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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대출 나올구멍 없어서…매달 '상품권깡' 내몰리는 서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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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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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 다음달을 생각하면 막막하지만, 일단 이달이라도 살고 봐야죠. 상품권깡이라도 해서 카드대금을 막아 보려고요."

서울에서 작은 족발 가게를 운영하는 A씨는 최근 설 대목을 앞두고 통장 잔액이 바닥났다. 잇단 사회적 거리 두기로 매출이 들쭉날쭉한 데다 명절을 앞두고 돈 나갈 곳도 많았기 때문이다. A씨는 "신용카드대금 결제일이 다가오는데 입이 바짝바짝 마른다"며 "카드론도 이미 써버려 돈 나올 구멍이 없다"고 말했다. 올해부터 카드론에도 총부채원리상환비율(DSR)이 적용되면서 추가 대출길이 아예 막혀버렸다.

이에 A씨는 급전을 마련하는 수단으로 속칭 '상품권깡'을 택했다. 신용카드로 백화점 상품권을 구매한 뒤 다시 팔아 현금화하는 방법이다. 이 과정에서 수수료가 발생하지만 카드값을 내지 못하면 신용점수가 떨어지고 다른 대출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보니 당장 손에 현금을 쥘 수 있는 수단을 택한 것이다.

정부 규제로 주요 금융권 대출이 막히면서 한계 상황에 다다른 금융 소비자들이 매달 상품권을 산 뒤 되팔아 갚는 방식의 상품권깡으로 내몰리고 있다. 지속된 사회적 거리 두기에 경제 상황은 안 좋은데, 올해 DSR 규제가 카드론에도 적용되면서 한도가 줄어들고 업권별 총량 규제와 기준금리 인상이 겹치면서 취약차주들이 대출 절벽에 몰린 탓이다. 현행법상 개인 신용카드 한 개당 한 달에 100만원까지만 상품권을 구매할 수 있는데, 카드 개수마다 100만원씩 늘어나기 때문에 많게는 몇 백만 원까지 상품권깡이 가능하다.

30대 직장인 B씨도 비슷한 처지다. B씨는 지난해 신용대출을 받아 섣불리 코인 투자에 나섰다가 수천만 원을 잃었다. 대출 이자조차 내지 못할 상황이 되자 B씨는 이자 납입일마다 신용카드로 상품권을 구매하곤 한다. 지난해 10월에는 카드사 두 곳을 이용해 최대 200만원어치 상품권을 사기도 했다. B씨는 "상품권을 현금화해 카드대금을 돌려 막고 당장 급한 납입금도 해결한다"며 "대출도 더 이상 안 나오니 어떻게든 막아야겠다는 생각으로 몇 달째 상품권깡을 계속하고 있다"고 전했다.

실제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는 이 같은 방법을 사용 중이라는 후기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취약차주가 가장 많이 활용하는 것은 신세계상품권을 이용한 방법이다.

카카오톡 선물하기 등을 이용해 신용카드로 신세계상품권을 구매한 뒤, 이를 이마트 영업점에서 현물 상품권으로 교환한다. 현물로 전환한 상품권은 신세계 자체 서비스 SSG페이(쓱페이)에 등록해 현금으로 전환이 가능하다. 5% 정도 전환 수수료를 내야 하지만 다른 상품권에 비해 간편하게 현금으로 전환할 수 있다.

한때 롯데백화점 상품권을 이용한 방법도 활용됐다. 롯데백화점 상품권을 롯데그룹 엘페이(L.pay) 애플리케이션(앱)에서 사용되는 엘포인트(L.point)로 전환하는 방식이다. 엘포인트는 직접 현금화가 불가능하지만 하나금융그룹의 하나머니로 전환해 이를 카카오페이 머니로 전환하는 식으로 우회 현금화가 가능했다. 다만 2020년 롯데 측이 상품권깡을 막기 위해 우회로를 차단했다.

두 방법이 가능한 것은 카카오톡 선물하기와 같은 온라인숍이 있기 때문이다. 신세계백화점과 롯데백화점 모두 영업점에서는 개인 신용카드로 상품권을 구매할 수 없다. 현금이나 법인카드만 가능하다. 현행법상 백화점 상품권을 개인이 신용카드를 통해 구매할 수 있도록 하고 있지만, 백화점 업계는 상품권깡 등에 대한 우려로 개인 신용카드 구매를 허용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온라인숍을 이용하면 이러한 문제가 해결된다.

상품권깡까지 이용되는 상황이 발생하는 것은 자영업자·취약계층이 코로나19 상황을 빚으로 간신히 버텨오면서 채무 상환 능력이 바닥났기 때문이다. 실제 지난해 11월 기준 자영업자의 전체 대출잔액은 약 632조원으로, 코로나19 사태 직전인 2019년 말보다 31.2% 증가했다. 취약차주들은 은행은 물론 제2·3금융권에서 돈을 끌어다 쓸 만큼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최근 정부의 대출 옥죄기가 더 강화되면서 이마저도 녹록지 않다.

우석진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서민의 소액 대출까지 막히니 이런 암시장이 돌아가는 부작용이 나타나는 것"이라며 "우물이 마를 때 가장자리부터 마르듯이 이렇게 대출 총량을 거칠게 규제하다 보면 가장자리에 있는 서민부터 피해를 본다"고 말했다.

[최근도 기자 / 명지예 기자 / 사진 = 김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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