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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매경이코노미스트] 규제개혁을 제대로 하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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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며칠 전 폐막한 CES 2022 관련 뉴스 중에서는 두 가지가 특히 눈에 띄었다. 경제학자의 직업병이겠지만 첨단 기술이나 상품에 대한 것은 아니었다. 하나는 평소에는 늘 정글 자본주의를 비판하던 여당의 대선후보가 CES 참여 기업들과 간담회를 하면서 '기업 활동을 위해 정부가 자유로운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라고 강조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CES에서 참신성과 혁신성을 인정받은 많은 한국 스타트업 상품들이 정작 국내에서는 규제에 막혀서 출시조차 못한다는 뉴스였다.

정치인이나 관료들은 항상 규제 개혁을 강조하지만 기업들이 효과를 피부로 느꼈다는 얘기는 들어보기 어렵다.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이래 역대 정부는 규제 철폐를 단골 메뉴로 내세웠다. 하지만 경제위기 상황에서 이를 악물고 구조조정을 했던 김대중정부 때를 제외하면 규제 숫자는 계속 늘어났고, 낡고 촘촘한 규제 때문에 숨이 막힌다는 호소는 갈수록 많아졌다. 최근의 사례 중에는 혁신적 발상으로 많은 인기를 끈 염색효과 샴푸가 법령에 명시된 기존 염색약 성분과는 다른 성분을 사용하였다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연거푸 규제를 받아 논란이 된 경우가 있다. 정말로 규제가 필요했는지 여부와 별개로 규제의 사유가 참으로 혁신 역행적이지 않은가.

그래서인지 요즘 단골로 등장하는 정책 아이디어로는 네거티브 규제가 있다. 허가된 것만 가능하도록 하는 포지티브 규제의 반대말로서 명시적으로 금지한 사항들 외에는 다 허용하는 식으로 규제의 체계를 바꾸자는 것이다. 거대 양당의 대선후보들은 물론 학자들, 평론가들도 경제정책 방향을 이야기할 때는 빠짐없이 네거티브 규제 도입의 필요성을 언급한다.

그러나 네거티브 규제 도입은 생각처럼 만만한 일이 아니다. 이미 박근혜정부 때부터 네거티브 규제의 필요성은 제기되었다. 문재인 대통령의 지난 선거 당시 공약집에도 들어 있었고, 임기 내내 강조되었다.

그렇지만 규제 샌드박스로 약간 흉내를 낸 정도를 빼면 크게 달라진 것이 있는지 실감하기 어렵다. 정부 담당자들 얘기를 들어보면 이미 모든 법령을 전수조사해서 네거티브 조항으로 바꿀 수 있는 것은 다 바꿨고, 직접 바꾸기 어려운 것들은 유사한 효과를 내도록 '포괄적' 네거티브화를 해왔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별 변화가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대륙법 체계를 따르고 있는 우리 법제상 네거티브 규제 방식을 도입하기가 어렵고, 영미법 국가라 하더라도 규제법이 존재하는 한 적용 범위가 제한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현실이 이러니 네거티브 규제화만 외치는 것은 공허한 생색내기 언급이 될 수 있다. 비유하면 입시지옥 대책을 물어보면 그러니까 공교육을 바로 세워야 한다고 답하는 식이다. 분명히 맞는 말이지만 문제 해결까지의 멀고 험한 길을 찾아가기에는 공자님 말씀처럼 들린다.

모든 사회적 난제가 그렇듯이 규제 개혁에도 한 방의 쉬운 해결책은 없다. 그 사실을 이해하고 인정하는 것이 출발점이다.

그다음으로 필요한 것은 확실한 개혁 의지다. 워낙 빈말 약속이 흔한 세상이라 의지를 어떻게 확인할까 싶지만 법조문 몇 가지 고치는 정도가 아니라 법률이 만들어진 근본 목적부터 재검토하겠다는 수준의 의지 표명이 필요하다.

다음은 과학적 분석의 틀로 무장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문제가 생기면 이를 금지하는 법을 서둘러 만들 뿐 어떤 파급효과가 생기는지를 체계적으로 분석하는 태도는 부족하다. 규제 입법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국회의원 입법에 대한 규제영향평가 도입이 시급한 이유다. 마지막으로, 규제를 개혁하자고 말만 하지 말고 투자를 하자. 기술 개발 아무리 해봐야 낡은 규제에 막히면 소용없다. 작더라도 정부 기술 개발 예산의 일정 비율을 규제 연구와 개혁 작업에 할당하자.

[권남훈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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