옌스 스톨텐베르크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사무총장이 16일(현지시간) 벨기에 브뤼셀 나토 본부에서 회원국 국방장관들과 회의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브뤼셀|EPA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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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가 병력 일부를 우크라이나 국경에서 철수했다고 밝혔음에도 우크라이나를 둘러싼 군사적 긴장이 완화될 조짐은 보이지 않고 있다. 미국 등 서방은 러시아의 철군 주장을 믿을 수 없으며 오히려 러시아가 군비를 증강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는 러시아의 위협을 유럽 안보의 ‘뉴노멀’이라고 규정하고 동유럽에서 나토군 병력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옌스 스톨텐베르크 나토 사무총장은 16일(현지시간) 나토 회원국 국방장관들과 회의 뒤 기자회견에서 “장관들은 유럽 남동부, 중부, 동부에 신규 나토 전투단 배치 검토를 포함해서 나토의 억지력과 방어를 추가로 강화하는 선택지를 발전시키기로 했다”라고 밝혔다. 그는 “러시아는 수십년간 우리의 안보를 뒷받침했던 근본적인 원칙에 이의를 제기하고, 물리력을 이용해서 그렇게 할 준비가 돼 있다는 것을 분명히 해왔다”면서 “유감스럽지만 이것이 유럽의 뉴노멀”이라고 말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접경 지역으로 대규모 병력을 집결시키고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금지 명문화 요구한 것에 대한 비판이다.
러시아는 16일과 17일 이틀 연속으로 국방부 보도문 등을 통해 크림 반도에서 훈련을 마친 군 병력과 장비의 철수를 시작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스톨텐베르크 사무총장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주변에 병력을 더 보내고 있다면서 “이는 공개된 정부 출처, 상업용 위성의 이미지를 통해 확인된다”고 반박했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도 유럽의회 연설에서 “나토는 아직 어떠한 러시아 병력 축소의 신호도 보지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고 AFP통신은 전했다.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은 MSNBC 인터뷰에서 “우리는 어떤 군대 철수도 보지 못했다”면서 러시아 군대가 우크라이나 국경을 따라 매우 위협적인 방식으로 남아있다고 지적했다. 또 러시아의 주요 부대가 국경에서 멀어지는 것이 아니라 국경을 향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 고위 당국자는 로이터통신에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국경 근처에 병력을 7000명 늘렸다며 철군 주장을 반박했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17일 이 같은 서방 측의 주장에 대해 “이것(우크라이나 접경에서의 군병력 철수)은 시간이 걸리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우크라이나 분리주의 반군이 장악하고 있는 돈바스 지역을 시작으로 러시아의 군사행동이 임박한 것 아니냐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분리주의 반군을 지원하는 러시아가 돈바스를 공식 분쟁지역화해 이 곳에서 우크라이나 정부군과 반군 간 무력충돌을 침공의 구실로 삼을 수 있기 때문이다.
미크 마란 에스토니아 해외정보국 국장은 “돈바스 지역에서 러시아가 지원하는 분리주의 반군과 우크라 정부군 간 무력충돌이 격화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면서 “이런 방식으로 러시아는 직접 군사행동을 부인하고 제재를 피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네드 프라이스 국무부 대변인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러시아 정부와 언론이 전혀 사실이 아닌 이야기들을 만들어내고 있다”면서 “이름도 없는 대규모 무덤들을 우크라이나 정부군에 희생된 민간인들의 무덤이라고 주장하고, 미국이나 우크라이나가 생화학 무기를 생산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러시아 타스통신은 17일 새벽 우크라이나 정부군이 돈바스 지역의 도네츠크주 4개 마을과 루간스크주 5개 마을에 박격포와 유탄 발사기, 기관총 등으로 공격을 감행했다고 보도했다. 반면 우크라이나 군은 포격을 감행한 것은 친러 반군이라고 주장했다. 로이터통신은 “이런 일은 지난 8년간 여러 차례 발생했다”면서도 “다만 이번 충돌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국경에 10만명이 넘는 병력을 집결시킨 상태에서 이뤄진 것”이라며 파장을 주시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공격할 명분을 만들려는 ‘자작극’일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로이드 오스틴 미 국방장관은 벨기에 브뤼셀에서 나토 국방장관 회담을 마친 뒤 기자들에게 “우리는 러시아가 이 지역에서 군사적 갈등을 정당화하기 위해 이와 같은 일을 벌일 수 있다고 말해왔다”면서 “이번 일을 주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우크라이나 정부군과 친러시아 분리주의 반군은 2015년 벨라루스 수도 민스크에서 열린 ‘노르망디 형식 정상 회담’(러시아·우크라이나·프랑스·독일 4자 정상회담)을 거쳐 민스크 평화협정에 서명했다. 이 협정은 중화기 철수, 러시아와의 국경에 대한 우크라이나의 통제 회복, 돈바스 지역의 자치 확대 등을 담고 있으나 그동안 제대로 이행되지 않았다.
돈바스의 친러시아 분리주의 세력은 2014년 러시아가 주민투표 결과를 근거로 우크라이나에 속했던 크림반도를 병합하자 자신들도 독립하겠다며 자칭 도네츠크인민공화국(DPR)과 루간스크인민공화국(LPR) 수립을 선포했다. 러시아 하원은 15일 돈바스 지역 내 두 공화국의 주권을 인정할 것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박효재 기자 mann616@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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