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래 상 지위가 있을 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다."(2022년 3월 10· 최종 의결 고시)
방송통신위원회가 구글·애플 등 글로벌 앱마켓 사업자의 인앱결제 강제 금지 등 갑질을 막기 위해 새로 도입한 '거래 상 지위' 추정 규정이 당초 발표한 것보다 모호하게 변경된 것으로 확인됐다. '가능성'이라는 단어조차 포괄적인 뜻을 내포하는 상황에서 '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다'는 문구로 바뀐 것이다.
방통위는 작년 11월 구글과 애플 등 규제 적용 가능 기업을 규정하는 '매출액 1000억원 이상·3개월 간 하류 평균 국내이용자 100만명 이상' 기준을 새로 도입키로 하면서 이 기준을 충족하면 "거래 상 지위가 있는 것으로 추정한다"는 문구를 넣은 '앱 마켓사업자의 금지행위 위법성 판단기준' 고시 제정안을 행정예고했다.
여기에서 '거래 상 지위'는 예컨대 A기업이 B기업에 대해 상대적으로 우월한 지위 혹은 상대방과 거래 활동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지위에 있음을 뜻한다. 흔히 공정거래 사건에서 언론이 보도하는 기업의 갑질 혹은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과 유사한 개념이다.
방통위는 당시 고시 제정안에서 이처럼 추정 개념을 삽입해 매출액 1000억원 이상·국내이용자 100만명 이상 기준을 가볍게 충족하는 구글과 애플이 '거래 상 지위'에 걸려 규제 대상이 될 수 있음을 강조했다.
그런데 이후 넉 달 여의 추가 입법 작업을 거쳐 10일 방통위가 최종 의결한 고시 제정안 문구를 보면 '추정'이라는 적극적 개념이 없어지고 대신 "거래 상 지위가 있을 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다"는 무뎌진 표현으로 대체됐다.
쉽게 말하면 "당신이 부당한 갑질을 할 지위에 있음을 추정한다"는 뜻이 "당신이 부당한 갑질을 할 지위에 있을 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다"는 식으로 변경된 것이다.
이에 대해 방통위 측은 "행정예고 후 다양한 의견이 들어왔고 국무조정실 등과 논의 과정에서 조정 과정을 통해 '추정'이 아닌 다른 표현으로 변경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부 관계자는 "의견 조율 과정에서 추정이라는 표현의 뉘앙스가 조절되면서 문구가 바뀌었지만 향후 법령 위반 기업과 소송에서 거래 상 지위를 특정하는 이 문구의 효과는 거의 같다"고 밝혔다.
그러나 본지와 통화한 공정거래법 전문 H모 변호사는 "방통위가 '추정한다'는 문구를 배제함으로써 구글과 애플은 구체적인 매출액과 이용자 기준에서 거래 상 지위가 있는 것으로 규정될 위험성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게 만들어줬다"라며 "이는 방통위 스스로 자신이 관장하는 고시의 영향력을 완화시킨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재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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