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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4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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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언의 책과 사람들] 어느 장서가의 정신이 깃든 '불암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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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시스

[서울=뉴시스]불암통신 (사진 = 한상언 제공) 2022.2.8.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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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소장하고 있는 책이 늘면서 이를 체계적으로 정리해 관련 연구자들이 활용할 수 있게 소개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잠시 고민한 적이 있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소장 도서를 목록화하고 여러 연구자들이 동인이 되어 이들의 해제를 곁들여 소개하는 일종의 동인잡지의 발간이었다.

이때 나는 근대서지학회 회장인 오영식 선생이 일찍이 발간한 '불암통신'과 같은 잡지가 하나의 모델이 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리하여 오 선생님을 뵙고 선생이 소장한 '불암통신' 여러 권을 얻어오기도 했다.

하지만 생각을 구체화 할수록 모바일로 소통하는 시대에 여러 사람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방식을 놔두고 책자 형태로 동인지를 발간해 나눠가진다는 것이 어찌 보면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라는 판단이 섰다. 또한 혼자의 힘으로 책을 내기에는 품이 많이 들고 돈도 필요한 것이라 우선은 접어 두기로 했다.

책을 수집하다 보니 주변에 책 모으는 사람들이 많다. 책에 관해서 다들 일가견을 지니고 있다. 그중에서도 '불암통신'에 이어 '근대서지'를 발행하고 있는 오영식 선생은 근대서지학의 권위자로 모두들 인정하는 분이다. 지금도 여러 기관에서 책의 수집과 보관에 관해 자문을 얻기 위해 선생을 모셔 의견을 듣는다.

서지학이란 고문헌의 정본을 확정하거나 특정한 지적 주제에 관한 문헌을 체계적으로 조사해 이를 서목으로 편성하거나 혹은 편성한 것을 연구하는 것이기에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한적에 방점이 찍혀 발전되어 왔다.

서양식 인쇄술이 도입되어 만들어지기 시작한 근대 책들에 대한 관심은 그리 많지 않았던 것이 사실인데 그럼에도 백순재, 오한근, 하동호, 최덕교 등 근대 출판물에 관심을 기울여 수집, 연구한 사람들이 없지 않았다. 오영식 선생은 앞서 언급한 분들의 뒤를 이어 서지학의 범주가 한적에서 근대 출판물로까지 연장될 수 있게 노력한 분이다.

중앙대학교 국어국문학과 학부와 석사과정을 마친 선생은 재현고등학교를 거쳐 보성고등학교에서 정년퇴임을 맞을 때까지 국어교사로 재직했다. 1988년 대한출판문화협회에서 수여하는 '모범장서가상'을 수상한 이후 자신이 소장한 자료들이 사회적으로 큰 보탬이 될 수 있도록 이를 목록화하고 책자로 만들어 배포했다. 1990년부터 15년간 총 12호가 발행된 '불암통신'이 바로 오영식 선생이 손수 만든 잡지이다.

선생이 '불암통신'이라는 제호를 쓰게 된 경위는 '불암통신' 11호 '가을 여적'에 비교적 소상히 소개돼 있다. '불암통신'의 '불암'은 '불암통신'을 창간하던 당시 거주하던 상계동 뒤편 불암산에서 따온 것이며 '통신'은 평소 존경하던 국문학자 나손 김동욱 선생이 1977년 발간한 개인잡지 '나손서실통신'에서 정보의 교류라는 의미의 '통신'이라는 단어를 차용해 그 정신을 이어받았다고 한다.

오영식 선생은 1970년대 학술회의장 같은 곳에서 멀찌감치 뵌 나손 선생에게서 "무슨 후광이나 향기까지" 느껴졌다고 했으니 그 흠모하는 마음의 깊이를 알 수 있다. 실제 1991년 발간한 '불암통신' 2호를 그 전해에 타계한 나손 선생 추모호로 만들 생각까지 했다는 내용을 2호 후기에 적어두기까지 했다.

'불암통신'은 2005년 발간된 12호를 마지막으로 더 이상 발간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 잡지의 가치와 오영식 선생의 노고를 아는 여러 사람들이 모여 2009년 근대서지학회가 창립됐다. 그리고 '불암통신'의 후신이라 할 수 있는 '근대서지'가 발간되기 시작해 최근 24호까지 나왔다. '근대서지'의 편집에는 '불암통신'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오영식 선생의 손길이 닿고 있다.

코로나 사태 이전에는 책이 나올 무렵 회원들이 모여 출판기념회를 가졌다. 출판기념회 개최가 쉽지 않은 상황에서 아직 받아보지 못한 24호에 어떤 흥미로운 이야기가 실려 있을지 흐뭇한 마음으로 기다리는 중이다.

▲한상언영화연구소대표·영화학 박사·영화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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