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테슬라를 비롯한 해외 완성차 업체로부터 배터리 수주를 따내고 원재료 공급망을 장악하는 등 전 세계 전기차 시장에서의 영향력을 넓히고 있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
중국이 테슬라를 비롯한 해외 완성차 업체로부터 배터리 수주를 따내고 원재료 공급망을 장악하는 등 전 세계 전기차 시장에서의 영향력을 넓히고 있다. 배터리 원재료 가격이 올해만 2~5배 오른 상황에서 중국의 가격 갑질을 우려하는 목소리와 함께 국내 배터리 업체들의 대응책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28일 업계에 따르면 테슬라, 메르세데스-벤츠 등이 중국 내수용, 소형 전기차용으로 주로 쓰이던 LFP 배터리 수주를 요청했다. 이에 따라 그간 LFP 배터리 생산에 집중하던 중국이 시장에서 발을 넓히고 있다. 반면 국내 배터리 업체들은 상대적으로 값이 비싼 NCM(니켈코발트망간) 배터리에 집중해 가격 경쟁력이 뒤떨어지는데다 원재료인 리튬, 흑연 등의 공급망을 중국이 장악하고 있어 지속적인 '가격 갑질'에 휘둘릴 여지도 있다.
◆ 갈수록 커지는 LFP 영향력
LFP 배터리가 북미 시장에서 핫한 키워드로 떠올랐다.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가 이달 23일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테슬라는 내년 생산할 전기차에 탑재하기 위해 55기가와트시(GWh) 규모의 LFP 배터리를 중국 배터리 제조업체 CATL과 BYD에 전량 수주했다. 테슬라의 모델3를 100만 대 생산할 수 있는 규모다. 이보다 규모는 작지만, CATL은 피스커, 피닉스 모터카즈, 라이트닝 e모터스 등 북미의 상용 전기차 제조사들과도 배터리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 독일의 자동차 회사 메르세데스-벤츠도 2024년부터 소형, 준중형 전기차의 배터리를 LFP 배터리로 교체하겠다고 발표했고 포드, 폭스바겐, 다임러 등도 LFP 배터리 도입을 검토하는 등 LFP 배터리에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업계에서는 LFP 배터리 수요가 증가한 이유를 안정성과 저렴한 가격으로 보고 있다. LFP 배터리는 다른 리튬이온 배터리에 비해 주폭발 위험성이 적고 코발트 등 비싼 재료가 들어가지 않아 저렴하다. 주행거리가 상대적으로 짧다는 건 단점이지만, 중국 정부가 자국 기업들에 '안정성'을 강조하며 개발을 독려한 끝에 성능이 개선됐고 향후 전기차 배터리 충전소가 늘어나면 해결되는 문제라는 의견이다.
이에 따라 전기차 시장에서 중국 배터리 업체 영향력도 확대되고 있다. SNE리서치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중국 시장을 제외한 해외 배터리 사용량 점유율은 CATL이 지난해 1~10월 6.2%였으나 올해 1~10월엔 12.5%로 2배 가까이 성장했다. 반면 국내 배터리 3사 중 LG에너지솔루션은 30.2%에서 36.2%, SK온은 9.9%에서 11.1%로 다소 상승했으나 성장폭이 좁았고 삼성SDI는 10.3%에서 8.9%로 오히려 감소했다.
해외 전기차 업체들의 러브콜에 이어지자 중국 배터리 업체는 생산 규모 확대와 해외 시장 진출에 집중하고 있다. CATL은 최근 푸젠성 닝더시에 120기가와트시 규모의 배터리 공장을 짓고 이달 21일 가동을 시작했다. 또 독일 튀링겐 주에 약 2조 원을 투자해 지은 첫 해외 공장이 연말 가동을 시작하면 유럽에 공장을 증설할 계획이다. 중국 현지 언론에 따르면 CATL은 폴란드 서부의 야보르, 고주프 비엘코플스키 2곳을 시찰하며 부지를 물색했다.
SNE리서치는 "중국은 기술력 보다는 원자재 의존도가 높은 LFP 배터리를 국가주도 산업으로 해 발전시키고 있다"며 "LFP 배터리 생산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CATL과 BYD에 수주물량을 계약 함으로써 LFP 시장은 한동안 급성장 할 것으로 예측된다"고 말했다.
◆ 원재료 장악한 중국, 리튬 가격 작년의 5배
중국은 전기차 배터리의 필수 원료인 리튬, 코발트, 니켈 등 광물 공급망을 장악하고 있다. 중국 광물 업체들은 남미, 호주 등에서 광물을 싸게 들여와 1차 가공을 거쳐 화합물로 만든 후 전 세계에 납품하고 있다. 리튬의 경우 전 세계 리튬의 절반 이상은 볼리비아, 칠레 등에 매장돼 있고 중국 내 매장량은 10%가 채 안 되지만, 리튬 화합물을 가장 많이 생산하는 국가는 중국이다.
문제는 가공 과정에서 붙는 비싼 프리미엄이다. 중국 가공 업체들은 원재료인 리튬, 코발트 등 화합물 가격을 대폭 올리고 있다. 리튬 가격은 28일 기준 kg당 262위안(약 4만9000원)으로 작년 말 가격인 48위안(약 9000원)의 약 5배가 됐다. 코발트는 27일 기준 kg당 71달러(약 8만4000원)로 작년 말 가격인 33달러(약 3만9000원)의 2배가 넘었다.
음극재의 핵심소재인 흑연 역시 현재 중국이 전 세계 흑연 생산량의 70%를 차지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최근 흑연 수요가 크게 늘어나는 가운데 중국의 흑연 의존도가 99%인 한국이 흑연판 '요소수 사태'가 재발할 수도 있다고 보고 있다. 중국이 자국 내 배터리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흑연 수출을 제한하거나 가격을 크게 올릴 경우 전기차와 배터리업계는 치명상을 입을 수 있기 때문이다.
로이터통신은 이달 15일(현지시간) 지난해 전 세계 흑연 공급량이 수요량보다 2만 톤 앞섰으나 내년에는 반대로 수요가 공급을 2만 톤 앞설 것이라고 보도했다. 현재 자국 기업인 CATL 조차 흑연 공급에 사활을 걸고 있는 상태라 실현 가능성이 적지 않다.
◆ 의존도 낮추고 대책 찾아야
업계에서는 국내 배터리 기업도 LFP 배터리를 개발해 생산 라인의 다각화를 노리고 중국의 '갑질'에 시달리지 않기 위해 중국 의존도를 점차 낮춰야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하지만 국내 배터리 3사가 LFP 배터리를 개발한다는 공식 발표는 아직 없고, 여전히 NCM 배터리 품질 향상에 주력하고 있다. 다만 폐배터리를 재활용해 코발트, 니켈, 리튬 등을 회수하는 사업에 투자하며 원재료의 중국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LG화학과 자회사인 LG에너지솔루션은 이달 15일 북미 최대 배터리 재활용 업체인 '라이-사이클'에 총 900억 원을 투자해 2.6%의 지분을 확보했다고, SK이노베이션 올해 말 BMR(Battery Metal Recycle) 대전 환경과학연구원에 데모 공장을 짓고 내년부터 가동한다고 밝혔다. 삼성SDI는 2019년 폐배터리 재사용 전문기업인 피엠그로우에 지분을 투자하고 를 하는 등 전문 업체와의 협력을 통해 배터리 재활용 방안을 검토 중이다.
[김우현 매경닷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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