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2.19 (목)

이슈 '오미크론' 변이 확산

오미크론용 백신 출시 초읽기… 빈국은 또 ‘패싱’당하나

댓글 4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화이자 변이용 백신 3월 말 1억 회분 출시
글로벌 쟁탈전에 백신 불평등 심화 우려
한국일보

코로나19 오미크론 변이가 확산한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에서 지난달 14일 주민들이 이동 접종소 앞에서 접종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케이프타운=AP 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전 세계를 강타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오미크론 변이에 맞서 글로벌 제약업계가 변이 맞춤형 백신 개발을 서두르고 있다. 일부 제약사는 완성품 출시 초읽기에 들어갔다. 그러나 가난한 나라들에는 ‘그림의 떡’이다. 부국들이 또 싹쓸이할 게 뻔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기존 제조 시설이 변이용 백신 생산에 할당되면, 빈국으로 가야 할 백신 물량은 그만큼 줄어들게 된다. 가뜩이나 심각한 ‘백신 불평등 문제’가 더욱 악화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11일(현지시간) 미국 일간 워싱턴포스트는 “화이자가 올해 3월 말, 4월 초 오미크론 변이용 백신을 5,000만~1억 회 공급할 계획”이라고 보도했다. 화이자는 “합성 DNA 단백질 제조 기술을 보유한 합성생물학회사 ‘코덱스 DNA’와의 협업을 통해 백신 개발 기간을 기존 90일에서 60일로 단축했다”고 설명했다.

앨버트 뷸라 화이자 최고경영자(CEO)도 전날 투자은행 JP모건 주최 보건 콘퍼런스에 참석해 “오미크론 변이용 백신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화이자는 즉시 준비할 것”이라며 “이미 대규모 제조 시설을 구축해 뒀기 때문에 생산 공정을 전환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화이자는 지난해 코로나19 백신 30억 회분을 생산했고 올해는 40억 회분을 공급할 계획이다.

모더나도 조만간 오미크론 변이용 백신 임상시험에 착수한다. 스테판 방셀 모더나 CEO는 같은 콘퍼런스에서 “올겨울 감염자 급증에 대비해 가을까지 오미크론 변이용 백신을 출시하려고 한다”고 밝혔다. 아울러 코로나19 백신과 독감 백신을 혼합한 ‘하이브리드 백신’, 1회만 접종하는 백신도 실험하는 중이라고 소개했다.

보건 전문가들은 “다양한 백신을 보유하면 감염병 대응에 유리할 것”이라면서도, 현 시점에서 오미크론 변이용 백신의 효용성에 대해서는 회의적 견해를 내비치고 있다. 이미 세계적 우세종이 됐기 때문에 백신으로 예방하기에는 늦었다는 것이다. 미국만 해도 이달 초 신규 확진자 95%가 오미크론 변이 감염이었다. 숀 트루러브 존스홉킨스대 감염병학 교수는 “변이가 얼마나 빨리 확산하는지 고려하면 특정 변이에 표적화된 백신은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고 미국 CNBC방송에 말했다.

오미크론 변이용 백신이 되레 팬데믹 종식을 늦추는 역효과를 불러올 거라는 비관적 전망도 나온다. 한정된 물량을 놓고 글로벌 쟁탈전이 벌어지면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빈국들은 뒷전으로 밀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백신 없이 무방비로 감염병에 노출된 빈국에서 오미크론 변이가 발생했듯, 백신 불평등이 또 다른 변이 출현과 전 세계적 확산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재연될 거란 얘기다. 기존 제조 시설이 변이용 백신 생산으로 전환될 경우, 빈국이 기존 백신을 확보하기는 더욱 어려워진다. 의료조사업체 에어피니티는 중국을 포함해 주요 백신 제조사들이 시설 50%를 변이용으로 변경하면 내년 상반기 백신 생산량이 86만 개에서 52만 개로 감소할 것으로 추정했다.

지금도 백신 양극화는 도통 해소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미국과 유럽은 완전 접종률 70~80%를 넘기며 진작에 3차 접종을 시작했고 심지어 이스라엘은 고령층 대상으로 4차 접종까지 하고 있지만, 아프리카 나라들에는 아직 한 번도 백신을 맞지 못한 사람이 숱하다. 존스홉킨스대 통계에 따르면, 최근 일주일간 미국에서 백신 접종 건수는 10만 명당 15만7,000회에 달한 반면, 카메룬에선 고작 3,508회에 그쳤다. 세계보건기구(WHO) 자료에서도 아프리카는 완전 접종률이 에티오피아 3.5%, 탄자니아 2.3%, 케나 8.4%, 소말리아 5.1%, 나이지리아 2.3% 등 대부분 한 자릿수를 맴돈다. 그러나 화이자와 모더나는 백신 제조 기술을 공개하라는 요구도 완강히 거부하고 있다.

존 그라벤스타인 예방접종실천연합 과학이사는 “현재 생산 수준까지 도달하는 데 1년이 걸렸고, 이제야 전 세계가 매달 수억 회분을 접종하고 있다”며 “그 놀라운 속도에도 아프리카엔 백신이 충분히 공급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오미크론 변이용 백신이 현재 제조 공정에 차질을 빚고 글로벌 백신 이기주의를 악화시키는 위험을 감수할 정도로 가치가 있는지 의문”이라고 꼬집었다.

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