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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9 (금)

이슈 미얀마 민주화 시위

[세계의 분쟁지역] 미얀마 쿠데타 1년… ‘봄의 혁명’은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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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1월 30일 미얀마 최대 도시 양곤 도심에서 청년단체 회원들이 군부 쿠데타를 규탄하는 기습 시위를 벌이고 있다. 양곤=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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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 국민통합정부 산하 시민방위군 훈련 수료식. 유튜브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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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2일 미얀마 북부 사가잉 지방 인마빈 지구 팔레 타운십에서 그 일대 시민방위군(PDF) 12개 그룹이 모여 ‘팔레 타운십 시민방위군’, 이른바 ‘팔레 파카파’를 결성했다. 민주진영 지하정부인 국민통합정부(NUG) 방침에 따른 통합이라고 미얀마 언론 ‘미지마 닷컴’은 설명했다.

NUG는 지난해 5월 반(反)군부 무장투쟁을 선포하며 PDF를 공식 창설했다. 이미 4월부터 북서부 친주(州)에서 활동하고 있던 자생적 시민군 상당수가 PDF로 흡수됐고, 이후 미얀마 전역 마을 곳곳에서 PDF가 잇따라 출범했다. 10월 28일에는 단일 명령 체계에 따라 군사작전을 수행하기 위해 NUG 국방부 아래 ‘중앙지휘조정위원회’도 구성됐다. 타운십별 PDF 통합 작업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반군부 투쟁에 있어서 자생적 시민군과 NUG 간 전략적ㆍ정책적 호흡은 중요하다. NUG가 여러 차례 PDF 행동강령을 발표하고, NUG 인권부가 투항한 군인과 전쟁포로 사병의 인권 존중을 강조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시민군의 ‘무력’이 과도한 폭력으로 변질되거나 정치적 목표를 잃어서는 안 된다는 절박함도 밑바탕에 깔려 있다.

최근 사가잉 지방 몽유와에서 있었던 반군부 시위는 그런 의미에서 특히 눈여겨볼 만하다. 당시 시위 지도자 탄 초 우는 무장한 PDF 대원의 경호를 받으며 주민들과 가두 행진을 벌였다. 그 자체로 시민불복종운동과 PDF 무장투쟁의 연대를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이었다. 탄 초 우는 지난 4개월 동안 PDF의 영향력이 크게 미치는 시골 지역을 중심으로 비폭력 시위를 조직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현지 언론 ‘미얀마 나우’와의 인터뷰에서 “무장투쟁만으로는 혁명을 성공시킬 수 없다”며 “시민불복종운동과 무장투쟁을 병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포스트 쿠데타’ 국면에서 정치투쟁과 무장투쟁, 양 날개의 균형을 맞춰 가야 하는 민주진영의 고민이 묻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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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 국민통합정부가 창설한 시민방위군 훈련 모습. 유튜브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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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에서 지난 1년은 스스로 만든 헌법조차 위반하며 쿠데타를 감행한 군부를 무너뜨리기 위해 온 사회가 한마음으로 똘똘 뭉쳐 싸운 시간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얀마 시민들은 그 시간을 ‘봄의 혁명’이라 부른다. 그리고 미얀마 역사는 2021년 2월 1일 쿠데타를 기점으로 새롭게 쓰이고 있다.

쿠데타 이전 미얀마는 73년 전 동부 카렌주에서 시작된 민족 분쟁이 아직도 끝나지 않은 ‘세계 최장기 내전 국가’였다. 지난해 초까지 미얀마 내전은 국경 소수민족 거주 지역에서 국지전 형태로 전개됐다. 하지만 쿠데타는 내전 구도를 완전히 바꿔 놓았다. 변방에서 중심까지, 소수민족이 사는 산악지역에서 주류 버마족이 터전을 일군 평야에 이르기까지, 반군부 무장투쟁이 벌어지지 않은 지역이 거의 없다. 내전은 전국화됐고, 아웅산 수치 국가고문과 민주주의민족동맹(NLD)이 추구해 온 군부와의 타협 정치는 완전히 실패했다.

쿠데타 1년이 지난 현재 미얀마에는 세 개의 전선이 펼쳐져 있다. 첫 번째는 반세기 넘게 이어진 ‘(버마족 중심) 군부 대 소수민족 무장단체’ 간 분쟁이다. 내전이 끊이지 않았던 카렌주와 카친주는 물론, 협상을 통해 장기간 휴전 상태였던 북서부 친주와 동부 카레니주도 소수민족 무장단체들이 다시 활동하면서 ‘돌아온 전장’이 됐다.

두 번째는 ‘군부 대 시민’ 전선이다. 포스트 쿠데타 국면에서 가장 역동적인 전선이기도 하다. 무력 분쟁이 전무하던 북부 사가잉 지방, 중부 마구웨 지방은 이제 PDF의 무장투쟁이 가장 활발한 최대 격전지다. 쿠데타가 아니었다면 생겨나지 않았을 전선이다.

세 번째는 소수민족 간 ‘동족 내전’이다. 샨주가 여기에 해당한다. 남부 거점 샨주복원협의회(RCSS)와 북부 거점 샨주진보당(SSPP)은 2016년 즈음부터 부딪히기 시작했는데, 최근 들어 관계가 더욱 악화하는 조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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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0월 17일 미얀마 만달레이 지역에서 시민들이 민주진영 지하정부인 국민통합정부(NUG)를 지지하는 집회를 하고 있다. 이라와디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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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분쟁 및 테러 관련 자료를 분석하는 비정부 조직 ‘무장 분쟁 위치 추적ㆍ사건 기록 프로젝트’에 따르면 지난해 2월 1일부터 12월 31일까지 11개월간 미얀마에서 발생한 무력 충돌 및 민간인 공격 사례는 총 7,686건에 달했다. 전년도 같은 기간 대비 무려 715%나 증가했다. 시리아(7,746건)보다는 약간 적고, 예멘(6,270건), 아프가니스탄(6,481건), 이라크(3,731건)에 비하면 압도적으로 많았다.

같은 맥락에서 지난 1년간 미얀마군의 ‘공습’이 갑자기 늘었다는 사실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기나긴 미얀마 내전 중에도 공습은 매우 드물었고 지난 25년간은 거의 없다시피 했으나, 지난해 미얀마 ‘국군의 날’인 3월 27일 카렌주에 가한 공습을 시작으로 빈도가 잦아지는 추세다. 12월 중순에는 카렌주 레이 께이 꺼 지역에 미얀마군이 포탄 수십 발을 퍼부어 난민 1만 명이 발생했고, 지난 15일에는 카렌주에 있는 병원이, 16~17일에는 카레니주 퍼루소 타운십 난민캠프가 잇따라 공습 피해를 당했다. 병원과 난민캠프 같은 인도주의 시설까지 겨냥한 무차별 공습은 미얀마 군부의 잔혹성을 드러내는 것이지만, 다른 면에선 지상 전투력이 약화됐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향후에도 지상 전투력을 만회하기 위해 공습에 의존할 가능성이 작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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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 군부의 포격과 방화로 불에 탄 친주 탄뜨랑 마을. 친랜드포스트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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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최근 미얀마군의 전투력과 사기가 크게 떨어졌다는 신호가 곳곳에서 포착되고 있다. 바로 탈영병과 사상자가 급증했다는 점이다. 지난해 2월 28일 쿠데타 이후 최초로 탈영한 니 투 타 대위는 탈영병 지원 단체 ‘피플 솔저스(peoplesoldiers.org)’를 만들어 ‘탈영 독려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피플 솔저스에 따르면 지난 16일 기준 탈영병 수는 군인 2,500명, 경찰 5,000명에 이른다. 니 투 타 대위는 “탈영병이 1만 명은 돼야 군부에 타격을 줄 수 있다”고 말한다.

NUG, PDF, 소수민족 무장단체 등이 자체 집계한 미얀마군 사상자 수도 상당하다. 카렌민족연합(KNU)은 “이달 첫 2주간 카렌주에서만 미얀마군 사병 160명이 사망했다”고 밝혔다. 같은 기간 KNU에서는 사망자 13명, 부상자 18명으로 훨씬 적었다. 앞서 NUG는 지난해 6월 1일부터 7월 31일까지 두 달 동안 무력 충돌 700건이 발생해 미얀마군에서 1,130명이 숨지고 443명이 부상했다는 조사 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미얀마 정치범지원협회(AAPP)가 집계한 민간인 사망자가 지난 24일 기준 총 149명이라는 사실과 비교해 보면 군부 측 피해가 얼마나 큰지 실감할 수 있다.

학살과 고문, 방화, 전시 성폭력 등 온갖 전쟁범죄를 저질러 온 미얀마군은 군인으로서 명예와 자부심을 잃어 가고 있다. 미얀마 군부의 쿠데타가 성공했다고 보기 힘든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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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경 국제분쟁전문 저널리스트


이유경 국제분쟁전문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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