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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아무튼, 주말] 화장실도, 꽉 막힌 세상도 새해엔 “뚫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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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달호의 오늘도, 편의점]

그는 도사가 되어 있었다. 이 변(變)이 변(便) 때문에 일어난 건지, 물티슈나 생리대 때문인지, 더 강력한 무엇이 배관의 앞길을 가로막고 있는 건지, 딱 보면 ‘견적’이 나온단다. 이게 일반 압축기로 해결될 문제인지, 이중 압축기가 필요한지, 관통기가 등장할 시점인지, 자신의 능력 밖 사건이 벌어진 건지, 고여있는 물체의 색깔과 점도, 냄새 등을 보면 대충 답이 나온단다. 그래서 장비도 여럿이다. 일반, 이중, 펌프형, 피스톤형…. 고무 압축기는 종류별로 다 있고, 뱅글뱅글 핸들 돌리는 스프링 관통기도 길이별로 지니고 있다. 숱한 시행착오의 결과다.

어제 그를 만났을 때도 작업복 차림이었다. 스카프를 복면처럼 두르고, 용접할 때 사용하는 보안경 끼고, 빨간 고무장갑에 방수 앞치마를 걸치고 있었다. 편의점 계산대에 있어야 할 그는 그렇게 1.5층 화장실 앞에 있었다. “오늘도 막혔어?” “응.” “이번엔 뭐야?” 귀찮다는 듯 휘휘 손을 내저었다. 바깥 테이블에 앉아 기다리고 있었더니 콰르르르~ 물 내려가는 소리가 들렸다. 일단, 성공! 냉랭한 표정으로 계단을 내려왔다. 화풀이하듯 탁탁, 고무장갑을 의자에 내리쳤다. 투덜투덜, 구시렁거렸다. “도대체 어디서 뭘 먹은 녀석이야!”

조선일보

일러스트= 김영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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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사하는 사람에게 화장실은 애물단지다. “화장실 좀 사용해도 될까요?”라는 물음에 “안 돼요!” 거절하는 점포가 열에 예닐곱은 된다. 방광은 폭발 직전인데, 혹은 조만간 역사적 대사를 치를 것만 같은데, ‘화장실 인심’이 이토록 메말라서야 싶겠지만, 장사 좀 해보시라. 처음엔 손님은 왕이라며, 지나가는 시민도 앞날 손님이라며, ‘내 마음은 이렇게 열려있어!’ 호기롭게 화장실을 개방하겠지만, 머잖아 씩씩거리며 문짝에 번호키를 달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물론 그동안 너댓 번, 곡진한 인내심을 지닌 사람은 열댓 번, 우웩 우웩 구역질하며 변기 뚫는 작업을 천형(天刑)처럼 치러야 하리.

폐쇄 1단계. 처음엔 번호키도 개방해 놓는다. “화장실 비밀번호 몇 번이에요?” 자꾸 묻고 답하는 것이 귀찮아 계산대 옆에 “1008#”이라고 붙여 놓는다. 그러다 비밀번호 새나간 것을 깨닫는다. 내 생일을 동네 사람들이 다 알게 되었구나! 폐쇄 2단계. 비밀번호를 바꾼다. 군대에서 암구호 변경하듯 종종 바꾸고, 물어보는 손님에게만 은밀히 알려 알려준다. “쉿, 오늘의 암구호는 82, 85, 샵. 작전 개시!” 폐쇄 3단계. 화장실 사용 전면 금지령을 내린다. 손님이 물으면 “화장실 없어요!” 한다. 저건 뭐냐고 화장실 쪽을 가리키면 “우리꺼 아니에요” 했다가 가벼운 실랑이가 일기도 한다. 굳이 그렇게까지 해야 하느냐고 묻지만, 겪어보면 안다.

그러다 친구도 ‘뚫는’ 도사가 됐다. “이런 일 알바에게 시키면 그만두는 애들이 많아 점주가 해야 돼” 하며 씁쓸히 웃는다. 그는 이제 2단계에서 3단계로 넘어가기 직전이다. “겨울엔 유난히 더 막히는 것 같네. 그냥 못질하고 자물쇠 채우는 게 낫겠어.” 화장실 열쇠 만들어놓고 필요한 손님에게만 건네주는 식당 볼 때마다 좀 지나치다 생각했는데 이제야 그 심정 알겠단다. 안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낸다. “담배 다시 피워?” “뚫는 덴 이게 최고지.” 친구는 허허롭게 웃었다. 이놈아, 너 담배 끊은 지 보름 지났다.

시선을 이웃 나라로 돌리자면, 일본을 여행하다 화장실에 가고 싶으면 편의점으로 달려가면 된다. 일본 편의점은 화장실을 대체로 개방하기 때문이다. 그것도 남녀 칸이 구분돼 있고, 비데가 설치돼 있고, 공간도 쾌적하다. 일본 사람들은 화장실 인심이 좋다고 마냥 칭찬할 필요까진 없겠다. 프랜차이즈 본사 방침이기 때문이다. 집객(集客)과 서비스 차원에서 그렇게 한다. 그럼 왜 우리는 그러지 않는 거냐고 지나치게 나무라진 마시라. 일본과 우리나라 편의점은 성격 자체가 크게 다르다. 일본 편의점은 본사에서 투자하는 비율이 높고, 계약 기간도 10년 이상으로 한국보다 훨씬 길다. 가맹점주들이 회사에 소속된 준(準)직원 형태로 존재한다. 말 그대로 자영업인 우리나라 편의점과 다르다.

그럼에도 일본 편의점 점주들도 화장실 애로가 많긴 많은가 보다. 도쿄에서 편의점을 운영하는 점주에게 물으니 그도 뚫는데 도사가 되어 있었다. “가끔은 내가 이 짓을 왜 하는가 싶을 때도 있어요. 그래도 먹고살자니 어쩔 수 없죠. 허허허!” 그도 안주머니로 조용히 손을 집어넣었다. 그냥 변기만 막히면 다행인데 다른 사건 사고도 많아, 일본 유흥가 편의점은 화장실을 아예 폐쇄한 경우도 적지 않단다.

일상의 밑바닥엔 다 이유와 배경이 있다. 그러니 화장실 인심 야박하다 너무 탓하지만 마시라. 저기는 저런데 여기는 왜 이러냐고 간단히 재단하진 마시라. 친구는 오늘도 빨간 고무장갑 끼고 1.5층 화장실로 향한다. 흑색 보안경을 끼는 이유는 그래야 참혹한 현장을 내려다보는 시각적 고통을 조금이라도 차단할 수 있어 그렇단다. 뚫어~! 시나브로 뚫는 도사가 되어간다. 뒷사람 배려 없이 ‘나만 이용하면 그만’이라는 답답한 사고도 시원히 뚫고 싶을 것이다. 어질어질 꽉 막힌 이 세상도, 올해는 뚫어~~!!

작가·‘오늘도 지킵니다, 편의점’ 저자

[봉달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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