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상정 정의당 대선 후보가 17일 오후 국회에서 <국민께 드리는 말씀>대국민 기자회견을 마친 뒤 인사하고 있다. 심 후보 뒤 배경에 쓰인 그의 이름 위로, 정의당과 심 후보를 향한 비판과 쇄신의 키워드들이 쓰여 있다. 공동취재사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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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은 일찍부터 토론이 있어야 했던 문제입니다. 진보의 성역처럼 금기시되는 사회적 문제들에 대해 공론화를 시작하겠습니다. 금기를 금기시해 낡은 진보의 과감한 혁신을 이뤄가겠습니다.”
지난 17일 심상정 정의당 대선 후보가 모든 일정을 중단하고 숙고에 들어간 지 닷새 만에 대선 레이스에 복귀하며 한 약속입니다. 카메라 앞에 선 심 후보 뒤로 흰천 위에 노란색의 ‘심상정’ 석자가 붙었고 그 위에는 ‘선생질’, ‘킹노잼’, ‘민주당 2중대’, ‘노회찬 없는 정의당’, ‘현장에, 지역에 없다’는 말들이 겹쳐져 있었습니다. 다음날인 18일 선대위 조성주 종합상황실장은 인사말을 통해 “지금까지와는 다른 캠페인을 펼칠 것”이라며 “욕먹는 캠페인 하겠다. 욕을 먹더라도 할 말을 하겠다”고 받아안았습니다. “금기를 금기시하겠다”는 심 후보의 약속을 실천으로 보여주겠다는 뜻입니다.
이는 대선 결과에 따라 심 후보뿐 아니라 정의당의 명운마저 갈릴 수 있다는 자기반성으로 읽힙니다. 정의당 핵심 관계자는 “정의당의 지지율이 제자리걸음 하는 것을 넘어 당 안에서도 이해관계가 상충돼 공론화를 꺼려 온 것이 거대 양당 체제의 대안 정당으로 선택받지 못한 근본적 원인이라고 성찰한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앞서 ‘진보의 금기를 깨자’는 슬로건을 걸고 당선된 김종철 전 대표도 2020년 10월 취임 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을 찾아 “연금 개혁, 조세 개혁, 공공부문 개혁을 위해 함께 노력하자”는 화두를 던졌지만 성추행 사건 등으로 동력이 꺾이고 말았습니다.
정의당이 진보정당의 가치와 원칙을 더 선명하게 하기 위해 지금까지의 금기에 도전하겠다는 의제는 정년 연장, 연금 개혁, 연공서열제 임금체계 등입니다. 심 후보도 지난 17일 기자회견에서 “진보에도 기득권이 있다. 정년 연장 문제를 비롯해 대기업과 중소기업 노동자들, 또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동자들 간에 연대를 가로막는 부분들을 공론화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조성주 실장도 지난 18일 “세대 간, 고용형태 간, 성도별 간 불평등을 불러오는 연공서열제 임금체계, 주요 정당은 침묵하는 연금과 세금, 진보정치가 미뤄두고 묵혀둔 이야기를 시작할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이 가운데 연금 개혁은 그 윤곽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국민·기초·퇴직연금을 개혁해 현 세대의 부담을 적정 수준으로 높이겠다는 복안입니다. 재정 수지 불균형으로 현 세대가 돈을 더 내거나 미래세대가 덜 받을 수밖에 없어 다른 후보들이 말을 아끼는 연금 개혁을 공론화해 주도적으로 논의를 이끌겠다는 겁니다. 심 후보는 지난 24일 한국지역언론인클럽 초청토론회에서 “왜 불균형을 이뤘고 앞으로 누적된 불균형이 후세대뿐 아니라 국민을 위태롭게 할 수 있다고 진솔하게 말하고 (현세대가) 적정 부담을 더 내야 한다는 점을 말씀드리려 한다”며 구체적 수치를 담은 공약 발표를 예고했습니다.
일부 대기업 노조가 주장하는 정년 연장의 경우 신규 일자리 창출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는 만큼 정의당은 이해관계 당사자들의 의견을 들으며 기조를 정리하고 있습니다. 다만 심 후보는 지난 2일 <월간중앙>에서 “2030 청년의 취업난 등을 고려할 때 현대차 노조가 주장하는 방식(정년 연장 및 정규직 충원)의 정년 연장은 적절치 않다. 2030 청년들에게 기회를 줘야 한다”며 “장수 시대를 대비한 은퇴자의 인생 이모작과 일자리 창출은 별도로 정책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내비쳤습니다. 상대적으로 높고 안정적 임금체계를 가진 노동시장부터 먼저 정년 연장을 하면 세대 간,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의 불평등을 심화시킬 수 있어 조심스럽게 추진해야 한다는 겁니다.
정의당은 연공서열제 임금체계 등을 포함해 다른 영역의 금기도 폭넓게 검토하고 있습니다. 2030 여성과 견줘 상대적으로 관심을 기울이지 못한 4050 여성이 겪는 문제도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정의당 핵심 관계자는 “일부 진보진영에 유리한 문제를 손대지 않았던 점을 반성하고 있다. 불평등·기후위기·차별을 말하며 불평등과 연결된 문제를 말하지 않는 것은 진보정당답지 않다”며 “설 기간이나 설 직후 현장 행보나 공약 발표 등 다양한 형태로 캠페인을 시작할 예정”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조윤영 기자 jy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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