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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정길 목사 “지도자 뽑을 땐 말보다 삶을 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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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담집 ‘나라와 교회를 생각한다’ 내용 발췌 소개

조선일보

홍정길 남서울은혜교회 원로목사가 지난 21일 밀알복지재단에서 본지와 인터뷰하고 있다. / 장련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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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정길 남서울은혜교회 원로목사가 최종상 선교사와 함께 대담한 ‘나라와 교회를 생각한다’ 내용은 묵직하다. “80세를 맞아 우리나라가 얼마나 하나님 은총을 받았는가를 기록하고 싶었다”는 홍 목사의 말처럼 작심하고 현 사회와 정치, 개신교계에 대해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았다. 주요 내용을 발췌 소개한다.

조선일보

홍정길 목사와 최종상 선교사의 대담을 정리한 '나라와 교회를 생각한다'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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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자유민주주의

“자유야말로 하나님이 인류에게 주시는 최대의 선물입니다. 지금 우리는 자유를 맘껏 누리는 행운의 시대에 살고 있어요. 우리가 여기까지 오는 데는 수많은 사건과 엄청난 희생이 있었습니다. 그 희생을 하나님이 불쌍히 여기셔서 자유 민주주의 체제 아래서 아름다운 개인의 자유를 향유하도록 축복해 주신 덕분에 우리가 지금 누리며 살고 있는 것입니다.”(32쪽)

“우리 후손에게 삼성은 못 물려준다고 할지라도 자유는 물려줘야 합니다. 자유 속에 삼성이 있고, 자유 속에 김우중씨가 있었고, 자유 속에 정주영씨가 있었습니다. 그들에게 족쇄를 채워 놓았다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정치적으로 진정한 자유를 누리게 한다는 것은 개개인이 인간답게 살고 잠재력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주는 것을 의미합니다. 자유는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을 드러낼 수 있는 유일한 바탕입니다.”(38쪽)

“이승만 대통령을 독재자로 부르는 사람들이 많지만, 그는 ‘불의를 보고 일어나지 못하는 민족은 죽은 민족’이라며 4·19 혁명 당시 학생들의 궐기를 높이 평가했고, 모든 책임을 지고 열흘도 안 되어 기꺼이 하야했습니다. 어느 지도자가 이처럼 쉽게 물러났던 적이 있습니까? 지팡이 하나만 짚고 경무대에서 물러났던 그 하야 길이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진정한 시작이었다고 생각합니다.”(42쪽)

◇죽창가

“2019년 여름에 조국 민정수석이 SNS에서 ‘죽창가’를 추억하여 논란이 된 적이 있습니다. 죽창은 우리 역사에서 가장 치욕스러운 패전의 상징이에요. 죽창을 들고 일본군 200명에 맞섰던 동학군 2만명이 몰살당한 사건을 떠올리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죽창가’를 부르자는 소리를 들었을 때, 화가 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기억하라’라는 제목으로 설교하면서, 우금치에서 죽창을 든 동학군 2만명이 총을 가진 일본군 200명에게 몰살당했는데, 그 전투를 또 하잔 말이냐고 물었습니다. 영화 한 편 보고나서 탈원전 정책을 실행한다고 하더니 드라마 한 편 보고 나서 죽창을 들자고 하다니 어처구니가 없었습니다.

우리는 이 모든 것을 몸으로 겪은 세대입니다. 단순히 말만 듣지 말고, 실제인가 살펴봐야 합니다. 그래서 지도자를 뽑을 때, 그들이 이전에 어떤 삶을 살았는가를 보고 투표하라고 말하고 싶어요. 실제가 없는데 말만 하는 것은 듣지 말아야 해요. 실제가 없는 말은 사기일 뿐입니다.”(49~50쪽)

◇박근혜·문재인 대통령에게 편지를 보내다

“촛불 시위 현장에 중·고등학생들도 많이 나왔는데, 슬로건이 ‘이게 나라냐?’였어요. 역사를 배우고 나라의 존귀함을 알아가야 할 시기에 청소년들이 ‘이게 나라냐’로부터 시작해서야 되겠느냐는 말이에요. 그래서 고민하다가 박근혜 대통령에게 ‘당신, 이렇게 하려면 하야하시는 게 좋겠다’고 개인적으로 편지를 드렸습니다.

일주일 동안 아주 고심해서 썼습니다. 사람들은 제가 하야를 종용한 것만 기억하겠지만, 사실 길게 쓴 그 편지에는 박정희 대통령의 업적까지 들며 그 상황에서는 하야가 최선임을 증언하는 내용이 담겨 있었습니다. 탄핵을 추진한다는 소식이 파다했는데 탄핵보다는 하야가 박 대통령을 위해서나 우리나라를 위해서 더 낫다고 생각했습니다.”(56쪽)

“하루는 어느 헌법재판관을 만났는데, 나라가 큰일 났다고 그래요. ‘지금 정권에서 헌법 전문에 명시되어 있는 자유 민주주의에서 자유를 떼어 내려고 한다’는 거예요.(...) 며칠 후 TV토론을 관심 있게 보는데, 청와대 고위 관계자가 ‘지금까지 자유를 많이 이야기해 왔으니까 이제는 평등을 이야기할 때’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다급한 생각이 들었어요. ‘이건 아니지!’ 한 2주 정도 고민하다가 문재인 대통령에게 편지를 썼어요. 박근혜 대통령에게 쓴 것과 똑 같은 톤으로 정중히 써서 보냈어요. 박 대통령은 그걸 안 받아들여 결국 탄핵으로 내몰렸는데, 문 대통령은 편지 보낸 지 열흘쯤 후에 헌법 전문의 ‘자유 민주주의’에서 ‘자유’를 빼지 말라고 직접 지시했더라고요.”

◇여야 정치인에 대한 당부

“보수 정치인들이여, 당신들이 왜 그렇게 무지막지하게. 이처럼 창피하게 무너졌는가를 낱낱이 짚어서 회개하십시오. 과거 권위주의 정부 시절의 과오에 대한 깊은 고민 없이 오로지 경제 발전의 열매를 따 먹는 데 열심이었던 과거를 회개하십시오. 그러지 않는 한 여러분이 정권을 다시 장악한다고 할지라도 똑 같은 잘못을 반복할 것입니다.

진보 정치인들이여, 당신들이 보수 측을 비판했던 그 비판을 문자 하나 틀리지 않게 그대로 되풀이하고 있으니, 그 잘못을 회개하고 돌이키세요. 자기 잘못을 덮기 위해 역설로 변명하고, 호도하려고 들고, 증거를 없애고, 자기에게 유리한 법을 만들려고 밀어붙이고, 언론의 입을 틀어막으려는 시도를 멈추십시오.

또 여야 정치인 모두에게 부탁드립니다. 우리는 자유 민주주의 체제를 유지·발전시키고, 경제 발전은 가속화하고, 고상한 정신 문화를 함양하여 후손에게 자랑스러운 나라를 물려주어야 합니다.”(62쪽)

◇교회의 회복

“우리는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서 칭송을 받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우리가 이중적이라고 멸시와 천대를 받는 이유는 말은 잘하는데 삶이 따라 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불신자들이 ‘너희가 기껏 해 봐야 술 안 마시고, 담배 안 피우는 것 외에 무엇이 우리와 다르냐?’고 우리를 비난합니다. 이런 비난은 앞으로도 계속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세상과 구분되어서 좀 다른 모습을 보여 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137~138쪽)

“저를 포함해서 목회자들이 하나님 말씀을 받을 때에는 좋은 생각으로 받아요. 그런데 그 말씀을 행동으로 옮겨 순종하려면 대가를 치러야 하는데, 그걸 잘 못 해요. 그러니까 실제로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 것이지요. 살아있는 본을 보이지 못하면 생명이 전달되지 않는 것 같아요. 하나님은 우리더러 이해하고 끝내라고 하지 않으시고, 그 속에 거하라고 하셨습니다. 삶이 뒤따르지 않으면 목회자의 말은 허구일 뿐입니다. 그 한 예로, 돈에 대해 초연할 자신이 없으면 목사를 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왜냐하면 돈은 하나님도 질투할 만큼 사람들에게 큰 영향을 끼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재물을 동시에 섬길 수 없다고 하셨잖아요. 모든 사람이 돈에 예민하지만, 특히 목사가 그것을 이기지 못하면 성도들은 존경하지 않습니다.”(140쪽)

◇종교개혁에 앞서 삶을 개혁하라

“지금 세계적으로, 특히 한국 교회를 갱신시킬 성경의 진리는 신행일치(信行一致)라고 생각합니다. 구원받은 성도들은 믿음과 일치되는 삶을 살아야 하는데, 우리에게 이것이 부족합니다. 한국 교회 성도들이 신행일치의 삶을 살면, 교회는 개혁되고 갱신되어 크게 힘을 얻을 것입니다. 또 저는 단순하게 생각합니다. 개혁하려는 사람들 자신이 먼저 개혁되지 않고서는 그들이 말하는 개혁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개혁의 현장을 나로 생각하면, 내가 개혁되는 만큼 교회도 개혁되다는 말이죠. 다른 사람은 개혁이 안 될지 모르지만, 적어도 내가 개혁된 것만큼은 새로워지는 것입니다.”(149쪽)

“실제를 살지 않으면서 말로만 변화해서는 안 됩니다. 저는 평생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가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고전 11:1)는 본문을 가지고 설교해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습니다. 무서워서 못 하겠어요. 그런데 본이 없으면 못 배웁니다. 그래서 목회자나 신학교 교수가 본을 보이지 못하면서 계속 가르치기만 하면 기독교는 ‘강의의 종교’가 되고 말지요.(151쪽)

◇정의와 사랑

“선(善)이라는 단어는 두 가지 의미를 갖습니다. 선은 정의로워야 하고, 옳아야 합니다. 그러나 옳은 것만 갖고는 안 돼요. 정의만 있어서도 안 돼요. 정의감만 있는 현장은 잔인하고 살벌합니다. 가장 무서운 살인자들은 정의감에 불타는 사람들이에요. 정반대로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사랑이 항상 선이던가? 아닙니다. 사랑 때문에 바른 판단을 못 하거나 사랑 때문에 해야 할 말을 못하는 비겁한 사람이 되기도 하거든요. 그런데 선이라는 것은 100% 사랑이어야 하고, 동시에 100% 정의여야 합니다. 이런 사랑과 정의가 한꺼번에 만난 사건이 바로 십자가입니다.”(155쪽)

◇아버지의 가르침, 사과와 감사

“제가 목사 안수를 받은 날 밤에 아버님이 너무 감격스러워서 잠을 못 자겠다고 하면서 우시더라고요. 그러면서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셨어요.

‘목사님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는 대언자다. 그런데 정작 본인은 진리를 대언한 대로 말로도 삶으로도 다 살아내지 못하는 연약한 인생이다. 진리의 말씀을 바르게 전한다고 하지만, 잘못 전하는 부분도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지적을 받으면 분노하는 목사님들이 많더라. 잘못했다는 말을 못 하시더라. 그러나 잘못은 사과가 정답이다. 그러니 첫째, 너는 목회하면서 잘못한 일이 생기면, 특히 지적받는 일이 생기면 잘못했다고 사과하는 목사가 되기를 바란다. 둘째, 목사는 많은 사람에게 영적인 도움을 주는 게 사실이지만, 또 많은 도움을 받기도 한다. 그런데 도움을 받는 것에 너무 익숙해져서 그런지 감사하다고 말하는 목사님이 참 드물더라. 너는 작은 것에도 성도들에게 감사하는 목사가 되어라.’

엄청난 말씀을 해 주실 줄 알았는데, 이렇게 딱 두 가지만 말씀해주셨어요. 그런데 이것이 제 목회의 기본이 된 것 같아요.”(201~202쪽)

[김한수 종교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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