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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8 (토)

[수요동물원] 영혼까지 쭉쭉 빨아먹는 신종흡입마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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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념깨는 흡입식 포식 방법으로 주목받는 신종 동물들

해리포터 디멘터처럼 산송장으로 만드는 말벌

두꺼비 살갗 파고들어 내장끄집어내 먹는 뱀

동작을 나타내는 엄연한 단어인데도 뭔가 사용이 조심스러워지는 말이 있죠. 흡입하다, 빨아들이다라는 뜻의 suck도 대표적인 경우라고 할 것입니다. 본래 사전적 의미 말고도 영어사전에서는 보기 힘든 부정적이고 외설적인 속어, 욕설로 종종 활용되다보니 그런 상황이 돼버린 거죠. 하지만 빨아들인다는 것은 상당히 많은 동물들이 택한 식사방식입니다.

별도의 턱구조와 이를 갖추지 못한 동물 중에서 흡입의 방식으로 영양분을 섭취하는 경우는 정말 많거든요. 대표적인 경우는 어느새 사계절 벌레가 돼서 우리 피를 야금야금 빨아먹는 모기가 있죠. 주로 무척추동물의 식사방법인 듯 보이지만, 가장 작은 새로 꽃의 꿀을 빨아먹는 벌새가 있고, 주둥이로 개미와 흰개미를 흡입하는 개미핥기들이 있습니다. 아, 포유동물중에서도 지능이 높은 고래 중에서도 거대한 흡입력으로 작은 물고기와 갑각류들을 물과 함께 한입속에 빨아들이는 거대종들이 있습니다. 오늘은 인간들과 만난지 얼마 안되는 흡입의 명수들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인간의 탐사열망이 발현된 것인지, 불행히도 환경파괴의 소산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년에도 수백 수천종의 새로운 동물종이 발견되고 있는데, 그들중 남다른 수준을 떠나서 섬뜩할 정도로 무섭게 빨아들여 감히 ‘흡입마귀’라고 부르고 싶은 짐승들입니다.

◇영혼까지 빨아들이는 디멘터 말벌

디멘터라는 이름에 벌써 해리포터 시리즈를 떠올리는 분들이 있을 겁니다. ‘죽음을 먹는 자’라는 부제가 붙은 이 존재들은 말 그대로 멀쩡한 이들의 영혼을 빨아들이는 게 주특기이자 주업무입니다. 넝마 같은 천을 두른 채 떠다니는 이들이 인간의 얼굴에 입을 갖다대고 흡입을 시작하고 나면 말 그대로 산송장, 좀비가 돼버립니다. 움직이기는 움직이되 자아는 사라지고 본성은 산산히 흩어져버리는 것이죠. 영화 ‘부산행’이나 할리우드 영화 ‘나는 전설이다’의 좀비인간들이 활력을 잃고 흐물흐물해진 모습이랄까요. 이 디멘터의 이름을 딴 신종 말벌이 등장했습니다. 2007년 메콩강 일대 국제생물조사에서 존재가 확인돼 7년 뒤 ‘Ampulex dementor’라는 공식 학명까지 부여받았습니다. 식습성이 해리포터 시리즈에 묘사된 디멘터와 너무나 빼닮았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죠. 중국 윈난성에서 발원해 미얀마·라오스·태국·캄보디아·베트남을 굽이굽이 흘러 인도양으로 흘러가는 메콩강은 동남아시아인의 영양공급을 책임지는 젖줄입니다. 더불어 이 유역은 가장 비옥한 생명의 보고이기도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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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포터 시리즈에 등장하는 디멘터. 아즈카반 감옥의 죄수인 이들은 생사람의 영혼을 빨아들여 산송장으로 만드는 '죽음을 먹는 자'들로 불린다. /harrypotter.fandom.com홈페이지. Artemisialufk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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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자연보호기금이 진행한 탐사에서 무려 139종의 새로운 생물종이 확인됐어요. 이 중 가장 주목받는 주연급이 바로 디멘터말벌이었습니다. 살벌한 별명도 있어요. 영혼을 빨아들이는 자!(Soul-Sucker) 주식은 바퀴벌레입니다. 엄밀히 말하자면 이들이 직접 주둥이를 몸뚱어리에 꽂고 물장군마냥 체액을 직접 빨아먹는 건 아니랍니다. 그러나 사냥·식사법을 두고 ‘영혼까지 탈탈 빨아먹는다’는 표현이 그렇게 적절할 수 없습니다. 사냥법은 간단해요. 바퀴벌레의 머리에 침을 놓습니다. 이 침을 통해 삽입된 신경독은 바퀴벌레의 의식상태를 파멸에 이르게 합니다. 살아있되 차라리 죽는게 더 나을 것 같은 상태, 산송장이 되는 거죠. 그렇습니다. 좀비 바퀴벌레입니다. 움직이고 신진대사를 하지만, 자유의지가 아닙니다. 벌이 투입한 신경독에 의해 강시가 퐁퐁 뛰어다니듯 발걸음합니다. 목적지는 벌의 보금자리, 구덩이입니다. 산송장이 된 바퀴벌레의 몸뚱아리에 알을 낳습니다. 알에서 부화한 새끼들은 본능적으로 비필수 장기부터 파먹기 시작합니다. 쉽게 말해서 당장 없어지더라도 생명을 유지하는데 별 지장이 없는 기관부터 먹어치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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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습관 때문에 해리포터의 괴물 캐릭터 이름을 따서 이름붙여진 '디멘터말벌' /Fox 11 LosAngeles Twit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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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소한의 자비라고 있는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오랫동안 살아있어야, 좀 더 신선한, 그래서 영양가가 풍부한 고기와 내장과 살을 먹을 수 있거든요. 피식자 입장에서는 더없이 잔혹하지만, 이 벌은 천상 영양사이면서 미식가입니다. 그렇게 영혼을 빨아들인채 육신을 서서히 내주면서 바퀴벌레는 비로소 진짜 죽음을 맞습니다.

◇삼키지 않고, 뚫고 빨아 먹는 초유의 뱀

사람 손가락보다 조금 큰 장님뱀부터, 몸길이가 7m가까이 자라는 아나콘다까지, 지구촌의 뱀들은 생김새도, 습성도 가지각색이지만 한결 같은 원칙에 따라 살아왔습니다. 첫째, 절대로 초식뱀은 없다. 무조건 육식이다. 두번째, 씹지 않는다. 무조건 삼킨다는 것이죠. 간혹 알을 삼켰다 껍질은 뱉는 작은 뱀이 있을 뿐, 기본적으로 사냥을 합니다. 여건에 따라서 버둥거리는 먹잇감을 그대로 삼켜버리던지, 아니면 독니로 물거나, 온몸으로 죄어서 죽인 다음 먹거나 하지요. 위턱과 아래턱을 극한의 경지로 움직이면서 먹잇감을 입속으로 빨아들이는 대신 고기를 잘근잘근 끊어서 씹는 기능의 이빨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 통념이 과거가 됐습니다. 뱀에 대한 스테레오타입을 일거에 날려버린 뱀이 출현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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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이 다리부터 공략해 두꺼비를 산채로 삼키고 있다. 쿠크리뱀의 포식습관이 발견되기 전까지 모든 뱀들은 이렇게 먹잇감을 통째로 삼키는 것으로 알려져왔다. /ABC Brisbane Twit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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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은 ‘쿠크리뱀’이라는 이름을 가진 동남아 고유종입니다. 이 뱀의 주식은 두꺼비입니다. 통상 두꺼비는 피부의 독성물질을 부각시키면서 뱀과 맞닥뜨렸을 때 최대한 몸을 부풀리는 식으로 저항합니다. 이 저항법이 언제나 효과를 발휘하지는 않습니다. 두꺼비의 필사적인 방어 태세에도 불구하고 강력한 턱으로 몸을 찢어뜨린 뒤 마치 바람 빠진 풍선처럼 만들어놓고 꾸역꾸역 삼키는 뱀들이 적지 않거든요. 뱀이 자신의 몸통보다 작은 개구리일 경우에는 재빠르게 물어서 반항할 틈새도 주지 않고 목구멍으로 넘겨버립니다. 반면 두꺼비나 황소개구리처럼 좀 큰 먹잇감들을 공략할 때면, 다리부터 물고 입으로 턱으로 잘근잘근 씹어서 근육을 뭉개버려 도망가지 못하도록 한 뒤 버둥거리는 몸뚱아리를 꾸역꾸역 넣는 거죠. 디테일은 달라도 결국은 삼킵니다.

그런데 ‘쿠크리뱀’은 이 고정관념을 타파해버립니다. 이 뱀의 이름인 ‘쿠크리’는 네팔의 고대 전사들이 몸에 두르고 다니던 날카로운 단검입니다. 이 뱀의 이빨이 범상치 않다는 이야기이죠. 파충류 연구자 헨리크 브링쇠씨가 주도하는 연구팀이 지난 2020년 9월 과학지 ‘헤르페토조아’에 발표한 연구 결과는 이렇습니다. 쿠크리뱀은 여느 뱀처럼 두꺼비의 머리나 다리를 물고 꾸역꾸역 삼키지 않습니다. 그대신 자신의 머리로 두꺼비의 배를 파고듭니다. 머리를 빙글빙글 돌려가면서 뱃가죽을 파고드는 모습이 마치 드릴로 나무에 구멍을 뚫는 모습을 연상시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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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크리뱀이 두꺼비의 단단한 살집을 찢고 들어가서 내장을 포식하고 있는 모습. 쿠크리뱀은 뱀은 모든 먹이를 통째 삼킨다는 고정관념을 깨뜨렸다. /Winai Suthanthangj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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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를 두꺼비의 뱃속에 처박은 뱀은 펄떡펄떡 숨쉬는 심장을 비롯해 허파와 위장 간 등 두꺼비의 내장을 하나하나씩 떼어서 끄집어내 흡입해서 목구멍속으로 넘깁니다. 마침내 뼈와 가죽만 남은 두꺼비의 몸뚱아리를 남겨두고 유유히 사라집니다. 끔찍한 것은 그 때까지도 두꺼비는 두눈을 멀뚱멀뚱하며 의식이 뚜렷하다는 것이지요. 이런 방식의 포식 장면이 세 번이나 발견됐다는 것을 보면, 일시적인 습성이 아닌 평소의 습성으로 봐야할 것 같습니다. 먹이를 통째 삼키지 않고, 뚫고 끄집어낸 다음 삼키는, 하이에나 스타일의 포식 사례가 보고된 것이죠. 이 뱀의 사이즈가 비단구렁이나 보아, 아나콘다급이 아니라는 것, 그래서 사람이 이 같은 공격을 당할 걱정을 안해도 된다는 게 천만다행입니다.

[정지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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