다. 유럽 안보는 미국·러시아, 나토·러시아의 문제가 아니라 EU가 관련된 문제"라고 강조했다.
리투아니아에서 훈련 중인 나토군 병사 |
EU 자체의 방위력 증강은 나토와 관계를 새롭게 정립해야 하는 과제를 남겨두고 있다.
EU는 합동군 창설 계획을 밝히면서 이것은 나토를 보완하는 것이며 미국 주도의 군사동맹과 경쟁하려는 의도가 아니라는 점을 분명하게 밝혔다.
미국도 나토에 져야 하는 부담을 덜 수 있어 유럽군 창설에 긍정적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EU 자체의 군사력은 나토군을 보완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 사태를 계기로 당분간은 미국의 유럽 안보에 대한 영향력은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유럽 안보는 유럽이 해결해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함으로써 유럽의 전략적 자율성 확대 노력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비교적 늦게 EU와 나토에 가입한 동유럽 국가들은 조심스러운 입장이다.
폴란드, 체코 등은 나토를 통해 미국에서 안보를 보장받는 것이 서유럽 주도의 방위기구를 통한 안전보장보다 더 유리하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또한 이들 국가는 EU 자체 병력만으로는 러시아의 군사적 위협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어렵다고 본다.
songbs@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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