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 ‘4중고’]
유가-환율, 현수준 전혀 예상못해… 공급망 붕괴-물류난 개선 기미 멀어
“연간 경영계획이 상시 조정체제로”
“대기업, 협력사에 비용부담 전가… 제품가 인상으로 이어질것” 전망도
부산 남구 부산항 신선대 컨테이너 터미널 전경(사진은 기사내용과 무관)© News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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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유가·환율 급등·공급망 위기·오미크론 확산까지 동시다발 위기를 맞은 국내 기업들이 한계에 내몰리고 있다. 지난해 말, 연초에 세운 경영계획을 그대로 실행하지 못하고 실시간으로 수정해 적용해야 하는 형국이 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 돌발변수로 한계 내몰리는 기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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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본보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대기업들 가운데서도 현재의 유가나 환율 수준을 전혀 예상하지 못한 곳이 많았다. 국제유가는 이달 들어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 기준 배럴당 장중 최고 130달러 선까지 치솟기도 했다. 대기업의 절반은 이런 수준이 연간 이어질 경우 감내하기 힘든 상황인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 연평균 국제유가가 어느 수준 이하여야 감내할 수 있나’는 질문에 20%가 ‘배럴당 110달러 이하’, 26.7%가 ‘120달러 이하’라고 답해 120달러 이상 오를 경우 46.7%가 한계 상황을 맞을 것으로 보인다. 중소기업들의 경우엔 총 83.3%가 이에 해당됐다.
국내 5대 그룹 계열사 최고경영자(CEO)들은 현재의 경영환경에 대해 위기의식을 드러냈다. 대기업 A사 CEO는 “이제 대부분의 회사들은 경영계획을 ‘롤링 플랜(rolling plan)’으로 잡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롤링 플랜이란 계획과 실적 간 차이를 비교해 끊임없이 계획을 재구성하는 방식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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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공급망 붕괴와 물류난 역시 개선될 여지가 보이지 않는다는 우려도 나온다. B사 CEO는 “작년부터 선사들이 선적비를 100%씩, 심하면 1000%씩 올리고 있다”며 “배에 싣지 못한 물류가 항만에 쌓일 대로 쌓여 보관비용까지 추가로 물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당장 눈앞에 닥친 물류와 전기·가스 사용료, 원자재 가격 문제는 심각한 수준”이라고도 했다.
올해 투자와 고용 등 주요 집행 계획에도 변화가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올해 채용을 예정대로 진행할 계획인지에 대해 대기업의 15.6%가 현재로선 판단할 수 없거나 새로운 경영계획 수립 전까지 보류하겠다고 응답했다. 투자 계획에 대해서도 15.2%가 이같이 응답해 경영 불확실성을 드러냈다. 중소기업의 경우엔 절반 이상이 투자 여부를 현재 판단할 수 없다거나 예정보다 줄이겠다고 응답했다.
○ 위기요인 겹치면서 ‘플랜 B’도 안갯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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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 현장에서는 지난해 말까지만 해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한 제조 공백을 메우는 한편 수요 급등에 따른 인플레이션에 대비하기 위한 시나리오를 준비해 왔다. 이번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발과 비용 상승, 수요 위축으로 이 시나리오가 폐기될 상황에 놓였지만 대다수 기업에서 이를 대체할 ‘플랜 B’는 찾지 못하고 있다.
올해 경영 환경에 대해서도 부정적 전망이 많았다. 올해 경영 환경이 지난해보다 나아질 것으로 보는지에 대해 대기업의 45.5%가 ‘전혀 그렇지 않다’ 또는 ‘별로 그렇지 않다’고 답했다. ‘매우 그렇다’는 답변은 없었고, ‘조금 그렇다’는 답변도 15.2%에 불과했다. 중소기업들 역시 나아질 거란 답변(26.7%)보다 반대의 전망(40.0%)이 더 많았다.
이한상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는 “지금의 위기는 지정학적으로 어떤 위치인지, 분석 대상 기업이 어떤 업종인지 등에 따라 일괄적인 분석조차 힘든 복합적 상황”이라며 “글로벌 수요 위축 가능성까지 나오는데 기업들이 어디까지 버텨낼 수 있을지 확신하기 힘들다”고 했다.
대기업들의 비용 상승 요인이 커지면서 부담이 아래로 전가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중소기업 C사 대표는 “유가가 오르면서 플라스틱, 철, 고무 등 자재 가격이 줄줄이 올랐는데 납품가에는 반영되지 않고 있다”며 “대기업들이 경영 목표를 맞추려 납품가를 오히려 깎는 상황”이라고 호소했다. 유병준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는 “위기 비용을 대기업이 모두 소화해내지 못하면 결국 협력사에는 납품 가격 인하로, 소비자에겐 제품 가격 인상으로 나뉘어 전가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곽도영 기자 now@donga.com
홍석호 기자 will@donga.com
서형석 기자 skytree08@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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