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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6 (화)

이슈 난민과 국제사회

빗장 건 서방, 갈곳 잃은 난민…美서도 올해 70만명 쫓겨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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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난민 남자가 리투아니아 루드닌카이의 난민촌 울타리 안에서 밖을 내다보고 있다.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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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빗장을 걸었고 난민은 갈 곳이 없었다. 2021년 난민의 삶은 어느 때보다 고달팠다. 굶주림과 범죄·전쟁을 피해 기회의 땅을 찾아나섰지만, 곳곳에서 차가운 철조망이 그들 앞을 막았다. 세계를 강타한 코로나19는 난민을 밀어내는 방패로 사용됐고, 오갈 데 없는 난민의 처지를 정치적 목적에 악용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외교전문매체 포린폴리시는 지난달 “유럽 난민위기 당시 이들에게 포용과 관용을 보였던 독일과 스웨덴에서도 난민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커졌다”며 “민주주의적 가치를 해치는 난민 세력의 억제에 실패한 서방국들은 더 이상 난민과 실향민에게 거처를 제공하지 않을 것”이라며 암울한 전망을 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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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벨라루스의 난민촌 천막에서 얼굴에 붉은 글씨를 쓴 어린 소녀. 두 뺨에는 "나는 아기에요"와 눈물 표시, 이마에는 "죽음"이라고 쓰여있다. 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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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엠네스티 인터내셔널의 통계에 따르면 현재 전 세계 난민은 2590만 명이다. 즉각적 구호가 필요한 상황에 처한 난민은 140만 명에 이른다. 지난해에만 난민 669만 명이 발생했다. 올해는 지난 8월 미군이 철수하고 탈레반이 장악한 아프가니스탄에서 공항으로 몰려든 사람들의 목숨을 건 탈출 모습에 세계가 경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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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 국제 공항에서 미 공군 수송기를 탄 640명의 아프간인들. 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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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민의 최종 목적지는 영국·독일 등 유럽 국가, 그리고 미국이지만 이들의 80%는 개발도상국에 수용돼있다. 현재 가장 많은 난민을 수용한 나라는 10년째 내전 중인 시리아와 이웃한 터키(365만2000명)다. 베네수엘라와 국경을 맞댄 콜롬비아(173만1000명), 아프가니스탄 옆 나라인 파키스탄(143만9000명), 남수단과 콩고민주공화국 옆의 우간다(142만1000명)가 뒤를 잇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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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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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민을 가장 많이 수용한 국가 10.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올해 선진국은 난민에 문을 닫고 철책을 높였다. EU 국경경비 기관인 유럽국경·해안경비청(프론텍스)은 올 상반기에만 역대 최다인 8000여 명의 난민을 강제 송환했다. 그리스는 터키와의 국경에 40㎞의 장벽과 무인 감시장치를 설치했다. 벨라루스의 ‘난민 공격’에 직면한 폴란드‧리투아니아‧라트비아도 국경장벽 설치를 추진 중이다. 최근 EU는 회원국 간 자유로운 이동을 보장하는 솅겐조약 일부를 수정해 ‘난민 밀어내기’에 대한 회원국 간 공조를 강화했다. 개정안에 따르면 코로나19처럼 공중보건에 위협이 되는 상황에서 외부 국경에서의 임시 여행제한 규정을 채택할 수 있다. 또 난민들의 망명 신청 접근권은 보장하되 무단으로 국경을 넘지 못하도록 경찰에 합동 순찰을 강화하고, 난민 신청이 거절되는 즉시 본국으로 송환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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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의 난민촌 울타리에 설치된 철조망과 EU 깃발. 그리스는 터키와의 국경에 40㎞에 달하는 철조망 장벽과 감시카메라 등을 설치했다. 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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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타이틀42(Title 42)로 불리는 연방공중보건법을 방패 삼아 난민을 밀어냈다. 이 법에는 보건위기 하에서 외국인이 국내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을 수 있다는 내용이 담겼다. 그간 유명무실했던 이 조항을 코로나19 상황에서 난민 거부에 본격적으로 적용했다. 폴리티코에 따르면 미국은 이 법에 따라 올 2월부터 9월까지 난민 70만여 명을 추방했고, 8월 한달 동안만 9만1147명을 쫓아냈다. 아이티의 이민 신청자 수천명에게는 난민 신청 기회조차 주지 않고 돌려보냈다.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은 “우리는 아직 코로나19 팬데믹 한 가운데 있다. (난민을 되돌려보낸 것은) 감염병을 막기 위한 조치”라고 말했다.

난민 문제는 국가 갈등으로도 비화되고 있다. 영국과 프랑스는 영불해협(도버해협)을 건너려는 난민들로 신경전을 벌이는 중이다. 중동에서 유럽으로 넘어온 난민들은 ‘브리티시 드림’을 꿈꾸며 프랑스 북서부 해안가에서 소형 구명보트를 타고 해협 횡단에 나선다. 올해 이곳을 건넌 난민 수는 약 2만5000명 정도다. 지난해 8417명의 3배에 달한다. 지난달엔 이곳에서 난민이 탄 보트가 침몰해 27명이 사망하는 최악의 참사가 발생했다. 이를 두고 영국은 “프랑스가 영국행 불법 이민자를 단속하지 않는다”고 비난하고, 프랑스는 “영국이 불법 이민자 채용에 적극적이라 난민이 몰려간다”고 맞받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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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프랑스에서 영국으로 밀항하려던 소형보트가 침몰해 27명이 숨지자, 프랑스 칼레항 주변에서 난민 권리 옹호 단체와 활동가들이 "인권, 분노" 등이 쓰인 팻말을 들고 시위를 벌였다.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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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지중해를 통해 유럽으로 밀항하려다 스페인 구조선에 발견된 아프리카 난민의 보트. 정원보다 훨씬 과밀한 인원이 구명조끼 없이 맨발로 탑승했다.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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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민을 정치적 목적에 이용한 엽기적 사건도 터졌다. 동유럽에 위치한 벨라루스의 대통령 루카셴코는 EU 제재에 대한 불만 표시와 보복의 일환으로 폴란드 국경 앞에 난민을 쏟아부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난민 1만5000~2만 명을 끌어모은 뒤 이들을 폴란드 국경 앞에 버려두고, 벨라루스로는 되돌아오지 못하게 막아선 것이다. 폴란드 역시 국경 철조망을 넘으려는 난민을 향해 최루탄과 물대포를 쏘며 저지했다. 두 나라 사이에 끼인 난민 중 일부는 본국으로 돌아갔지만 이곳에 발이 묶인 이들은 겨울이 다가오자 국경 부근 무인지대에서 혹독한 추위와 굶주림에 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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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벨라루스-폴란드 국경에서 난민들이 폴란드 철책을 뚫고 들어가려하자 폴란드 군인들이 물대포와 최루탄으로 저지했다. 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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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벨라루스-폴란드 국경 앞에서 난민들이 추위를 피하기 위해 불을 피우고 있다. 철조망 너머로 폴란드 군인들이 이들을 주시하고 있다.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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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는 난민을 미국과의 흥정 카드로 삼았다. 중남미 난민들의 미국행 관문인 멕시코가 이들을 저지하는 대가로 미국에 비자 확대를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올해 미국과 멕시코 국경에서 적발된 불법 이민자 수는 165만 명을 넘어 역대 최고치다. 지난해 40만 명보다 4배 증가한 수치다. 사고도 잇따르고 있다. 지난 9일 멕시코 남부에서는 미국행 이민자 160명을 싣고 가던 화물 트럭이 넘어지면서 그 안에 타고 있던 과테말라 등 출신 난민 50여 명이 숨졌다. 미국 텍사스주와 멕시코 국경 지대인 델리오의 리오그란데 강변에서 아이티인을 향해 말 채찍을 휘두르는 미국 기마순찰대원 사진이 언론에 보도되자 “바이든의 난민 정책 역시 인종혐오적이며 난민법을 무시하는 트럼프식 정책과 다를 게 없다”는 공분을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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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와 미국의 국경인 리오그란데 강을 건너려는 난민들을 향해 말을 탄 미국 국경 순찰대 요원이 말고삐를 채찍처럼 휘두르며 저지하고 있다.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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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방에서는 밀어내고 본국으로는 돌아갈 수 없는 난민들은 임시정착한 개도국 난민촌에서도 극단적 상황에 내몰렸다. 세계 최대 난민촌이 있는 방글라데시 남부 콕스바자르의 쿠투팔롱에는 미얀마의 박해를 피해 달아난 로힝야족 난민 110만 명이 거주 중이다. 방글라데시 정부는 안전을 이유로 이들의 출입을 금하고 가둬놓은 상태다. 지난해에는 과밀화를 해소하겠다며 이들 중 일부를 외딴섬으로 강제 이주시켰다. 난민촌은 물과 의료시설이 현저히 부족해 코로나19 확산 때 큰 피해를 봤고, 경비원들에 의한 상습 성폭행 의혹도 끊이지 않는다. 국제앰네스티에 따르면 리비아 트리폴리 난민수용소에서는 수용소 간부가 깨끗한 물과 식료품을 주는 대가로 여성 난민들을 성폭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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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방글라데시 쿠투팔롱의 로힝야 난민캠프가 폭우로 인해 침수됐다. 물에 잠긴 보호소 안에 한 남자가 아이를 안고 앉아 있다.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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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방국의 난민 밀어내기는 오랜 기간 반감이 축적된 결과다. 과거 유럽 일부 국가는 난민에 호의적이었다. 유럽 여러 나라는 2015년 시리아 내전 격화·장기화로 수많은 난민이 유럽으로 향했을 때 이들을 위해 문을 열었다. 하지만 이후 “난민에게 일자리를 뺏긴다”는 불만이 커졌고, 테러·코로나19 등으로 자국우선주의를 표방한 극우 포퓰리즘이 힘을 얻으면서 반(反) 난민 정서가 노골화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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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교황이 지난 5일 그리스 레스보스섬에서 난민 아기를 축복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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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같은 난민 사태에 대해 프란시스코 교황은 “괴롭고 참담하다”는 심경을 토로했다. 그는 지난 5일 그리스 레스보스섬 난민촌을 방문해 “난민을 정치적 목적으로 착취하는 것을 멈춰야 한다”며 “역사는 편협한 행동과 민족주의가 비참한 결과를 낳는다는 것을 가르쳐줬다”고 말했다. 이어 “난민을 위한 국제적이고 공동체적인 해결책 모색을 촉구하고 싶다”고 했다.

박형수 기자 hspark9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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