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퀴가 달린 노란색 장바구니를 끌고 온 백모(72)씨가 10일 오전 서울 신촌의 한 대형마트 입구에서 직원에게 간절한 목소리로 말했다. 백씨는 “3차 접종까지 다 했는데 하필 오늘 주민등록증과 휴대폰을 안 들고 나왔다”며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QR코드를 체크하던 직원은 “17일부터 과태료가 부과되니까 방역패스를 꼭 지참해주세요”라고 당부했다.
백화점과 대형마트에서 코로나19 방역패스를 적용한 첫날, 생필품을 사러 온 시민들이 방역패스 인증에 어려움을 겪는 등 곳곳에서 혼란스러운 상황이 잇따랐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따르면 이날부터 방역패스(접종증명·음성확인제) 의무 적용 대상에 면적 3000㎡ 이상의 쇼핑몰과 백화점, 마트 등 대규모 상점이 추가된다. 오는 16일까지 일주일간 계도기간으로 운영되며, 17일부터는 개인에게 위반 횟수별로 10만원씩 과태료가 부과된다.
━
“방역안내”스피커 설치…방역패스 첫날 “불편하다” 반응
10일 오전 서울 신촌의 한 대형마트에 설치된 카세트 테이프 겸 스피커. 여기에서 방역패스 정책에 협조해 줄 것을 당부하는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함민정 기자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서울 신촌의 한 대형마트는 이날 오전 입구에 스피커를 설치했다. 스피커에서는 “방역패스 의무화로 고객 여러분들의 협조를 부탁드린다”는 음성 안내문이 흘러나왔다. 입구에서 QR코드 인증에 시간이 걸리자 줄을 서는 장면도 포착됐다. 바로 통과되는 경우도 있었으나 유효기간이 지난 방역패스 등 인증에 실패할 때 나오는 ‘딩동’ 소리도 자주 났다.
“업데이트했는데 왜 이러지?”“부스터 샷 맞은 지 열흘 지났는데 갑자기 안 된다”며 당황스럽다는 시민들의 반응이 적지 않았다. 생필품을 사러 온 김모(43)씨는 “마트에서까지 인증하려니 불편하다. 사정이 있어 못 맞는 사람도 있는데 이용하지 말라는 건가”라고 말했다. 신촌 주민 전모(73)씨도 “정보가 유출될까 봐 온라인 쇼핑몰을 이용하기 무서워 직접 장을 본다. 노인들이 살기 힘들다”고 했다.
10일 오전 서울 합정의 한 대형마트를 찾은 시민 양모(53)씨는 QR코드 인증에 불편함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함민정 기자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합정의 한 대형마트 입구에서 만난 양모(53)씨는 QR코드 인증기기 앞에서 5분가량 휴대폰과 실랑이를 벌였다. 그는 “휴대폰이 남편 명의로 돼 있어 본인 인증이 안 된다. 접종 증명서를 보여주는데 매번 인증하는 게 불편하다”고 했다. 잡곡과 과일 등을 사러 온 권희재(78)씨도 “QR코드를 어떻게 하는 건지 모른다”며 “나이 먹은 사람들은 복잡하다. 전화로만 인증을 해왔는데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걱정”이라고 한숨을 쉬었다.
현장에서 방역패스 인증에 어려움을 겪는 이들을 살펴보니 50~70대가 대다수였다. 이들은 휴대폰을 서너 차례 흔들며 QR코드 인증을 하려 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한 대형마트 직원 A씨는 “연세가 많으신 분들께서 QR코드 인증을 못 하시는 경우가 많다. 일일이 도와드려야 해 시간이 배로 걸린다”고 했다.
외국인 등 소통에 어려움을 겪는 이들도 눈에 띄었다. 대형마트를 찾은 한 여성 외국인은 방역패스를 보여달라는 요청에 알아듣기 어렵다는 반응을 보였다. 대화가 통하지 않자 명부만 작성한 뒤 입장했다. 한편 이날 신촌의 한 백화점의 경우 QR코드 인증이 대형마트에 비해 비교적 수월하게 이뤄졌다. 이 백화점 직원 B씨는 “아직 항의하는 분이나 큰 혼선은 없었다”고 했다.
━
방역패스 집행정지 신청, 이르면 이번 주 법원 결정
방역패스 적용 시설 현황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
이날부터 대형마트와 백화점 이용자들은 QR코드 등으로 백신 접종 완료 사실을 인증하거나 보건소에서 받은 PCR 음성확인서(음성 결과 통보 후 48시간이 되는 날의 자정까지 유효)를 보여줘야 한다. 코로나19 완치자나 중대한 백신 이상반응 등 의학적 이유로 인한 방역패스 적용예외자는 격리해제 확인서나 예외 확인서를 구비해야 한다. 판매사원 등 종사자는 접종 여부와 상관없이 일할 수 있다.
앞서 법원은 학원·독서실·스터디 카페 등 교육시설에 방역패스를 적용하겠다는 정부의 조치에 대해 효력정지를 결정했다. 아울러 의대 교수 등 1023명이 제기한 식당, 카페 등 다중이용시설 17종에 대한 시설 집행정지 신청과 관련해 이르면 이번주 법원의 결정이 나올 예정이다. 해당 신청이 법원에서 받아들이면 본안 소송 판결이 나올 때까지 마트, 식당 등 대부분의 시설에서 방역패스 효력이 정지될 수 있다.
▶ 중앙일보 '홈페이지' / '페이스북' 친구추가
▶ 넌 뉴스를 찾아봐? 난 뉴스가 찾아와!
ⓒ중앙일보(https://www.joongang.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