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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0 (금)

전세대출 금리 5% 육박…월 이자가 서울 아파트 월세 추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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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 김모(39)씨는 오는 7월 전셋집 계약 만료를 앞두고 가시방석에 앉은 듯하다. 계약갱신청구권을 쓸 계획이지만, 혹시라도 집주인이 “들어와 살겠다”며 거부할까 봐 연일 집주인 눈치를 살피는 중이다. 그는 2년 전 서울 강북구 미아동 A아파트(84㎡)를 전세보증금 4억3000만원에 구했다. 보증금 절반은 은행에서 대출받았다. 김씨는 “그 사이 전셋값은 치솟고, 대출 금리도 뛰고 있어 걱정”이라며 “만일 (전세) 계약 연장이 안 되면 전세 대신 월세를 알아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7월말 임대차3법 따른 갱신계약 끝나

임차인(세입자)에게 대출 한파가 다가오고 있다. 최근 대출 금리가 오르며 전세대출 이자가 월세보다 비싸진 데다, 정부의 대출 규제도 갈수록 강화되고 있어서다. 더욱이 오는 7월 말 임대차3법에 따른 갱신 계약이 끝나는 만큼 전세대출 수요도 급증할 수 있다. 하반기로 갈수록 치열한 대출 경쟁에 은행권 대출 문턱은 더 높아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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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중은행 전세대출 금리 5% 눈앞.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전세자금 대출 금리는 상단 기준 연 5%대 진입을 눈앞에 두고 있다. 4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우리·하나은행)에 따르면 지난 18일 기준 전세대출 금리(평균치)는 연 3.65~4.57%다. 지난해 1월 말(연 2.52~3.49%)과 비교하면 1년여 사이 최저·최고 금리가 각각 1%포인트 이상 뛰었다. 연 2%대 금리의 대출 상품은 지난해 10월 이후 자취를 감췄다.

전세대출 금리가 빠르게 오르며 일부 지역에서는 전세대출의 이자가 월세보다 비싸지는 ‘역전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예를 들어 세입자가 서울에서 아파트 전셋집을 구하면서 연 4.57% 금리에 2억원 대출을 받았다고 가정하자. 연간 이자는 914만원으로, 세입자는 매달 약 76만2000원을 갚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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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 이자가 서울 아파트 월세보다 비싸 .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반면에 2억원의 전세보증금을 월세로 바꾸면 세입자는 대출 이자보다 7만9000원 적은 약 68만3000원을 월세로 내면 된다. 지난해 11월 기준 서울 아파트 전·월세 전환율 4.1%(한국부동산원 자료)를 적용한 금액이다. 전·월세 전환율은 전세보증금 일부를 월세로 돌릴 때 적용하는 비율이다.

전세대출 금리가 오르는 것은 한국은행의 잇따른 기준금리 인상으로 전세대출 지표 금리인 코픽스(COFIX·자금조달비용지수)와 금융채(단기물) 금리가 눈에 띄게 오르고 있어서다. 지난달 신규취급액 기준 코픽스(1.69%)는 전달보다 0.14%포인트 상승했다. 지난해 초(0.86%)보다 1.9배 올랐다. 특히 최근 두 달간 0.4%포인트 뛰며 상승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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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계 대출 증가액.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또 일부 시중은행이 전세대출 금리의 기준으로 삼는 은행채 6개월·1년물 등 금융채 단기물 금리도 오름세다. 금융투자협회 채권정보센터에 따르면 금융채 6개월물(AAA)은 19일 기준 연 1.652%로 1년 전(연 0.814%)보다 2배로 상승했다.

금융권은 당분간 전세대출 금리가 오를 것으로 전망한다. 코픽스 등락에 영향을 미치는 시중은행의 예·적금 금리가 꾸준히 오르고 있어서다. 금리가 오르면 은행이 대출 재원을 마련하는 데 드는 이자가 상승해 조달 비용이 비싸진다.

김인응 우리은행 영업본부장은 “한국은행이 연내 기준금리를 추가로 인상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시장금리에 영향을 받는 각종 대출 금리는 한동안 오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올해 세입자는 이자 부담만 커지는 게 아니다. 정부의 대출 규제가 갈수록 강화되면서 대출 한파의 직격탄까지 맞을 수 있다. 금융당국은 올해 전세대출을 포함한 가계 대출 총량관리 목표치(4~5%)를 지난해(5~6%)보다 낮춰 잡았다.

전셋값·금리 올라 ‘전세의 월세화’ 가속

시중은행은 이미 지난해 11월부터 전세대출에 깐깐한 기준을 적용하고 있다. 전세계약 갱신 시 전셋값이 오른 만큼(증액 범위)만 대출해 주고, 전세대출 신청일도 잔금 지급일 이전으로 제한했다. 전세대출을 받아 부동산이나 주식 투자 등 다른 용도에 쓰는 걸 막기 위한 장치(규제)를 더한 것이다.

게다가 오는 7월 말이면 임대차3법 시행 2년 차에 접어든다. 계약갱신청구권을 사용한 임차인이 계약 만료로 전세 시장에 쏟아질 수 있다. 2~3년 새 급등한 전셋값(시세)에 맞춰 보증금을 올려주기 위한 추가 대출 수요가 은행으로 몰릴 수 있다는 얘기다. 대출 문턱과 이자 오름세를 동시에 끌어올리는 요인이다.

익명을 요구한 은행권 관계자는 “하반기 계약갱신 청구가 끝나는 세입자로 인해 전세 수요가 급증할 수 있다는 은행의 우려가 크다”며 “결국 은행은 대출 총량 관리를 위해 가산금리를 올리는 등 대출 문턱을 더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가 정부의 강도 높은 대출 규제로 인한 실수요자 피해를 막기 위한 정책을 펼쳐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급증한 가계 부채를 신속히 해결하는 게 맞지만, 단순히 총량을 억제하는 건 위험하다”며 “수급이 해결되지 않으면 일부 서민이 피해를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인호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특히 전셋값과 대출 금리 급등으로 ‘전세의 월세화’가 본격화되면 자본을 축적해야 하는 젊은 층과 노후 준비가 필요한 사람도 영향을 받는다”고 말했다.

염지현·윤상언 기자 yj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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