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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급 없는 콘텐츠 ‘사각의 링’…플랫폼을 지배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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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콘텐츠가 가야 할 길]

미국 현지서 살펴본 두 전략

코코와, 별도 OTT 플랫폼 통해

한국 예능·드라마 등 서비스

CJ ENM, 현지 제작·유통사 인수

독자적 ‘플랫폼 영향력’ 확장 나서
한겨레

미국에서 서비스 중인 코코와 스크린샷. 웨이브 아메리카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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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캘리포니아에 사는 20대 벨라 크라우더는 <검은 태양>(MBC), <펜트하우스>(SBS) 등 케이(K)콘텐츠를 즐겨 본다. 요즘 미국에서 크라우더 같은 이를 찾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케이콘텐츠의 질이 높아진 것도 한 이유지만, 예전과 다르게 접근이 쉬운 플랫폼이 미국에서 서비스되고 있기 때문이다. 크라우더가 케이콘텐츠를 보는 데 주로 이용하는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플랫폼은 ‘코코와’(KOCOWA·Korean Content Wave)다. 넷플릭스 안마당인 미국에서 국내 지상파 방송 3사가 세운 미국 현지 법인 웨이브 아메리카스(옛 코리아 콘텐트 플랫폼)의 오티티 브랜드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오징어 게임>에서 명연기를 펼친 배우 오영수가 한국인 최초로 미국 골든글로브 남우조연상을 수상했다. <오징어 게임>은 넷플릭스 사상 최고 흥행 기록을 세웠다. <블룸버그>는 지난해 10월16일(현지시각) 넷플릭스 내부 보고서를 입수해 <오징어 게임>이 8억9110만달러(약 1조원) 이상의 수익을 올릴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그러면 <오징어 게임> 제작자와 감독, 배우는 이러한 흥행으로 추가 수익을 얼마나 얻었을까? 전혀 없다. <오징어 게임> 판권, 저작권 등을 모두 넷플릭스가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일각에서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미국 왕서방이 챙기는 꼴”이라는 탄식이 나오는 이유다. 그렇다면 케이콘텐츠가 제값을 받고 성장하는 방법은 없을까? 미국 현지에서 그 해법을 찾아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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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웨이브 아메리카스 사무실. 웨이브 아메리카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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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높은 빌딩이 들어선 윌셔 거리. 이곳에서 한 블록 떨어진 곳에 웨이브 아메리카스 사무실이 있다. 2016년에 설립된 웨이브 아메리카스는 현재 미국에 진출한 유일한 국내 플랫폼이다. 2017년 7월부터 ‘코코와’ 브랜드를 내세우고 서비스에 들어갔다. 미국에서 인기 있는 한국 예능, 드라마 등 한류 콘텐츠를 온라인과 모바일을 통해 서비스한다. 코코와는 미국에 사는 한국 사람이 아니라 한류 콘텐츠에 관심 있는 현지인들이 대상이다.

코코와는 서비스를 시작하면서 콘텐츠 유료화 모델(월 6.99달러·약 8300원)을 도입했다. 당시 월 10달러(약 1만1천원)인 넷플릭스 요금에 견줘서는 싸지만, 낯선 케이콘텐츠에 치르는 금액으로는 그리 저렴하다고 보기 어렵다. 하지만 유료화는 엔터테인먼트 본고장 미국에서 케이콘텐츠가 뿌리내리기 위한 장기적인 포석이다. 플랫폼의 안정화에 유료화는 반드시 필요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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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서비스 중인 코코와 누리집. 웨이브 아메리카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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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이브 아메리카스는 충성도 높은 플랫폼을 만들기 위해 세가지 전략을 단계적으로 마련했다. 첫째는 기꺼이 돈을 내도록 콘텐츠 품질을 올리는 것. 2017년 당시만 해도 케이콘텐츠에 자막을 단 해적판이 난무했다. 하지만 자막은 구글 번역기를 돌린 수준으로 조잡했다. 박근희 웨이브 아메리카스 대표의 얘기다. “케이콘텐츠가 아무리 재미있다고 하더라도 내용은 자막으로 전달되기 때문에 번역이 제대로 안 되면 좋은 콘텐츠도 형편없어 보인다. 미국인이 이해하기 쉬운 자막과 콘텐츠 소개를 만드는 데 중점을 두었다.” 글로벌 로컬라이징 파트너 회사와 협력해 번역 전문 프리랜서의 품질 관리에 나섰다. 관리 인원만 수십명이다. 곧 포르투갈어와 스페인어 서비스도 할 예정이다.

두번째는 해적판과의 싸움이다. 당시 미국에서는 한류 바람을 타고 불법 유통되는 케이콘텐츠가 판을 치고 있었다. 해적판을 잡기 위해 고민하다 나온 대안은 코코와에 플레이되는 광고를 24시간 안에 보는 조건으로 무료 이용이 가능하게 한 것이다. 케이콘텐츠 이용자 수를 빠르게 늘리는 동시에 브랜드를 알리려는 목적이었다. 성과는 있었다. 박 대표는 “지난해 9월보다 10월 코코와 트래픽은 26% 증가했고, 1인당 월평균 시청 시간도 14% 이상 증가했다”고 말한다. 무료 이용자가 매일 접속해 신작을 챙겨 보는 게 쉽지 않다 보니, 월과금으로 전환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해적판도 서서히 줄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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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보 채널로 활용하는 코코와 유튜브 채널. 웨이브 아메리카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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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은 오픈 플랫폼 전략이다. 미국에는 주요 지상파 방송사, 오티티업체, 케이블티브이업체, 위성방송업체 등 미디어 플랫폼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이런 경쟁에서 코코와를 알리기 위해서는 수백억원의 마케팅 비용이 필요하다. 자본금 150억원, 정직원 30여명인 웨이브 아메리카스로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그런 식의 홍보 마케팅 대신, 오픈 플랫폼 전략을 구사했다. 지상파 3사뿐만 아니라 교육방송, 종합편성채널, 케이블방송채널, 중소 스튜디오 등 다양한 콘텐츠 회사의 케이콘텐츠를 코코와에서 서비스할 수 있도록 했다. 콘텐츠가 플랫폼에서 성과(시청률)를 내면, 그만큼 수익을 가져가도록 했다. 투자부터 수익 환산까지 모든 것을 한 회사가 지휘하는 넷플릭스와는 반대되는 모델이다. 예를 들어 문화방송 드라마 <검은 태양>이 미국에서 수익이 나면, 그 이익을 문화방송과 나누는 식이다. 이를 통해 코코와 매출은 해마다 40% 이상씩 성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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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제이의 콘텐츠 플랫폼 티빙. 티빙 누리집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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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현지에서는 케이콘텐츠를 놓고 또 다른 플랫폼 전략을 세우는 회사도 있다. 할리우드 제작·배급사처럼 현지에서 직접 제작해 유통하는 방식이다. 현지 작가, 배우, 스태프 등과 호흡을 맞춰 작품을 만든다는 전략이다.

주성호 한국콘텐츠진흥원 미국비즈니스센터장은 “한국에서 만든 작품에 자막을 넣거나 더빙해서 판매할 수 있지만, 현지에서 제작하면 더 큰 수익을 올릴 수 있다. 이들 대형 방송사와 협업하면 더 많은 케이콘텐츠를 현지인에게 소개하고, 더 높은 수익을 올릴 수도 있다”고 했다.

이런 전략을 추진하고 있는 대표적인 기업이 씨제이(CJ)다. 계열사 씨제이이엔엠(CJ ENM)은 지난해 11월 할리우드 콘텐츠 제작·유통사인 엔데버 콘텐트 지분 80%를 7억7500만달러(약 9250억원)에 인수했다. 엔데버 콘텐트는 씨제이가 가진 지식재산권(IP)을 미국에 가져와 케이콘텐츠를 만들 예정이다. 또 현지 작가, 배우, 스태프 등을 활용해 제2의 <설국열차>, 제2의 <미나리> 등의 제작에도 나설 전망이다. 엔데버 콘텐트가 보유한 플랫폼도 적극적으로 이용할 계획이다. 씨제이이엔엠 관계자는 “미국 현지에서 안정적인 생산 거점 확보뿐만 아니라 안정적인 유통망, 충성도 높은 플랫폼 확보를 위한 베이스캠프”라고 말한다. 미국의 글로벌 매체 바이어컴시비에스(CBS)와의 제휴도 같은 맥락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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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빙의 2022년 오리지널 콘텐츠 라인업. 씨제이이엔엠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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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제이이엔엠의 오티티 티빙은 올해 네이버 메신저 자회사인 라인과 손잡고 일본, 대만, 미국 등에도 진출할 예정이다. 티빙은 씨제이이엔엠 제작 콘텐츠뿐만 아니라 제이티비시(JTBC) 등 여러 콘텐츠를 서비스하고 있다. 미국에서 코코와에 맞서 케이콘텐츠를 서비스하는 독자적인 플랫폼으로 키우기 위해서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처럼 미국 현지에서는 여러 기업이 한국 콘텐츠를 기반으로 아이피 가치 사슬을 통해 플랫폼을 확장해가려고 노력하고 있다. 박 대표는 “케이콘텐츠를 제공하는 다양한 플랫폼이 있어야 비싸게 팔 수 있다. 콘텐츠를 사려는 사람이 여럿이 돼야 가격이 올라가기 때문이다. 케이콘텐츠를 사줄 다른 플랫폼이 없으면 넷플릭스는 비싼 돈을 내려 하지 않을 것이다. 플랫폼이 버티고 있어야 케이콘텐츠가 제값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넷플릭스에 더해 디즈니플러스·애플티브이플러스 등 여러 글로벌 오티티들이 케이콘텐츠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가운데 한국 업체들이 운영하는 플랫폼의 경쟁력을 키워야 케이콘텐츠의 몸값이 더 치솟을 거란 얘기다.

로스앤젤레스/정혁준 기자 ju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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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1월23일 미국 로스앤젤레스 사무실에서 박근희 웨이브 아메리카스 대표가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로스앤젤레스/정혁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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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디즈니처럼? 그럼 우린 망하는 거죠”

[박근희 웨이브 아메리카스 대표 인터뷰]

“넷플릭스와 경쟁할 생각을 하면 안 됩니다.”

지난해 11월23일 미국 로스앤젤레스 사무실에서 만난 박근희 웨이브 아메리카스 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넷플릭스가 그 정도로 강해 도전감을 잃어버린 것일까? 그런 게 아니었다. “넷플릭스가 성장하니까 모두가 넷플릭스 얘기만 해요. 왜 우리는 넷플릭스가 없냐고 얘기를 하죠. 하지만 넷플릭스와 같은 전략을 써서는 그들을 이길 수 없습니다.”

박 대표는 예를 들었다. “디즈니(월트 디즈니 컴퍼니)가 미키마우스 지식재산권(IP)을 갖고 캐릭터 사업을 잘하는 걸 보고 따라 하면 될까요? 캐릭터 아이피가 제대로 없고 브랜드 아이덴티티가 없는데 디즈니처럼 사업을 하겠다고 하면 망하는 거죠.”

그는 설명을 이어갔다. “넷플릭스를 롤모델로 삼기엔 이미 늦었습니다. 그들은 고유의 비즈니스 모델이 있죠. 후발 주자는 선발 주자와는 다른 비즈니스 모델로 시장에 도전해야 합니다.”

그는 다시 디즈니 예를 들었다. “디즈니는 그들의 아이피를 활용해 엄청난 수익을 올리고 있죠. 하지만 케이(K)콘텐츠는 오랫동안 그런 아이피가 많지 않았습니다. 미국인들이 한국 콘텐츠를 시청한 경험도 없는데 한국 아이피를 활용한 비즈니스가 될 리가 없었죠.” 하지만 지금은 달라졌다고 했다. <기생충> <오징어 게임> 등이 미국에서 인기를 끌면서 많은 미국인이 케이콘텐츠를 경험하고 있기 때문이다.

박 대표는 “지난해 9월 <오징어 게임>이 선풍적인 인기를 끈 후 미국에서 한국 콘텐츠 소비 패턴이 유의미하게 변화했다”고 했다. “더 많은 케이콘텐츠를 보려는 시청자가 늘어난 거였죠. 엠비시(MBC) 드라마 <검은 태양>과 에스비에스(SBS) <펜트하우스> 등 장르물 시청 순위가 급상승했어요.” 그는 이어 말했다. “‘케이콘텐츠 장르는 로맨틱 코미디’라는 선입견을 짧은 시간에 바꿔놓았습니다.”

그는 마지막으로 이런 말을 했다. “케이콘텐츠 경험을 확대하는 것, 이건 케이콘텐츠 플랫폼 회사들이 놓치면 안 된다고 봅니다. 케이콘텐츠 트래픽을 꾸준히 높여나가야 케이콘텐츠에 더 많은 투자를 이끌어낼 수 있고, 그 트래픽을 잘 이끌고 가야 케이콘텐츠 중심의 지속가능한 플랫폼으로 성장시킬 수 있습니다.”

로스앤젤레스/정혁준 기자 ju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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