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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김계연 기자 = 마크 헤이머는 영국에 사는 노년의 시인이자 정원사다. 잔디를 깎고 울타리를 손질하다가 겨울에는 두더지 사냥으로 생계를 유지한다. 그는 어릴 때부터 채식주의자로 살아왔고 살생을 즐기지 않았다. 두더지 잡는 일을 시작하면서 그는 효율적이고 무심하고 빠르고 기술적인 방법을 찾아야 했다.
마크 헤이머의 책 '두더지 잡기'(카라칼)는 겉보기에 두더지 사냥의 경험과 단상을 기록한 책이다. 책을 읽으면 두더지의 수많은 종류와 독특한 습성을 알게 된다. 두더지는 친숙하게 느껴지는 동물이다. 그러나 두더지가 앞을 거의 보지 못하고, 절대로 무리지어 다니지 않으며, 좋아하지 않는 무언가와 마주치면 땅 위로 밀어올리거나 굴을 막아 문젯거리를 피해간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두더지는 은둔하며 우회하는 생존기술의 귀재다.
"경계심을 품은 두더지가 이 모든 사건을 일탈적인 일로, 잠시 찾아왔다가 사라지는 위협으로 여겼으면 좋겠다. 녀석이 느긋한 시간을 보내며 긴장을 좀 풀기를 바란다."
두더지의 은신처를 찾아 덫을 설치하고 가만히 기다리는 모습을 상상하며 이야기를 듣다 보면 어느새 저자의 삶과 마주하게 된다. 저자는 시적이고 담담한 문체로 속 얘기를 끄집어낸다. 그는 열여섯 살 때 어머니를 잃고 아버지의 반강제적 권유로 집을 나와 숲에서, 부둣가에서, 생울타리 아래에서 부랑자 생활을 했다. 자연 속에서 쉬지 않고 걸은 이때의 경험은 그의 남은 생애를 방향지었다. 그는 자연과 교감하지 않았고, 스스로 자연이었다고 말한다.
조용하고 고독하며 묵묵히 제 일을 하는 저자의 인생 궤적은 종종 두더지의 삶과 겹친다. 그런 저자에게 두더지 사냥으로 생계를 이어나가는 건 모순이었다. 일을 그만두기로 마음먹고 마지막 사냥을 마친 저자는 이렇게 쓴다.
"날은 어두워지고 있지만 나는 밝은 빛을 느낀다. 마치 이 순간을 지금껏 기다려오기라도 한 것처럼. (중략) 그리고 살생을 정당화하고자 스스로 몸부림을 치던 기억과, 또 이전에 언젠가 이 일이 과연 내가 할 수 있는 일인지, 이 일을 하면 내가 어떤 종류의 인간인지 더 잘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는지 궁금해했던 기억을 떠올린다."
황유원 옮김. 288쪽. 1만7천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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