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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9 (화)

[2021년 마음 한 장- 여름] 후회없는 발차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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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여러분이 웃고 울었던 현장에 <한겨레> 사진기자들도 있었습니다. 한 해를 끝자락까지 그 마음에 남은 사진 한 장들을 모았습니다.

새해에도 우리 사회와 사람들의 마음을 잇기 위해 더욱 노력하겠다고 다짐하며 `2021년 마음 한 장'을 봄·여름·가을·겨울로 묶어 소개합니다.



#4 후회없는 발차기였다

한겨레

이다빈이 지난 7월 27일 일본 지바 마쿠하리 메세A홀에서 열린 2020 도쿄 올림픽 태권도 여자 67㎏ 초과급 결승에서 세르비아의 밀리차 만디치에게 패한 뒤 승자에게 엄지를 들어 보이고 있다. 지바/김명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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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바이러스가 전 세계적으로 유행하고 있는 가운데 ‘2020 도쿄올림픽’이 한 해 늦은 2021년 여름에 열렸다. 과거와 달리 이제는 선수들의 도전과 열정에 초점을 맞춰 보도하려는 흐름이 눈에 띄게 커졌지만 승부를 겨루는 대회이다 보니 메달 유력 선수들에게도 관심이 몰리기 마련이다.

태권도 종목은 양궁과 더불어 한국의 대표적인 메달 밭이었다. 그러나 우리 국가대표팀은 태권도가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뒤 처음으로 이번 대회를 `노 골드'로 마쳤다. 태권도의 세계화로 다른 나라 선수들의 기량이 향상된 점과 올림픽이 지연된 1년 동안 실전 경험을 쌓을 기회가 부족했던 점 등이 원인으로 꼽힌다.

그러나 메달의 색깔과 관계없이 선수들의 정신이 빛나는 순간은 있다.

태권도 종목 마지막 날인 7월 27일 여자 67㎏ 초과급에 이다빈과 남자 80㎏ 초과급에 인교돈 선수가 출전했다. 이날 출전한 이다빈, 인교돈 선수는 유력 메달 후보 기사에서 많이 언급되지 않던 선수들이다. 취재를 가면서 메달에 대한 기대가 그리 크지 않았다.

이다빈 선수의 준결승전 상대는 세계 1위 비앙카 워크덴(영국). 상대적으로 수월하게 이긴16강, 8강과 달리 비앙카 선수는 세계 1위답게 경기 내내 공격적으로 경기에 임했다. 이 선수는 종료 1초 전까지도 비앙카 선수에게 22 대 24, 2점 차로 지고 있었다. 그러나 마지막 1초를 남기고 믿기지 않는 장면이 펼쳐졌다. 이다빈의 왼발이 극적으로 비앙카 선수의 얼굴에 꽂혔다. 짜릿한 역전승이었다. 경기를 취재하고 있던 필자는 나도 모르게 카메라를 놓고 환호성을 질렀다. 이다빈은 전광판을 확인하면서 손을 번쩍 들어 올렸고 비앙카 선수는 ‘내가 이렇게 지다니’ 같은 표정으로 매트에 쓰러졌다. 사진 한 장에 4강전의 모든 스토리가 담겨있었다. 이다빈은 4강전을 마친 뒤 “살면서 이런 경기는 처음이다. 무조건 이기겠다는 간절한 마음이 승패를 바꿔준 것 같다”며 “1초에서 0초로 바뀌는 순간이 슬로모션처럼 눈에 들어왔다”고 소감을 밝혔다.

극적으로 결승에 오른 이다빈은 세계 3위인 세르비아 밀리차 만디치 선수와 붙었다. 16강전부터 4경기를 치른 두 선수는 모두 지쳐 있었다. 카메라를 통해 지켜보는 동안 이다빈의 발차기도 이전 경기보다 눈에 띄게 느려졌다. 1세트부터 상대에게 5점을 내줬다. 2세트에 한때 동점을 만들기도 했지만 결국 뒷심에서 밀려 7-10으로 패배했다. 만디치 선수는 고개 숙여 인사하며 상대 선수에 대한 예의를 다했다. 경기에 졌지만 이다빈은 환하게 웃으면서 우승자에게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였다. 최선을 다한 선수들의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좁은 뷰 파인더로 보면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았다. ‘그래 이게 올림픽 정신이지.’ 내가 올림픽을 취재하는 이유였다.

우승했음에도 패배한 상대에게 예우를 갖춘 선수. 우승자에게 환하게 웃으면서 마음을 다해 축하를 건네는 선수. 모두가 올림픽의 승자들이었다. ‘미혹되지 않는다’라는 불혹 40대 후반을 지나고 있는 필자에게도 많은 생각을 안겨준 사진이다. 지금도 가끔 ‘질투심’에 미혹되거나 작은 성과에 혼자 우쭐대는 맘이 생길 때는 이 사진을 떠올리면서 맘을 다잡는다. 최선을 다해 경기를 펼치고 감동을 전해준 대한민국 선수들에게 다시 한번 아낌없는 박수를 보낸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5 낯선 ‘위드 코로나’

한겨레

경기 고양시의 작은 공원의 나무 그늘에서 한 중년이 잠시 마스크를 벗고 휴대전화를 보고 있다. 그 옆으로 마스크 쓰지 않고 지나가는 비둘기가 나는 마냥 부러웠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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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너 달 지나서 계절이 바뀌면 역병은 물러갈 줄 알았다. 그렇게 사그라질 줄 알았던 바이러스는 인간에게 바싹 달라붙어 떠날 줄 모르고 있다. 아니 원래 지구의 주인이 돌아온 듯하다. 지구의 주인은 어찌 보면 바이러스가 원주인일 것이다. 45억 년 지구의 나이에 인류가 발생한 지는 200만 년, 현생 인류의 호모사피엔스는 마지막 빙하기가 끝나갈 무렵 겨우 3만 년 전에 나타나 지금까지 살고 있다. 현 인류는 언제 사라질지 아무도 모른다. 10만 년 뒤 100만 년 뒤일까? 정부가 방역 체계를 ‘위드 코로나’(코로나19 종식보다는 공존)로 전환했더니 최근 하루 확진자가 7천여 명을 넘기고 있다. 새로운 변이들도 나돌고 있다. 원치 않은 낯선 동거를 시작한 셈이다. 사람끼리 동거도 어려운데 인간과 바이러스가 함께 산다는 것은 어색하기 그지없다. 인간과 바이러스는 서로를 넘보지 않고 살 수는 없는 것인가? 바이러스와 공존하면서 살아가는 방법을 찾아내는 것이 역병의 시대의 고통에서 벗어나는 최선의 길일 것이다. 내가 기거하는 동네 공원의 한적한 나무 그늘서 한 중년이 잠시 마스크를 벗고 휴대전화를 보고 있다. 그 옆으로 마스크 쓰지 않고 지나가는 비둘기가 나는 마냥 부러웠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6 그때 그 아이

한겨레

한국 정부 활동에 협력해온 아프가니스탄인 직원과 가족들이 지난 8월 26일 오후 인천 영종도 인천공항에 도착해 이동하고 있다. 인천공항/이종근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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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하, 무사히 건넜을까

이 한밤에 남편은

두만강을 탈없이 건넜을까

-김동환 <국경의 밤> 중

사진을 찍으며 든 생각인지, 한 해를 정리하는 사진을 고르며 떠오른 느낌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지난 8월 26일 인천국제공항으로 아프가니스탄에서 한국 정부의 활동을 도왔던 현지인 직원과 가족 378명이 들어왔습니다. 수년간 아프간에서 우리 정부를 위해 근무한 이들과 그 가족입니다. 이들 중에는 만 6살 미만 영유아가 100여 명, 6~10살 어린이도 80여 명으로, 10살 이하 어린이가 절반을 차지했다고 정부 당국자는 밝혔습니다.

입국 직후 공항 안에서 코로나19 검사 등 방역 절차를 거친 뒤 나온 아프간인의 목에는 가족 이름 대신 숫자가 적힌 명찰을 목에 걸고 나왔습니다. 정부는 이들의 신변 보장과 고국에 남아 있을 관계자들의 안위를 위해 얼굴을 가려달라고 공식적으로 각 언론사에 요청했으니, 이름이 적힌 명찰을 달고 나올 수는 없었을 것으로 짐작하고 물어보지는 않았습니다. 이 가족을 포함한 아프간인들은 충북 진천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에서 한국 사회에 정착하기 위한 교육을 받다가 다른 시설로 옮겨질 예정입니다.

아이를 포대기로 두르고 품에 안은 엄마는 60-2와 60-6이 적힌 명찰을 목에 걸었습니다. 60-1의 남편과 함께 입국장을 나선 그는 불안한 눈빛이었지만, 커다란 인형 등을 손에 쥔 60-3, 60-4, 60-5의 아이는 두려움 없는 밝은 모습이었습니다. 엄마한테 안겨 있는 아이는 태어난지 얼마나 됐을까요? 우리나라로 오기 전날 밤 어떤 생각을 했을지, 혹 나중에 크면 이번 일을 기억이라도 할까요? 태어나 살던 고국을 떠나는 부모의 마음은 또 어떨까요? 오십 년 가량을 한곳에서 자란 제가, 그들의 속마음을 헤아리는 건 속절없고 부질없는 노릇일 겁니다.

먼발치에서 한번 본 아이의 생김새를 뒤에 기억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고, 다시 보기도 어려울 것입니다. 필래프, 케밥, 난 등을 즐겼을 어른과 아이는 이제 쌀, 김치, 우유 등을 주식으로 삼을지, 이역만리 타향에서 생면부지인 사람들과 만나 어떻게 살지 또한 예상하기 어렵습니다. 저 가족을 포함해 모두가 다시 피난길에 오르지 않고, 불안한 현실과 비극적인 삶을 벗어나 평안한 상태로 지내길 저는 다만 바랄 뿐입니다.

저렇게 많은 중에서

별 하나가 나를 내려다본다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서

그 별 하나를 쳐다본다

밤이 깊을수록

별은 밝음 속에 사라지고

나는 어둠 속에 사라진다

이렇게 정다운

너 하나 나 하나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김광섭 <저녁에>

이종근 선임기자 root2@hani.co.kr

#7 무죄

한겨레

구미간첩단사건의 피해자인 김성만(왼쪽), 양동화씨가 8월 24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서대문형무소기념관을 찾아 예전 수감 시기를 회상하고 있다.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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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 9월 9일 전두환 정권의 국가안전기획부는 미국과 서독 등에서 유학하던 학생들이 북한 공작원에게 포섭돼 국내에 침투해 간첩 활동을 벌였다며 양동화, 강성만, 황대권, 이원중씨 등 22명을 검했다고 발표했다. ‘구미유학생간첩단사건’으로 불린 이 일은 당시 5·18 민주화 운동 진실규명 등을 요구하는 학생 중심의 민주화 운동이 일어나고, 그해 2월 치러진 총선에서 김대중, 김영삼이 이끄는 신한민주당의 선전으로 위협을 느낀 전두환 정권이 정치적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만들어낸 대표적인 조작 사건이다. 이 사건으로 김성만씨와 양동화씨는 사형을, 나머지 13명도 무기징역 등 실형 선고를 받았다.

이들은 김대중 정부 때인 1998년 광복절 사면으로 겨우 풀려났다. 석방되고 약 20년이 지난 2017년 9월, 이들은 국가 폭력에 희생된 억울함을 호소하기 위해 용기를 내 재심 청구를 했고 2020년에 와서 사건 윤곽이 드러난 사건이다. 조작사건이 발생한 지 36년이 지난 7월 29일 대법원에서 무죄판결이 났다. 엉청난 고문으로 조작된 구미간첩단사건의 피해자인 김성만(왼쪽), 양동화씨가 지난 8월 24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서대문형무소기념관을 찾아 예전 수감시간의 악몽같은 기억을 더듬으며 당시를 회고하고 있다.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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