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월급쟁이의 삶은 그저 '존버'만이 답일까요? 애환을 털어놓을 곳도, 뾰족한 해결책도 없는 막막함을 <한국일보>가 함께 위로해 드립니다. '그래도 출근'은 어쩌면 나와 똑같은 문제를 겪고 있는 노동자에게 건네는 전문가들의 조언을 담습니다.게티이미지뱅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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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일하는 거 그만두고 바로 출근할 수 있나요?"
면접 자리에서 인사팀장이 대뜸 이런 말을 했습니다. 사업 확장을 위해 당장 합류해 일할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직원이 20명 정도인 작은 회사였지만, 정규직 자리인 데다 여행 관련 경력을 쌓을 수 있는 기회라 생각해 주저 없이 답했습니다. "바로 그만두고 출근할 수 있습니다."
입사일 미루다 '채용 취소' 통보
면접이 끝나고 최종 합격 사실을 알리는 문자 메시지를 받았습니다. 입사일도 함께 통보를 받았고, 입사 전에 별도 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하더군요. 주 4일 동안 근무하던 아르바이트를 그만두고 출근 날짜만 손꼽아 기다렸습니다. 가족이나 친구들의 축하 인사도 많이 받았죠.
그런데 교육을 받기로 한 일정이 이유 없이 1주일 넘게 미뤄졌습니다. 교육을 받고 나자 갑자기 출근 예정일을 열흘 정도 미루겠다는 통보를 받았습니다. 코로나19 재확산으로 정부 방역지침이 강화됐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첫 출근일에 근로계약서를 작성하기로 한 터라 뭔가 잘못되는 건 아닌지 불안한 마음이 엄습했습니다.
슬픈 예감은 틀리지 않았습니다. 출근 예정일 하루 전, 채용을 취소하겠다는 문자가 왔습니다. 코로나19 확진자 급증으로 정상적인 회사 운영이 어려워졌다는 게 이유였습니다. 기다리게 해서 죄송하다는 말과 함께 3시간 교육을 받은 것은 시급으로 계산해 입금 처리해주겠다고 하더군요.
억장이 무너지는 심정이 이런 거구나 싶었습니다. 합격 통보를 받고 한 달 반이나 기다렸는데 일방적으로 채용을 취소하면서 죄송하다 한마디만 하면 끝나는 일인가요. 처음부터 채용이 불확실한 상황이라고 사정을 얘기했다면 아르바이트를 바로 그만두지 않고 기다렸을 것입니다.
회사에 연락해 "최소한 대기 기간이었던 한 달간의 임금을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이를 거부하면 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하겠다고도 했습니다. 하지만 회사 측은 "현재 근무하는 인원도 유지하기 힘들 만큼 어려운 상황"이라며 "정부의 영업제한 연장 여부가 늦게 확정돼 전달이 늦어졌다"고 했습니다. 한 달간의 임금을 줄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구제신청 하면 이길 수 있을까요"
①우선 구제신청을 할 경우 승산이 어느 정도일지 알고 싶습니다. 검색을 해보니 최종 합격통보와 입사일이 제시된 증거가 있다면 '채용 내정자'에 해당되며 일방적으로 채용을 취소한다면 부당해고로 볼 수 있다고 하더군요. 회사 측은 여행업 특성상 코로나19의 타격을 크게 받을 수밖에 없다는 점 등을 강조할 것 같은데, 어떤 식으로 대응을 해야 하는지도 알고 싶습니다.
②노무사나 변호사를 선임하기 부담스러워서 혼자 구제신청을 할 생각인데, 국선노무사의 도움을 받을 수 있을까요. 연봉이 어느 정도 이상이면 신청이 안 된다고 들었는데 저는 채용 내정자 신분이라 연봉을 입증할 자료가 없으니 불가능한 건지 궁금합니다.
③구제신청에서 승소를 하게 되면 어떻게 되는지 알고 싶습니다. 피해를 본 부분에 대한 손해배상을 받을 수 있는지, 받는다면 어떤 기준으로 받게 되는지요. 면접 때 아르바이트를 그만둘 것을 요구했는데, 이로 인한 손해도 배상을 받을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④마지막으로 궁금한 것은 회사가 기존 직원을 유지하기도 힘든 상황이라고 강조를 하는데, 직원들이 사직을 많이 해서 5인 미만 사업장이 될 경우 구제신청 자체가 불가능해지는 건지 알고 싶습니다.
A씨(20대 여성)
합격 통보받은 시점부터 근로계약 성립
채용 직후 회사의 갑작스러운 채용 취소 통보로 많이 혼란스러우셨을 듯합니다. 코로나19 여파로 기업들이 일방적으로 채용을 취소해 구직자들이 피해를 보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하는데요. 이런 식의 채용 취소는 '채용 갑질'에 해당하며 위법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근로기준법과 법원 판례에 따르면 근로계약 관계가 성립하는 것은 '회사가 직원에게 합격을 통보한 시점부터'이기 때문입니다.
근로계약서 작성 여부나 실제 근무 여부와 무관하게 채용 의사를 전달받은 순간부터 채용 내정자라는 법적 지위가 부여된다는 얘기입니다. 근로계약이 성립된 후 이를 취소하는 것은 근로자가 사기를 쳤거나 채용기업에 중대한 착오가 있는 매우 이례적인 경우에만 허용됩니다. 여기에 해당되지 않는다면 채용 취소는 해고와 동일한 행위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일방적인 채용 취소 조치는 금전적 손실뿐 아니라 정신적 피해까지 초래할 수 있으나 대응 방법을 잘 몰라 포기하는 경우가 많은 게 현실입니다.
채용 내정 후 취소는 '해고'와 동일 행위
①A씨가 겪은 일 또한 전형적인 채용 취소 사례라고 생각됩니다. 합격 통보를 받은 시점부터 근로 계약이 성립되는 것인 만큼 회사의 채용 취소 조치는 해고에 해당됩니다. 특히 5인 이상 사업장의 경우 해고는 서면으로 통지해야 하는데, 회사가 문자로 해고를 통지한 것은 해고절차 위반이므로 부당 해고임을 주장할 수 있습니다.
이를 입증할 증거 자료 역시 충분한 것으로 보입니다. A씨의 경우 회사 측이 보낸 문자메시지만 봐도 면접에 합격해 채용이 되었고 출근을 앞두고 있었으나, 회사 사정으로 채용이 거절되었다는 일련의 과정들을 입증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회사가 채용이나 해고 사실 자체를 부인하더라도 문자메시지를 통해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을 것입니다.
채용 공고를 냈던 시기에도 코로나19로 인해 영업이 녹록하지 않은 상황이었고, 확진자 수 또한 점차 증가하는 추세였다는 점 등을 추가적으로 주장하신다면 해고의 부당함을 인정받는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부당 해고의 경우 사업장 소재지를 관할하는 지역 노동위원회에 구제신청을 할 수 있습니다. 만약 A씨가 채용 취소가 번복돼 회사에 다니겠다는 것이 아니라 한 달 넘는 대기 기간 동안의 금전적 손실 등을 보전받고 싶다고 주장하신다면 구제신청을 통해 사용자에게 해고 기간 동안 정상적으로 근무하였더라면 받을 수 있었던 임금상당액을 청구할 수 있습니다.
월급 300만 원 미만이면 국선노무사 신청할 수도
②노동위원회에 권리구제 대리인(국선노무사) 신청을 하려면 근로자의 월평균임금이 300만 원 미만이라는 조건이 있습니다. A씨의 경우 근로조건이 명확히 정해진 것은 아니지만, 회사 측이 "3시간 근무한 것은 시급으로 계산해 입금처리하겠다"고 한 부분이 있습니다. 회사가 이야기하는 시급이 최저임금을 말하는 것인지 아니면 연봉을 기준으로 한 시급을 말하는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이 시급을 기준으로 월 평균급여가 300만 원 미만이라면 국선노무사 신청이 가능할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근로자의 근로조건이 불분명할 시 국선노무사 선임기준에 대한 명시적인 법 규정이나 고용노동부 지침이 존재하는 것은 아닙니다.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하신 후 담당 조사관이 배정되면 조사관과 이야기해 국선노무사 신청 가능 여부를 재확인할 것을 권하고 싶습니다.
③손해배상의 경우 구제신청과 별도로 회사를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해야 합니다. 소송을 제기해 회사의 손해배상 책임이 인정되는 경우, A씨가 아르바이트를 계속하였더라면 받을 수 있었던 임금 수준에서 배상액이 결정될 가능성이 큽니다. 다만 손해배상 인정 여부와 금액이 어느 정도일지에 대해서는 법원의 판단에 달린 문제라 쉽게 예상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④직원들이 퇴사를 많이 해 구제신청을 하는 시점에 5인 미만 사업장이 되더라도 문제 될 것은 없습니다. 부당해고 구제신청이 가능한 5인 이상 사업장에 해당하는지 여부는 해고 시점을 기준으로 판단합니다. 이는 A씨가 해고된 시점에 상시 근로자수가 5인 미만이라면 부당해고 구제신청이 곤란할 수 있다는 말도 됩니다. 채용 공고를 냈을 때에는 직원이 20여 명이었으나 해고 통보를 받았을 때는 직원 수가 5인 미만으로 줄었을 가능성도 없진 않으니 이 점은 별도로 확인해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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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갑질119 임혜인 노무사
정리= 유환구 기자 reds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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