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휘발유 평균 판매 가격이 16일 9년 5개월 만에 2000원을 넘어섰다. 한국석유공사 유가정보서비스 오피넷에 따르면 이날 오전 10시 기준 전국 평균 휘발유 판매 가격은 2003.67원을 기록했다. 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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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경제에 엄습했던 'S(스태그플레이션)의 공포'가 잦아들 태세다. 우크라이나 사태로 인한 '오일 쇼크' 우려 속 급등했던 국제 유가가 급락하면서다. 치솟던 유가를 끌어내린 건 코로나 확산세로 인한 중국의 도시 전면 봉쇄 소식이다. '세계의 공장'인 중국이 멈춰설 기세에 유가 오름세에 제동이 걸렸다. '중국이 뒤흔드는 세계'인 셈이다.
15일(현지시간)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서부텍사스산원유(WTI) 4월 인도분 가격은 전날보다 6.4% 떨어진 배럴당 96.44달러로 마감했다. 지난달 28일 이후 처음으로 종가 기준 배럴당 100달러 아래로 떨어졌다. 일주일 만에 20% 넘게 빠진 것이다. 이날 런던 ICE선물거래소에서 브렌트유 5월물은 배럴당 99.91달러로 거래를 마쳤다. 3주 만에 두 자릿수대로 진입했다.
올해 초 배럴당 90달러 안팎을 오가던 WTI 가격은 지난달 2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뒤 치솟기 시작했다. 불붙은 유가에 기름을 부은 건 러시아산 원유에 대한 미국의 금수 조치다. 지난 8일에는 장중 130달러를 돌파해 2008년 7월 금융위기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롤러코스터처럼 요동치는 국제 유가.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
좀처럼 잡히지 않을 듯한 국제 유가 상승세에 브레이크를 건 것은 '세계의 공장'인 중국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와 월스트리트저널(WSJ) 등은 “코로나19 재확산에 따른 방역 조치로 중국이 각 지역의 공장을 폐쇄하면서 당분간 석유 수요가 줄어들 것이란 전망이 커지고 있다”며 "국제 원유 시장에 (가격) 하방 압력으로 작용했다"고 분석했다.
중국은 지난 14일 1750만명이 사는 광둥성 선전시를 전면 봉쇄했다. 선전시는 텐센트와 화웨이I 등 IT기업과 애플 제품을 조립 생산하는 대만의 폭스콘 공장 등 제조업체가 밀집해 ‘중국의 실리콘밸리’로 불린다. 중국 상하이도 준(準) 봉쇄 수준으로 방역을 강화했다. 지린성 장춘시의 외국 자동차 기업의 합작 공장은 지난주부터 문을 닫았다.
러시아의 목줄을 죄며 커진 석유 공급난을 해소하기 위해 미국이 베네수엘라에 대한 제재를 완화할 것이라는 관측도 유가 하락을 부추긴 요인으로 꼽힌다. 미국은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이 선거 부정을 저질렀다는 이유로 베네수엘라 원유 금수 조치를 해왔다. 로이터통신은 “미국 에너지 업체 셰브런이 베네수엘라 원유 사업 재개 준비에 나섰다”고 보도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4차 평화협상 결과에 대한 긍정적인 기대도 반영됐다. 우크라이나 측 미하일로 포돌랴크 고문은 지난 15일 “매우 어렵고 근본적으로 모순이 있는 협상이지만 확실히 타협의 여지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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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태그플레이션 공포 줄었지만 여전한 불확실성
국제 유가가 진정세를 보이며 스태그플레이션(경기 침체+물가 상승) 공포는 줄었지만 상황이 낙관적인 것은 아니다. 손성원 미국 로욜라 메리마운트대 경제학과 교수는 “경제 성장과 인플레이션(물가 상승) 상황이 모두 더 나빠지고 있다"며 "문제는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유가의 급등세가 꺾었을 뿐 인플레 압력은 여전히 높다. WSJ은 “국제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 아래로 떨어졌지만 여전히 1년 전보다 49% 비싸다”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전부터 전문가들은 올여름 국제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넘을 것으로 예측했는데 러시아의 침략이 이를 가속했다”고 말했다.
중국의 도시 봉쇄의 파급 효과에 대한 우려도 고개를 든다. 석유 수요 감소 전망에 유가 급등세는 진정됐지만, 전 세계 공급망을 뒤흔드는 영향력이 더 강력할 수 있다는 예측 때문이다. 세계의 공장인 중국이 멈춰 서면 물가를 끌어올리는 한편 경기 침체를 가속하며 스태그플레이션이 더 빠르고 짙게 가시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JP모건체이스의 브루스 카스만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중국의 (도시) 봉쇄 조치는 우리가 씨름하고 있는 문제의 새로운 국면”이라며 “인플레이션이 앞으로 몇 달 동안 이전에 예상한 것보다 훨씬 더 높아져 궁극적으로 경제 성장을 둔화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나빠지는 2022년 세계 경제성장 전망.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
이미 경기 침체에 대한 전망은 조금씩 나오고 있다.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는 지난 13일 미국 CBS 방송에 출연해 “세계 경제성장률의 추가적인 하향 조정은 필연적”이라고 말했다. IMF는 지난해 10월 올해 세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4.9%로 발표했다가 지난 1월 4.4%로 0.5%포인트 낮췄다. 하지만 추가 하향 조정을 예고한 것이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전문위원은 “우크라이나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러시아의 신용 위험이 커졌고, 중국의 경제 봉쇄가 겹쳤다”며 “어떤 국면으로 전개될지 예측할 수 없는 불확실성이 커진 상황이라 스태그플레이션으로 진입할지 예의주시해야 하는 상태”라고 말했다.
송승환 기자 song.seunghw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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