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번째 대권에 도전에 나섰던 손학규 전 바른미래당 대표가 27일 서울 여의도 한 카페에서 후보직 사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김상선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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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 전 대표는 이날 서울 여의도 정치카페 ‘하우스(How’s)’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오늘 대통령 선거 출마의 뜻을 접는다”며 “성찰하며 조용히 살겠다”고 말했다. 그런 뒤 “제왕적 대통령제와 양당제의 폐해는 극복되어야 한다”는 말을 남겼다. 그는 “세계 10대 경제대국이 된 대한민국이 G5 선도국가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정치도 선진화돼야 한다”며 “다당제 연립정부로 기초로 한 의회중심의 합의제 민주주의가 그 길이다”라고 덧붙였다.
회견 뒤 “어떤 사람이 대통령이 되어야 하느냐”는 질문에 손 전 대표는 “어떤 분이 대통령이 돼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며 “미래 비전과 통합의 리더십, 민주적 리더십이 절실히 요구된다”고 답했다. 손 전 대표의 측근 인사는 “대선 국면에서 어느 정당, 어느 후보를 지지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17일 손학규 전 바른미래당 대표가 서울 종로구 광화문사거리에서 퇴근길 시민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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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 전 대표는 지난해 총선 이후 6개월 이상 야인으로 지내오다 민생당(바른미래당의 후신) 당적을 버리고 네번째 대선 도전을 선언했다. “대통령제의 모순이 극에 달했는데 대선 주자 누구도 권력구조 개혁을 주장하지 않는 상황을 앉아서 보고만 있을 수는 없다”는 게 주변에 밝힌 이유였다. 손 전 대표는 60일간 각종 인터뷰와 거리 인사 등을 통해 나홀로 선거 운동을 벌였지만 결국 2강1중 대선 구도에 균열을 내지 못했다.
2012년 새정치민주연합 대선후보 경선에서 문재인 대통령에게 패한 손 전 대표는 2014년 7월 30일 수원 정 보궐선거에서 낙선한 뒤 이튿날 “함께 잘사는 나라, 저녁이 있는 삶을 드리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해 송구하다”며 정계은퇴를 선언했다. 이후 2년여 동안 전남 강진의 만덕산 토굴에 칩거한 뒤 2016년 10월 정계에 복귀하면서 내건 명분이 ‘제7공화국’이었다. 제왕적 대통령제를 폐지하고 다당제 정치 구조를 만들자는 구상이었다.
27일 대선 예비후보에서 사퇴한 손 전 대표가 기자회견을 한 뒤 지지자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김상선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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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손 전 대표는 “87년 헌법체제가 만든 6공화국은 그 명운을 다했다”며 “지난 30년 동안 조금씩 수렁에 빠지기 시작한 리더십은 이제 완전히 실종됐다. 6공화국 체제에서는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더 이상 나라를 끌고 갈 수가 없다”고 주장했다. 개헌을 명분으로 뛰어들었던 2017년 국민의당 대선후보 경선에선 안철수 대표에게 패했다.
안 대표가 떠난 바른미래당을 이끌며 벌인 선거제 개편 시도가 사실상 마지막 정치실험이었다. 정의당 등 군소정당과 손잡고 9일간 단식농성을 벌이며 더불어민주당을 압박한 끝에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입법에 성공했으나, 총선을 앞두고 민주당과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이 비례위성정당을 만들면서 제도의 취지가 무력화됐다.
손학규 전 바른미래당 대표가 지난해 11월30일 오전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참배를 마친 뒤 남긴 방명록 문구. 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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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장혁 기자 im.janghyu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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