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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A급은 지원 없어… 국립극장長을 찾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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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격자 없음’ 판정 받고 다시 공모

조선일보

서울 남산에 있는 국립극장. 이 정부 들어 두 번째로 ‘극장장 없는 국립극장’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국립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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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극장장 선발 공고. 전문성과 역량을 갖춘 인재를 찾습니다!’

지난해 6월 1일 인사혁신처가 이런 소식을 알렸다. 공모에 약 20명이 지원했지만 최종 후보 3명에 대해 ‘적격자 없음’ 판정을 내렸다. 지난해 9월 20일 김철호 전 국립극장장이 임기를 마쳤지만 극장장실은 지금도 텅 비어 있다. 인사혁신처는 결국 지난해 11월 30일 국립극장장 2차 공모에 들어갔다.

국립극장장 구인난(求人難)이 심각하다. 2차 공모와 면접 등을 거친 결과 박상진 동국대 한국음악과 교수, 채치성 전 국악방송 사장, 김희정 상명대 교수 등 3명으로 임용 후보가 압축된 것으로 26일 확인됐다. 적격자를 고른다 해도 임명은 빨라야 3월이라는 관측. 국립극장장은 민간인만 지원할 수 있는 개방형 직위인데, 김철호 전 극장장이 임명되기 전에도 국립극장장은 1년간 공석이었다. 이 정부 들어 ‘극장장 없는 국립극장’ 사태가 되풀이되고 있는 것이다.

◇허들이 더 높아졌다

구인난의 배경은 여러 가지다. 먼저 블랙리스트와 ‘미투 운동’ 등 최근 들어 장애물이 많아졌다. 김철호 전 극장장 이전의 1년 공백도 내정했던 연극인이 ‘미투 운동’으로 낙마한 후 고위공무원(국립극장장은 국장급)이 거쳐야 하는 역량평가시험을 통과할 만한 코드 인사를 못 찾았기 때문이라는 후문이다.

2006년 도입된 역량평가시험은 꽤 높은 허들이다. 예컨대 장관이 두 시간 뒤에 재난상황을 발표해야 한다고 가정하고 대국민 발표문을 만드는 과제가 주어진다. 상황 정리 능력, 설득력, 정무 감각 등을 보는 테스트다. 한국무용협회 조남규 이사장은 “평생 예술만 한 사람들은 대부분 거기서 막힌다. 아무리 A급이라는 인정을 받아도 떨어지면 소문나고 망신당할까 봐 지원 자체를 꺼린다”며 “공연계를 대표하는 사람들은 공모를 피하고 정권과 코드가 맞으면 국립극장장이 되는 일이 빈번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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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착오

국립극장에는 국립창극단, 국립무용단, 국립국악관현악단 등 전속 단체가 3개 있다. 자체 제작 공연과 국립극장 기획 공연으로 관객을 만난다. 홈페이지에는 “전통에 기반한 동시대적 공연예술 창작으로 국민 삶의 질 향상에 기여한다”고 적혀 있다.

현재 최종 후보 3명 중 2명은 국악, 1명은 양악 전공이다. 안호상 전 국립극장장(현재 세종문화회관 사장)은 “국립극장이 가야 할 방향에 대한 확고한 생각을 바탕으로 극장장을 뽑아야 하는데 지원자들의 면면을 보면 시대착오적”이라며 “국립극장은 현대예술을 창작하는 곳인데 전통예술을 하는 곳으로 착각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운영 경험도 중요하다. 유민영 연극평론가는 “국립극장장은 어떤 한 장르에 매몰되지 않고 문화예술을 폭넓게 알고 무엇보다 예술경영을 할 줄 아는 사람이 와야 한다”며 “전속 단체를 의식해 뽑지 말고 극장 운영을 잘할 사람을 구한다는 신호를 명확히 보내야 한다”고 했다.

◇공모제 근본적 재검토를

2000년 이후로 김명곤, 신선희, 임연철, 안호상, 김철호씨 등이 극장장을 지냈다. 이제는 지역에서 문예회관 관장을 거친 이들도 국립극장장에 지원하고 있다. 연출가 손진책씨는 “공모제 이후 국립극장을 좀 맡아줬으면 하는 사람들은 손을 안 들고 감투 쓰고 싶어하는 사람들만 몰려 온다”며 “잿밥에는 마음이 있고 염불엔 마음이 없는 꼴”이라고 지적했다.

전 문화부 장관 A씨는 “마치 공정한 것처럼 겉으론 공모(公募)를 내걸고 뒤로는 코드 인사를 하거나, 낙하산을 보내는 공모(共謀)가 벌어진다”며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외국처럼 국립극장장, 국립도서관장, 국립박물관장 등 나라를 대표하는 공간엔 문화예술에 상당한 역량을 가진 분을 모시는 추천제를 진지하게 고민해볼 시점”이라고 했다.

[박돈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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