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진 '방금 육체를 마친 얼굴처럼', 권누리 '한여름 손잡기'
서수찬 '버스 기사 S시인의 운행일지', 안미린 '눈부신 디테일의 유령론', 심진숙 '지네발난처럼'
송진 '방금 육체를 마친 얼굴처럼', 권누리 '한여름 손잡기' © 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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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박정환 문화전문기자 = 2월 두번째 주에는 송진·권누리·서수찬·안미린·심진숙 시인이 신작 시집을 펴냈다. 송진은 넋두리같은 언어로 초현실적인 세상을 표현했고, 권누리와 서수찬은 일상의 사소한 상황에서 시적 순간을 포착해냈다.
안미린은 유령을 통해 미지의 존재를 표현했고, 심진숙은 담양 곳곳의 문화재에서 시상을 얻어낸 시들을 발표했다.
◇ 방금 육체를 마친 얼굴처럼 / 송진 지음 / 걷는사람 / 1만원
송진 시인은 부산에서 태어나 1999년 다층 신인상을 받으며 등단했다. '지옥에 다녀오다' '나만 몰랐나봐' '시체분류법' 등을 펴낸 송 시인은 이번 여섯번째 시집 '방금 육체를 마친 얼굴처럼'에서 특유의 초현실적인 언어의 세상으로 안내한다.
"달빛은 호수 속으로 스며들어 유유자적 한 마리 물고기처럼 유영하고 있습니다…달빛의 담벼락에 쭈그리고 앉아 니는 뭐꼬 니는 뭐꼬 없는 손가락으로 윤리적으로 적었습니다 니가 뭐기는 뭐겠노 그저 어리석은 인간이지."(메리 크리스마스 중)
"자몽하다는 비몽사몽간이라는 뜻이래요 망고하다는 연 날릴 때 연실을 다 푸는 것을 뜻한대요 블랙아이스는 아스팔트에 검게 보이는 결빙이래요 결핍인지 결빙인지 세계의 언어는 늘 민트빛처럼 새록새록 아름다워요."(시간의 기록자 중)
◇ 한여름 손잡기 / 권누리 지음 / 봄날의책 / 1만1000원
권누리 시인은 1995년 대구에서 태어나 2019년 월간 문학사상을 통해 등단했다. 수록시 '하트*어택'은 고무줄이 늘어나 흘어내리는 양말 한짝을 통해 닮아가는 연인을 표현했다.
"한 걸음 걸을 때마다 흰 발목 양말이/ 흘러내려요 걷다 멈춰 서고, 다시/ 그걸 반복해요 왼쪽이 그러면 오른쪽이 그러는 것처럼/ 나란히 무너지고 있거든요."
수록시 '내비게이션 미래'는 의인화된 내비게이션이 운전자에게 말을 건다.
"납작한 지구 위에 더 납작하게 엎드려 회전을 인내하는 마음, 언니는 알까? / … / 나는 이제 제법 길을 잘 찾는다/ 지도를 읽는 건 진달래와 철쭉을 구분하는 일."
서수찬 '버스 기사 S시인의 운행일지', 안미린 '눈부신 디테일의 유령론', 심진숙 '지네발난처럼'© 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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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버스 기사 S시인의 운행일지/ 서수찬 지음 / 문학의전당 / 1만원
서수찬 시인은 196년생이며 인천에서 시내버스 기사로 살아가고 있다. 서 시인은 1989년 '노동해방문학'에 시를 발표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해 2007년 시집 '시금치학교'를 펴냈다. 두번째 시집인 '버스 기사 S의 운행일지'는 그의 삶과 주변 풍경을 고스란히 담아냈다.
표제작 '버스 기사 S의 운행일지'에는 소래포구를 경유하는 버스의 일화를 압축적으로 표현했다.
"소래를 지나가는 버스는/ 아직도 불심검문을 한다/ 무슨 사상을 숨기고 다니는 것도 아닌데/ 죄다 검은 비닐봉지에다/ 꽃게나 새우를 숨기고 탄다/ … / 소래 어물전 상인들도
무슨 부끄러워할 일도 아닌데/ 하루 종일 일한 작업복과/ 작업복을 따라온 비린내를/ 검은 비닐봉지에다 숨기고 타는지/ 검문하면 화부터 낸다/ 소래 사람도 못 믿냐고."
또다른 시 '사람의 열매'는 시인의 머리로 떨어진 은행나무 열매를 보면서 자녀를 사랑하는 마음을 겹쳐낸다.
"세상 모든 나무들은/ 열매를 네모나 세모처럼 각이 지게 내지 않는다는 것을/ 내 머리에 떨어져/ 저만치 굴러가는 은행 알을 보고 새삼 깨닫는다/ … / 사람의 열매인 자식도/ 동그랗게 말아서 세상에 내보내야 하지 않겠나/ 누구에게 떨어져도/ 무기가 되지 않게."(사람의 열매 중)
◇눈부신 디테일의 유령론/ 안미린 지음/ 문학과지성사/ 9000원
신작 '눈부신 디테일의 유령론'은 2020년 출간한 '빛이 아닌 결론을 찢는'에 이은 두번째 시집이며 안미린 시인은 2012년 '세계의문학' 신인상을 통해 등단했다. 안 시인은 이번 시집 곳곳에 배치한 '유령'을 통해 쌓아 올리지만 구축되지 않는 감각들을 표현했다.
"인간이 아니지만 인간을 말하는 밝은 헛것/ 유령을 점유하지 않고 유령을 향유하는 빛…/ 수련 수녀는 두 손으로 기도할 수 있는 곳을 지나치지 않았다// 유령을 하얗게 얼릴 수 있다는 생각이 들면 컵을 놓쳤고 겨울이었다."(유령기계9 중)
"우려낸 기억이 수면 위에 유령 도시를 그려냈다/ 해류를 거스르면서 우리는 우리의 이름을 붙여서 긴 이름을 만들었다/ 우리의 긴 이름을 외우지 못하는 시간, 우리의 얼굴을 전부 외울 수 없는 마음을 기억했다"(비미래 중)
◇ 지네발난처럼/ 심진숙 지음/ 문학들/ 1만원
심진숙 시인은 1963년 광주에서 태어나 대학원에서 문화재학을 전공했다. 그는 이번 시집에서 영산강의 시원인 용소, 무정면 칠전리의 은행나무 당산, 관방제림, 소쇄원 등 담양 곳곳의 지명과 문화유산을 내세웠다.
표제작 ' 지네발난처럼'은 어머니 주검의 휘어진 등뼈를 마주하면서 지네의 모습을 겹쳐 노래했다. 제목 지네발난은 벼랑에서 자라는 난초과 식물이며 초여름에 붉은 꽃 한송이를 피어낸다. 시인은 어머니의 삶에서 지네발난을 떠올리며 "평생을 벼랑에서 오체투지…악착같이 기어오르는 지네발난"이라고 표현했다.
art@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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