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국경폐쇄 탓 닫힌 물길 건너
까렌민족해방군 제7여단 전투태세
군부 맞선 의사 12명은 의료 지원
“소수민족과 평생 함께할 것 다짐”
4월 시작한 군사훈련 교육 벌써 8주차
400명 학생민주전선·지역 방위대로
랭군에서 미용사였떤 킨난웨이
“돌아가면 민중방위대에서 싸울 것”
지난 2월 미얀마에서 쿠데타가 발생한 뒤 1년이 가까워오는 오늘까지 숱한 젊은이들이 민아웅흘라잉 군사정권에 맞서 무장투쟁을 벌이고 있다. 정문태 국제분쟁 전문기자가 지난 5월과 7월 국제 언론 가운데 처음 지하 민족통합정부 국방장관 대면 인터뷰와 까레니군 본부 취재로 미얀마 현실을 알린 데 이어, 11월 말 까렌민족해방군과 까렌민족연합 본부를 취재해 소수민족 진영의 소리를 전한다. <한겨레>는 쿠데타 뒤 버마 안팎 언론을 통틀어 처음 까렌민족연합 해방구와 시민군 군사훈련 현장을 담았다.
버마 정부군 공격에 맞선 까렌민족해방군 제7여단 전사들. 까렌민족해방군 본부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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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가 끝나나 싶더니 달포 만에 몰라보게 여위었다. 황톳물을 둑까지 밀어 올리던 거센 소용돌이는 온데간데없고 여기저기 휑한 바닥을 드러낸 게. 폭은 줄어 기껏 70m 남짓.
악수를 나눈다. 하늘과 물이 빚은 눈부신 아름다움 너머로 스멀스멀 기어 나오는 긴장 속에 나를 집어넣는 거룩한 의식마냥. 나긋한 물살이 손바닥을 휘감는다.
배를 몰고 올 전사를 기다린다. 땡볕에 쪼인 모래밭 위로 피어오르는 아지랑이 곡두, 그땐 미처 몰랐다. 병아리 전선기자로 맺은 이 강과 인연이 30년도 넘게 이어질 줄이야.
11월20일, 타이 서북부와 버마의 까렌주를 가르는 모에이강(Moei River)을 넘는다. 예부터 까렌의 삶터였던 이 강은 버마 현대사의 위기를 받아내는 피난지 노릇을 해왔다. 1970년 독재자 네윈 장군한테 쫓겨난 우누(U Nu) 총리와 저항군이 그랬듯, 1988년 민주항쟁 뒤 군부에 쫓긴 학생들도 저마다 이 강으로 몰려들었다. 그리고 지난 2월1일 쿠데타 뒤 모에이강은 세 번째 버마 위기를 받아내고 있다. 군부에 쫓겨난 망명 민족통합정부(NUG)가 이 강 언저리를 발판 삼아 지하정부와 군사조직 민중방위대(PDF)를 꾸렸고, 시민불복종운동(CDM)으로 군부와 맞섰던 숱한 이들이 체포령을 피해 이 강으로 밀려들었다.
하여 지난 2월부터 온 세상 언론이 모에이강에 눈길을 꽂았다. 그러나 버마 군부와 타이 정부의 밀월, 국경 폐쇄, 코로나 바이러스로 이어진 꽉 막힌 현실 탓에 아무도 이 강을 건널 수 없었다. 뱃길을 쥔 강 건너 까렌민족연합(KNU)마저 둑을 막아버렸고.
“좀 더 기다려 보게. 첫 배는 꼭 자네한테 띄울 테니.”
까렌민족연합 부의장 끄웨뚜윈(Kwe Htoo Win)의 다짐을 거듭 받으며 기다리길 아홉 달, 마침내 까렌민족해방군(KNLA)이 보낸 그 첫 배를 타고 제7여단 해방구로 들어선다.
곳곳에 세운 대문짝만한 코로나 바이러스 경고판을 빼면 마지막으로 찾았던 2년 전 그대로다. 버마 정부군이 ‘한국제 곡사포(KH-179)’로 까렌민족해방군 본부와 제7여단 본부를 맘껏 때릴 수 있는 10㎞ 전방에 전선을 펼쳤으나 별 긴장감은 없다.
까렌민족해방군 본부로 사령관 조니(Jonny) 장군부터 찾아간다. 올해 초 목에 난 큰 혹을 수술한데다 코로나까지 걸려 애먹은 사정이 얼굴에 묻어난다. “못 본 지 2년 넘었군요?” “뭐 하러 이 먼 길 또 왔어?” 퉁명스럽기는 30년을 봐왔지만 그대로다. “조피우(Jaw Phyu) 장군 6월에 돌아가셨다던데….” “때 되면 다 떠나는 거야. 별거 있나.” 전선에서 57년을 보낸 그이한테는 대수롭지 않은 일인지도. 조피우 장군은 조니 장군의 동생이자 제7여단장이었다.
“요즘 전황은?” “정부군이 까렌 전역을 치고 든다고 보면 돼. 11월에만 제1여단 쪽 30회, 제2여단 쪽 9회, 제3여단 쪽 5회, 제5여단 쪽 138회 치고받았어.” “정부군 공세 견뎌낼 수 있으려나?” 그이는 생뚱맞은 듯. “새삼스레. 70년 넘게 싸워왔어.”
1시간쯤 흘렀을까, “일 다 보고 저녁에 집으로 와.” 게릴라전선 무골의 잔정이 살짝 비친다.
11월22일 아침 7시, 모에이강이 사라졌다. 까렌도 저 너머 타이도 모두 안개가 삼켜버렸다. 세상을 지워버린 이 백색의 어둠이 만물을 다시 그리는 화판일 수만 있다면. 그리하여 국경선도, 분쟁도, 난민도 없는 태초의 모에이강으로 되돌리고….
안개에 젖은 감상을 뚫고 까렌민족연합 본부 레이와(Lay Wah)로 달린다. 제7여단 본부에서 산길을 따라 자동차로 10분, 레이와는 중앙상임위원회 회의를 맞아 바삐 돌아간다. “이번 회의 안건은 정치 현실 점검과 내년 1월로 잡은 까렌대의원대회 준비다.” 부사무총장(정치담당) 흘라뚠(Hla Tun)은 “공식 발표 전엔 회의 내용 흘리지 마라” 하고 신신당부한다.
그동안 중앙위원회 비공개 원칙을 철저히 지켜온 까렌민족연합이 첫 기자로 나를 초대한 게 2018년 중앙상임위원회 비상총회였다. 그날에 이어 오늘 나는 두 번씩이나 중앙상임위원회를 독점 취재하는 행운을 얻은 셈이다.
이레 일정을 잡은 이번 회의엔 까렌 해방구 각 지역을 대표한 상임위원 55명이 모두 무사히 참석했다. 비밀 안건을 다룬 오전 회의를 마칠 즈음 부의장 끄웨뚜윈이 마이크를 잡는다. “오후 회의부터 한국 기자가 취재를 할 텐데 놀라지 마시기들. 우리가 초대한 친구니까.”
회의가 끝난 저녁나절, 오래 못 본 반가운 얼굴들을 한자리에서 만나는 큰 기쁨을 누린다. 끝없이 이어지는 해묵은 이야기 너머로 전선의 하루가 저문다.
11월24일 새벽녘, 제7여단 신임 사령관 포도(Paw Doh) 준장 전화가 잠을 깨운다. “7시에 통역 보낼 테니 제7여단으로 오시게. 체포 피해 넘어온 시민불복종 운동가들이 기다리니.”
제7여단 한 귀퉁이, 외신기자를 처음 본 버마인 다섯의 얼굴엔 잔뜩 경계심이. 바고구 민족민주동맹(NLD) 여성 상원의원 이이따익(39)은 “1년 안에 군부 무너뜨리고 돌아갈 수 있다”며 자신감을 드러낸다. “어떻게?” 이내 말문이 막힌다. 정치가 시민을 못 따라가는 현실, 산악 밀림으로 피한 그이의 ‘1년짜리’ 희망이 이뤄지길.
“나는 안 돌아간다. 4월에 여기 닿자마자 코로나19 난리를 겪으면서 소수민족과 평생 함께하기로 맘먹었다.” 랭군의대를 나와 인턴까지 마치고 면허증을 기다리던 중에 터진 쿠데타로 무면허 의사가 된 뗏아웅투(25)는 제7여단 장기요양병원에서 새 삶을 시작했다. 뗏아웅투를 비롯해 의사 열둘이 넘어온 제7여단은 시민불복종운동의 최대 수혜자가 된 셈이다. 9월까지 하루 200명 넘는 코로나 확진자가 쏟아진 이 의료 사각지대를 그이들이 메웠으니.
“두 주 전부터 확진자 없다. 이제 숨 돌릴 만하다.” 뗏아웅투의 눈이 참 아름답게 빛난다.
“먹을거리도, 잠자리도 불편한 이 산악에서 소수민족을 배웠다. 우리 버마인과 소수민족이 함께 갈 수 있는 길도 보았고.” 시민불복종운동 경찰위원회를 꾸려온 윈스윈(47)처럼 소수민족을 경험한 이들이 버마 사회의 기본 모순인 민족문제를 풀어가는 데 보탬이 되었으면.
11월26일 아침이 밝았다. 버마학생민주전선(ABSDF) 의장 탄케(Than Khe)와 함께 학생군 기지로 간다. 지하 민족통합정부가 지난 5월 창설한 민중방위대를 비롯한 시민군이 군사훈련을 받아온 곳 가운데 하나다. 정치·군사적으로 워낙 예민해 장소는 비밀로 해두자. 여태 이 군사훈련장은 지하정부가 홍보용 동영상을 내놨을 뿐, 아무도 접근 못한 금역이었다.
“때가 왔다. 모든 동지들이여
우리 모두 피로 하나가 되자
우리는 피로 역사를 써왔다
혁명 앞에 우리를 바치자
진군하자 동지들이여”
버마 정부군에 맞서 무장투쟁에 참여한 민중방위대, 버마애국조직을 비롯한 시민군이 버마학생민주전선 기지에서 군사훈련 중이다. 정문태 국제분쟁 전문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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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마학생민주전선의 노래 ‘때가 왔다’가 산악을 쩌렁쩌렁 울린다. 여성 열한명을 포함한 마흔다섯 훈련병들 눈에는 독기가 올랐다. 이 기지에서는 4월 제1차 훈련병을 받은 뒤 제7차까지 400여명이 기초 군사훈련 과정을 거쳐 갔다. “이들 가운데 107명이 버마학생민주전선에 남았고 나머지는 버마 안쪽 민중방위대를 비롯한 각 지역방위대로 돌아갔다.” 기지 부사령관 쪼탄은 “이번이 제8차 과정인데 학생군에 남겠다는 이들이 점점 늘어난다”며 기뻐한다.
“인종, 계급, 종교 차별 없이 민주주의 외쳐온 8888 민주항쟁 선배들인 버마학생민주전선을 익히 들어왔던 터라 여기를 택했다. 남자들과 똑같은 훈련과정에 몸은 고달프지만 교관이나 전사들이 모두 친절하게 잘 보살펴줘 맘은 아주 편하다.” 이라와디구에서 온 고등학교 교사 메이쭌쪼(30)가 학생군 군사훈련장을 찾는 많은 이들을 대변한 게 아닌가 싶다. 메이쭌쪼는 “버마학생민주전선 전사가 되기로 맘먹었다”며 수줍어한다.
까렌민족해방군 제7여단 훈련병 킨닌웨이(20). 미용사 출신이다. 정문태 국제분쟁 전문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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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긴 통합 군사훈련장답게 별별 사람이 버마 전역에서 몰려들었다. 긴 머리에 베레모, 체 게바라를 빼닮은 람뗏(21)은 “마궤로 돌아가 버마애국조직(BPO) 일원으로 도시 게릴라전 벌이려고 한다”며 전의를 불태운다. 랭군에서 미용사로 일해온 킨닌웨이(20)는 “이 훈련 받으면서 두려움 사라졌다. 돌아가면 민중방위대에서 싸울 생각”이라며 곱게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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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신세대는 1988년 민주항쟁 뒤 국경으로 빠져나왔던 청년·학생들과 생각도 생김새도 다르다. 그 시절 젊은이들이 아무 계획도 없이 넘어온 파리한 피난민이었다면, 33년 뒤 이 신세대는 저마다 또렷한 투쟁 계획을 지녔고 겉모습부터 이미 영화에 나올 법한 멋쟁이 게릴라다.
현재 지하 민족통합정부는 북부, 중부, 남부로 나눈 3개 사령부에 8천여 민중방위대를 꾸렸지만 통합·조정 능력을 의심받고 있다. 버마 안에는 민중방위대와 상관없이 독자적으로 싸우는 지역방위대만도 150여개에 이르고 소수민족 진영에서는 까레니민족방위군(KNDF)과 친랜드방위군(CDF) 같은 독립적인 시민군이 전선에 올랐다.
전선 통합과 조정은 단일 명령체계를 뜻하고 그 고갱이는 돈줄이다. 그동안 지하정부는 재외 버마인한테 모금한 수백만달러를 이미 민중방위대와 소수민족 해방군 진영에 뿌렸지만 턱없이 모자랐다. 그럼에도 꿈쩍 않던 소수민족 해방군이 요즘 지하정부와 손발을 맞추기 시작한 현실을 눈여겨볼 만하다. 으레 현금의 힘이었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지하정부는 최근 8억달러를 목표로 혁명채권을 내놨고, 11월22일 하루 만에 버마 안팎으로부터 600만달러어치를 팔아치우며 시민사회의 열망을 확인했다. 지하정부는 이 재원을 사회 복지와 인도주의 사업에 투입하겠다고 밝혔으나 사실은 민중방위대와 소수민족 해방군 무장투쟁 지원용으로 보면 된다.
그러나 지하정부의 무장투쟁 돈줄만으론 버마 위기를 풀 수 없다. 버마인을 향한 해묵은 불신감이 여전히 소수민족 진영에 흐르는 탓이다. “필요할 때만 찾고 지나면 우리를 낮잡아 보는 버마인들, 버마중심주의로는 연방제도 뜬구름이다.” 끄웨뚜윈 말이 소수민족 사회의 정서다.
최근 입을 타는 민족통합자문회의(NUCC) 창설을 비관적으로 보는 까닭이다. 연방의회대표위원회(CRPH), 정당, 시민사회, 소수민족무장조직(EAO)을 포함한 반군부 세력을 모두 아우르겠다는 이 새로운 조직의 열쇠를 쥔 쪽도 결국은 해방구와 무장조직을 지닌 소수민족이다. 한데, 이 계획을 놓고 소수민족무장조직들도 뿔뿔이 갈린 상태다. 통일전선 가능성이 옅다는 뜻.
“민족통합정부가 내놓은 연방민주헌법이 소수민족의 입장을 또렷이 못 담은데다, 이번 민족통합자문회의가 내세운 집단지도체제의 권력 분점도 흐릿하다.” 버마학생민주전선 의장 탄케가 소수민족 진영의 불신감을 대신 전한 말이다. 소수민족을 끌어안지 못하면 민족통합자문회의는 허울뿐인 조직이 될 게 불 보듯 뻔하다. 다른 말로 군부를 쫓아내고 버마민주연방을 세우겠다면 소수민족이 지닌 불신감부터 풀어야 한다는 뜻이다.
12월로 접어든 모에이강이 점점 파리해진다. 숨을 헐떡이는 버마가 그 물에 비친다. 모에이강의 해방·혁명시계는 가다 서기만 되풀이할 뿐 30년 전 그대로다. 흐르지 않는 모에이강 역사가 참 아리게 다가온다.
정문태 까렌민족해방군 제7여단/까렌민족연합 본부 레이와에서
*정문태 국제분쟁 전문기자의 요청으로 외래어 표기법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정문태 국제분쟁 전문기자는 1990년부터 타이를 발판 삼아 아프가니스탄·이라크·코소보를 비롯한 40여개 전선을 취재해왔고 최근 <국경일기: 타이·버마·라오스·캄보디아 편>을 펴냈다.
*정문태 국제분쟁 전문기자는 1990년부터 타이를 발판 삼아 아프가니스탄·이라크·코소보를 비롯한 40여개 전선을 취재해왔고 최근 <국경일기: 타이·버마·라오스·캄보디아 편>을 펴냈다.
타이(오른쪽 강둑)와 버마의 까렌주를 가르는 모에이강. 정문태 국제분쟁 전문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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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렌민족해방군 제7여단 전사. 까렌민족해방군 본부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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