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20일 오후 서울 성동구 KT&G상상플래닛 커넥트홀에서 세계 3대 투자가 짐 로저스와 '대전환의 시대, 세계 5강으로 가는 길'을 주제로 화상 대담을 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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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다변(多辯)으로 정평이 나 있다. 그는 지난 6일 중앙일보와 한국행정학회·한국정책학회가 공동 주최한 ‘차기정부운영, 대통령 후보에게 듣는다' 1차 토론회에서 5580자 분량의 기조연설을 했다.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가 참석한 13일 2차 토론회 기조연설(2860자)의 두 배 분량이다.
민주당 중진 의원은 “이 후보가 태생적으로 각종 현안에 관심이 많은 데다, 정책 공부를 이어가며 아는 게 많아지다 보니 말이 점점 길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선대위 안팎에서는 윤 후보와의 TV토론을 앞두고 “말하는 것도 좋지만 잘 듣는 시간을 적당히 늘려야 한다”(선대위 핵심 관계자)는 기류도 감지된다.
행정학회·정책학회 토론회 당시 이 후보는 총 4개의 질문을 소화했다. 첫 질문을 받고 “시간이 얼마나 괜찮냐”더니 3000자가량 답변을 쏟아내고선 “말이 너무 길었다. 답변할 때 몇 초 안에, 이런 게 습관이 돼 있다”고 덧붙였다. 이어진 두 번째 질문에서 그는 20분(6200자)가량을 홀로 이야기했다. 반면 윤 후보는 비슷한 시간 동안 참석자 10명과 질의응답을 주고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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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능’ 강조…메시지 과잉으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강원도 매타버스(매주 타는 민생버스) 민생투어 첫 날인 지난 15일 강원 춘천시 명동거리를 찾아 즉석 연설을 하고 있다.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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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후보의 다변은 경선 때부터 의도된 측면이 있다. 가급적 말을 아끼는 이낙연 전 대표를 상대로 “할 말은 하고, 할 일은 하겠다”(지난해 8월 23일, 1차 캠페인 CF)라고 속 시원한 이미지를 강조했다. 그리고 경선에서 승리했다. 선대위 첫 슬로건 ‘이재명은 합니다’에서도 추진력과 사이다 발언을 부각하려는 전략이 고스란히 이어졌다.
민주당 선대위 관계자는 “상대적으로 정책 공개가 늦은 윤 후보를 겨냥해 초반부터 이 후보의 역량을 강조하자는 판단이 있었다”면서 “‘유능한 이재명’과 ‘무능한 윤석열’의 구도를 만들겠다는 게 기본 취지였다”고 설명했다. 변호사 출신의 말 잘하는 후보 특성을 유능함 강조 전략으로 포장해 내세웠다는 것이다.
하지만 선거가 막바지로 치달으면서 이 후보는 기자들의 개별 질문에 10분 이상을 할애하거나, 하루에 여러 분야의 다른 공약을 서너개씩 연쇄 발표하며 메시지 과잉에 시달리는 경우가 잦아졌다. 지난 12일 한국경영자총협회를 찾아가 진행한 ‘10대 그룹 CEO 토크, 넥타이 풀고 이야기합시다’ 행사 70분간 참석자 절반이 발언 기회를 못 얻고 이 후보가 40분 넘게 말한 일도 있었다.
2002년 8월 당시 노무현 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광주시 북구 문흥동 청소년 수련관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김경빈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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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권의 한 의원은 통화에서 “이 후보가 ‘경제 대통령’을 내세우면서 구체적 현안과 실적을 거론해 빚어진 결과”라면서 “사례와 통계를 앞세우는 미괄식 화법이 듣는 사람에게 자칫 ‘가르치려 든다’는 인상을 주는 것은 경계할 점”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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盧“미래·희망”…李는 “실용·현실”
이 후보는 변호사 출신으로 직설 화법을 쓴다는 점에서 여권의 대표적 달변가인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과 비슷한 측면이 있다. 하지만 노 전 대통령의 말과 글을 담당했던 강원국 전 청와대 연설비서관은 지난해 7월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살아온 이력이나, 정치 입문 과정은 비슷한데 그 밖에 비슷한 점은 찾기 어렵다”고 두 사람 간 차이에 방점을 찍었다.
2002년 노무현 대선 캠프 메시지팀에 몸담았던 여권 인사는 통화에서 “노 전 대통령은 시대전환이나 정치 개혁, 동서 화합과 같은 큰 그림의 이상향을 주로 이야기했고, 그런 게 당시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다”면서 “지금의 이 후보에게서는 그보다 구체적, 실리적 발언이 많은데 이는 지난 20년간 유권자들이 그만큼 현실적으로 변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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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후보 선대위 내부에서는 “경청·겸손 이미지를 놓칠 수 있다”는 점을 경계한다. 이준호 에스티아이 대표는 “정치권에 ‘구화지문(口禍之門·입은 재앙의 문)’이라는 사자성어가 회자된다”면서 “정치인의 메시지 관리에도 선택과 집중이 필요한데, 발언량이 많다 보면 무엇이 초점인지, 어디에 방점을 두고 있는지 흐릿해져 유권자의 호응을 얻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심새롬 기자 saero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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