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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원에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홍콩인 여러분 건강하세요. 인연이 있으면 다시 만날 것입니다."
지난해 6월 홍콩의 반중국 성향 매체 '빈과일보(蘋果日報, 애플데일리)'의 온라인 TV 앵커가 마지막 뉴스를 전하면서 한 말입니다. 이어 빈과일보의 인터넷, 신문은 운영을 중단했습니다. 그리고 약 반년 뒤인 어제(2일) 홍콩의 민주진영 온라인 매체 '중신문(眾新聞, 시티즌뉴스)'이 폐간을 선언했습니다. 중신문은 성명에서 "4일부터 운영을 중단한다"며 "독자 여러분의 성원에 감사드리며, 여러분의 사랑을 마음에 간직하겠다"고 전했습니다. 중신문의 폐간 발표는 홍콩 또 다른 민주진영 매체 '입장신문(立場新聞, 스탠드뉴스)'이 폐간한 지 나흘 만에 나온 것이기도 합니다.
중신문의 폐간 발표 성명 이미지 |
"회오리바람과 거센 파도에 직면"
중신문은 지난 2017년 1월 크리스 융 전 홍콩기자협회장 등이 창간한 홍콩 민주진영 온라인 매체입니다. 처음에는 10명의 소규모로 출발했지만, 5년 동안 직원이 수십 명으로 늘어났습니다. 2019년 '범죄인 인도 법안' 시위가 한창일 때, 중신문은 입장신문 등과 함께 시위 현장을 생중계하며 경찰의 무력 진압을 비판했습니다. 코로나 사태 이후 홍콩 경찰이 방역 명분까지 앞세우며 단속을 강화했지만, 중신문은 작은 시위들까지 취재하고 생중계하며 홍콩 시민과 해외에 홍콩 상황을 전파했습니다.
하지만 중신문도 국가보안법이란 칼을 든 정부의 압박을 견뎌내지 못했습니다. 지난달 29일 입장신문이 전·현직 간부들의 체포와 압수수색, 자산 동결 등의 조치로 사실상 폐간당하는 모습은 다음이 자신들의 차례라는 것을 직감하게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홍콩 경찰이 밝힌 입장신문의 혐의는 사법부를 포함해 홍콩 당국에 대한 증오를 선동하는 기사를 보도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중신문은 폐간 성명에서 "우리는 언제나 이 땅을 사랑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것은 비바람이 아니라 회오리바람과 거센 파도"라며 "지난 2년 동안 사회의 급박한 변화와 미디어 생존 환경 악화는 걱정 없이 우리의 이념을 달성하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고 말했습니다.
폐간 배경을 설명하는 크리스 융 중신문 설립자 (우측)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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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대포'와 '문자의 옥'
지난 2019년 6월 홍콩의 국회 격인 입법회와 정부 청사 앞에서 '범죄인 인도 법안' 반대 시위가 벌어졌습니다. 최루탄과 벽돌이 날아다녔고, 시위대와 경찰이 부상을 입었습니다. 저를 포함한 SBS 취재진은 첫 시위 현장 취재 때 기자임을 보여줄 장비가 제대로 없어 경찰의 곤봉 공격을 받기도 했지만, 이후 로고가 있는 조끼와 헬멧을 착용한 뒤에는 큰 위험 없이 취재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시위대가 입법회와 공항, 대학 점거에 나서면서 시위가 더욱 격렬하게 변하고, 중국 중앙정부가 강경 대응 방침을 천명하면서 홍콩 경찰의 기자들에 대한 태도도 달라졌습니다. 2019년 11월 홍콩 이공대 점거 시위 취재 당시 학교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지를 묻는 취재진에게 홍콩 경찰은 시위 진압용 총기를 겨누면서 위협했고, 도심 게릴라 시위를 취재 때는 곤봉을 든 경찰에 둘러싸이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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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국가보안법이 시행된 이후 상황은 더욱 긴박하게 변했습니다. 국가보안법이 시행된 첫날인 지난해 7월 1일 오후, 시위를 취재하던 기자들에게 물대포가 발사됐습니다. 'PRESS'라고 써진 형광색 조끼를 입고 있던 사람들은 강한 물줄기에 몇 미터를 날아가고, 바닥에 내동댕이쳐졌습니다. 국가보안법 이후 홍콩의 언론 상황을 예고하는 듯한 사건에 아시아기자협회 등 언론단체들은 "홍콩 시민권과 언론 자유 침해하는 홍콩 국가보안법에 깊이 우려한다"는 성명을 일제히 발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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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지난해 6월 빈과신문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를 받으며 폐간됐습니다. 그 직후 입장신문은 "홍콩에 문자의 옥(文字獄)이 왔기 때문에 모든 후원자와 저자, 편집자 등을 보호하겠다"며 모든 칼럼을 내리고 후원금 모집도 중단했습니다. 문자의 옥은 과거 중국에서 문서에 적힌 내용이 황제나 체제를 비판한다는 이유로 필자를 처벌한 숙청 방식으로, 지식인에 대한 탄압을 뜻합니다. 당국의 타깃에서 벗어나기 위해 선제 조치를 취했던 것이지만 결국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폐간을 맞이해야만 했습니다.
"언론의 자유는 국가 안보 넘을 수 없어"
중국 정부는 언론의 자유가 국가 안보와 법률 준수보다 앞설 수 없다며 민주진영 매체의 폐간을 정당화하고 있습니다. 입장신문의 폐간에 대해 중국 외교부 자오리젠 대변인은 "언론의 자유는 범죄 행위의 방패가 될 수는 없다"고 밝혔습니다. 앞서 빈과일보 폐간 때에는 "언론의 자유를 포함한 모든 권리와 자유는 국가안보를 넘어설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중국 관영매체 영자지인 글로벌타임스는 중신문의 폐간을 보도하면서 민주진영 매체에 대한 더 강력한 규제를 주장했습니다 글로벌타임스는 "중신문이 중국 공산당을 독재라고 하며 홍콩 정부를 통제하기 위해 권력을 남용했다고 보도하는 등 중국 정부와 공산당을 비판한 사실이 있다"며 홍콩 언론이 언론의 자유를 명분으로 반중 정치 도구가 되지 않도록 더 규제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홍콩 이공대 국기 게양식 (사진출처 : 글로벌타임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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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분위기 속에 홍콩 언론들은 자기 검열에 나서고 있고, 교수 등 학자들도 칼럼 게재를 중단하고 있습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광범위한 내용의 홍콩 국가보안법이 언론에 자유롭게 견해를 밝히고 정기적으로 칼럼을 게재해온 학자들에게 두려움을 안기고 있다"며 "많은 학자들은 어느 날 자신들을 향해 홍콩 보안법이 어떻게 활용될 지에 대한 불확실성과 우려가 공유되고 있다고 말한다"고 전했습니다.
홍콩 정부의 다음 언론 타깃은 홍콩기자협회(HKJA) 일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는 가운데, 지난 1일에는 홍콩 이공대에서 중국 국기인 오성홍기 게양식이 열렸습니다. 이공대는 2019년 범죄인 인도 법안 반대 시위 당시 시위대가 끝까지 경찰과 격렬하게 대치했던 곳입니다. 홍콩에서는 이제 2019년의 모습을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사회 안정'과 '중국 본토와 홍콩의 조화'라는 중국의 자기 평가와 '홍콩의 중국화', '다양성과 견제가 사라진 침묵'이라는 비판 속에 홍콩의 모습은 앞으로 어떻게 달라질지 궁금합니다.
송욱 기자(songxu@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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